커버스토리 제 1269호 (2020년 03월 25일)

덩치 커진 한국 금융…규제 완화로 ‘서비스 진화’ 이룰 때

[커버스토리=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전환 필요…과도한 차이니스 월이 산업 발전 막아


최근 IT와 금융의 융합으로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선보이고 있다.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금융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의 한 은행에서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을 연출한 모습./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금융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가장 활발하게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다. 대표적 규제 산업인 금융은 오랜 기간 ‘엄격한 틀’ 안에서 성장해 왔다. 기존의 ‘공고한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은 이 틀을 깨기만 한다면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할 여지 또한 많다는 의미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보기술(IT)과 금융의 결합’이다. 이미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금융 소비자들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로 눈도장을 찍으며 성장 신화를 써가고 있는 핀테크 기업들이 상당하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액센츄어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핀테크 투자 규모는 2010년 18억 달러(약 2조3000억원)에서 2020년 461억 달러(약 58조9000억원)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0년 새 약 25배 정도 증가한 규모다. 우리 정부 또한 핀테크를 비롯한 금융 산업의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가다 보면 결국 귀결되는 것은 ‘규제’ 문제다.


◆아직 갈 길 먼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 


2009년 자본 시장의 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 처음 시행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자본시장법 시행 11년째를 맞고 있는 현재도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물론 지난 11년간 외형적인 면만 보면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증권사들의 덩치는 커졌고 수익 구조 또한 달라졌다. 자본시장법 도입 당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자기자본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서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현재 자기자본 규모 4조원을 넘어 금융 당국에서 ‘초대형 투자은행(IB)’ 지정을 받은 곳은 모두 5개 증권사(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다. 이 중 미래에셋대우는 작년 말 기준 자기자본이 총 9조1931억원으로 올해인 2020년 자기자본 10조원을 넘어선다는 목표다. 수익 구조 또한 브로커리지(주식 거래) 중심에서 IB 중심으로 무게 중심이 옮아 가고 있다. 증권사의 수수료 수익 가운데 IB 수수료 비율은 2009년 10.3%에서 2019년 36.5%까지 늘었다.


국내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체질 개선에 힘쓰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IB를 따라가기에는 힘겹다. ‘글로벌 IB’의 본질은 위험을 감내하면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전제 조건이지만 글로벌 IB에 걸맞은 혁신 서비스를 시행하기에는 여전히 ‘촘촘한 규제’로 제약 조건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초대형 IB를 위해 자기자본 규모는 크게 늘어났지만 늘린 자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금융 투자업자에게 적용되는 전체 규제 건수는 총 1407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자본시장법과 관련한 규제가 1005개로 압도적이다. 더욱이 이는 금융 투자업자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법규만 파악한 숫자다. 모범 규준이나 행정 지도 등 그림자 규제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3000여 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지난해 불거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 사태 등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사모펀드(PEF) 등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여서 단기적으로 이에 따른 금융업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배승·이태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사모펀드발(發) 유동성 이슈 현황과 전망’ 보고서에서 “규제 기조 강화는 금융회사에는 전반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국내 금융지주의 사모펀드 관련 예상 손실이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만 3269억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금융투자협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을 당시 이와 관련해 “다수의 참여자가 참여하는 자본 시장은 중간에 한 고리만 규제로 끊어져도 큰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과도한 규제가 도입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클 수 있는 만큼 직접 규제보다 각 사의 자율적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금융 규제와 관련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금융 규제 방식을 현행 포지티브(열거주의)에서 네거티브(포괄주의)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나열식으로 디테일하게 열거된 자본시장법을 ‘반드시 금지하는 것 외에는 다 해도 된다’는 식의 원칙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금융사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사의 정보 규제 법안인 ‘차이니스 월’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차이니스 월은 한 투자사 안에서 이해 상충 가능성이 있는 정보 교류를 차단하는 제도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 달리 업무의 비효율성을 키우고 신규 사업의 추진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증권사가 신기술투자조합·발행어음 등 신규 업무를 추진할 때 기업금융업·투자매매업·투자중개업 등의 다양한 업무가 혼재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차이니스 월 때문에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도 여러 금융 투자 업무를 분산 수행해야 하고 그에 따라 불필요한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업계는 오랫동안 ‘차이니스 월’ 완화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해 왔고 3월 5일 차이니스 월을 완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를 통과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생색만 낸 ‘금융 규제 샌드박스’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과 ‘차이니스 월의 완화’는 국내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꼭 해결해야만 하는 중요한 열쇠다. 핀테크 기업에서 아무리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아도 정부의 규제가 혁신의 걸림돌이 된 사례가 실제로도 적지 않다.


국내 핀테크 대표 주자로 꼽히는 ‘토스’를 운영하고 있는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는 지난해 9월 ‘핀테크 스케일업’ 행사에서 “감독 기관과 얘기하다 보면 진행되는 게 없다”는 ‘작심 발언’을 하며 이목을 끌었다. 인력·자금·시간이 부족한 핀테크 업체에도 모범 규준, 구두 지도, 수시 검사 등 기존의 금융사와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핀테크 업체가 혁신 서비스를 개발한다고 해도 기존 전통 금융으로 분류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업’이 적지 않다 보니 부처 간 떠넘기기라는 장벽을 뚫고 사업 승인을 받는 것조차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와중에 ‘자본금 규정’, ‘인력 규정’, ‘전산 설비 요인’ 등을 맞춰야 하는데 기존의 금융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다 보니 핀테크 업체들에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규제 리스크’가 핀테크 활성화를 비롯한 금융 혁신을 막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당국은 지난해 4월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제정에 따라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 현재까지 총 86건의 혁신 금융 서비스가 지정됐다. 혁신 금융 서비스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 서비스에 대해 금융 당국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기존 규제 적용을 유예해 주는 제도다.

‘규제’에 가로막혀 있던 핀테크 업체들에는 당장 숨통이 트일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혁신 금융의 동력으로서는 한계점 또한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 샌드박스는 당국의 심사를 거쳐 지정된 ‘혁신 금융 서비스’에 2년, 최대 4년 동안 관련 규제 적용을 유예해 준다. ‘한시적 유예’인 만큼 지정 기간 만료 후의 사업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지적된다. 관련 규제를 유예 받은 기간 동안 면제받은 규제와 관련한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면 다시 ‘불법 서비스’ 등의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건건이 심사’에 대한 우려 또한 제기된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특임교수는 “혁신 금융 서비스는 지정받은 특정 사업자에게만 적용되는 ‘건건이 심사’ 방식이어서 당국이 여전히 규제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형태”라며 “혁신 금융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 샌드박스에만 의존하기보다 근본적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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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3-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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