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269호 (2020년 03월 25일)

꽉 막힌 의료 규제에 중국·일본으로 가는 SK·네이버

[커버스토리=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연 20%씩 성장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코로나19 계기로 ‘원격 의료’ 재논의 필요

-2017년부터 '바이오 TF'만 여러번 구성됐지만 진전 없어


꽉 막힌 국내 의료법 규제에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규제 개선을 확대하고 지난 1월 데이터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헬스케어 산업에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반도체를 이을 미래 산업으로 바이오를 점찍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최근 데이터3법이 통과되면서 기기를 이용해 가명으로 개인 의료 정보 수집은 가능해졌지만 원격 의료는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데이터3법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체적인 시행령이나 산업에서의 활용 방안 등이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개발(R&D)만 가능하고 사업화로는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대학 교수는 “한국은 규제가 걸림돌이 돼 헬스케어 산업이 정체되고 있는 만큼 규제 샌드박스보다 더 과감하게 규제를 없애야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 ‘데이터3법’을 통과시키기까지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웨어러블 심전도 측정 기기를 개발한 휴이노가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할 당시 시민 단체와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검증되지 않은 기기가 환자의 신체 정보를 수집하고 원격 의료를 의료인-의료인에서 환자-의료인으로 확대해 의료 전달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휴이노가 심전도 데이터를 수집해 의사에게 전달하면 의사가 내원 여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기를 이용한 정보 수집은 원격 의료가 아니다’는 보건복지부 행정 해석을 토대로 실증 특례를 부여했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구글·애플·아마존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은 연평균 20%씩 성장하고 있고 국내 시장도 16%씩 증가해 2022년 10조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정부도 2017년부터 바이오와 헬스케어를 5대 국가 신산업의 하나로 선정해 규제 완화와 정책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2017년, 2018년에도 바이오·헬스 산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만 여러 번 구성됐을 뿐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국내 바이오산업의 규제 완화가 걸음마를 하는 동안 해외에선 글로벌 기업들이 헬스케어 시장의 주도권 잡기에 한창이다.

구글은 모회사인 알파벳 산하에 분야별로 세분화해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구글벤처스’, 노화 방지를 연구하는 ‘칼리코’, 헬스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베릴리’, 의료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딥마인드 헬스’ 등이다. 구글은 리프트 랩스, ‘세노시스 헬스’ 등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IBM 역시 적극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진행하고 있다. IBM은 2015년 4월 AI 시스템을 활용한 왓슨 헬스 부서를 독립시킨 후 애플·존슨앤드존슨·메드트로닉·에픽시스템스 등과 협력 및 인수를 통해 의료 생태계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가 지난해 11월 미국 등록 특허 16만 건을 분석한 결과 IBM(355개)이 가장 많은 장기 전략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고 ‘데이터 저장 기술’과 ‘헬스케어’ 분야 특허에 집중하고 있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헬스케어 시장에 대한 애플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쿡 CEO는 최근 애플이 아이폰으로 의료 정보 기록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최근 스탠퍼드대·존슨앤드존슨·미국보훈처 등과 손잡고 헬스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마존은 2018년 온라인 약국 스타트업 ‘필팩’을 인수해 의약품 판매, 병원과 연구 협력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의약품 배송 서비스, 의료 정보 분석, 임상 기록의 유효 정보 추출 기술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알렉사(아마존의 AI 플랫폼)의 감기·기침 판별 기능에 대해 특허를 신청했다.


◆국내 대신 해외 택한 한국 기업들

한국의 기업들도 빡빡한 규제로 성과를 내기 힘든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SK텔레콤은 중국을 시작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다시 도전한다.

SK텔레콤은 3월 11일 뉴레이크얼라이언스와 공동으로 디지털 건강 관리 전문 회사 ‘인바이츠 헬스케어(Invites Healthcare)’를 설립했다. 

SK텔레콤이 헬스케어 시장에 뛰어든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1년 서울대병원과 합작법인(헬스커넥트)을 만들었지만 2018년까지 199억원의 누적 적자를 냈다. 의료 민영화 논란, 원격 의료 금지 때문에 제대로 된 사업을 하지 못했다.

인바이츠 헬스케어는 당뇨병·심혈관 등 개인의 만성 질환 관리 플랫폼 구축, 병원의 의료 용품 구매를 돕는 스마트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 사업, 양자 암호 통신과 블록체인으로 안전한 의료 기관 전용 클라우드 솔루션 개발에 나선다.

인바이츠 헬스케어는 첫 진출지로 중국을 택했다. 올해 3분기 1억7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중국 의료 플랫폼 사업자 ‘지엔캉160’과 손잡고 현지에서 만성 질환 관리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특히 인바이츠 헬스케어는 SK텔레콤으로부터 선전 합작법인 메디컬센터의 지분(43.5%)을 양도받아 중국 사업 기지로 삼고 SK하이닉스의 우시 종합병원에도 각종 솔루션을 납품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은 원격 의료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2015년 중국 환자와 미국 의료진 간 원격 진료를 허용했다. 또 2016년에는 중국 내 병원과 환자 간 원격 의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의사 진단, 처방부터 의약품 배송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의 ‘알리헬스’는 누적 사용자는 1억 명이 넘는다.

세계 최대 의료 시장인 미국에서는 전체 진료 6건 중 1건 정도가 원격 의료로 이뤄진다. 미국은 의사가 부족한 지역 환자 등으로 제한했던 원격 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보험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태국·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원격 의료의 문을 열었다. 

일본은 2015년 원격 의료를 전면 도입했다. 2018년에는 건강보험까지 지원해 주고 있다. 원격 조제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헬스케어는 지난해 12월부터 일본에서 플랫폼을 활용한 원격 의료에 나서고 있다.

라인헬스케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매달 온라인 건강 상담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20년 2월의 상담 건수는 1월에 비해 40배나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 상담이 절반 이상이었다.

한국 정부도 얼마 전 원격 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코로나19 대응책으로 원격 의료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24일부터 환자가 병원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만으로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전화 처방을 받는 환자는 적다.

그동안 불법이어서 아무런 인프라도 대응 능력도 갖춰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의사협회가 2월 23일 성명을 통해 “전화 상담·처방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제도 시행에 불참할 것을 발표하면서 정책이 유명 무실화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 의료 플랫폼 구축이 공론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미 모바일 통신(5G)·사물인터넷(IoT)·AI 기술은 탄탄한 한국에서 바이오헬스케어 시장을 창출한 준비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태명 교수는 “원격 의료의 최고 쟁점은 개인 병원 등 소규모 의료 기관의 생존권인데 이 문제는 정책을 상생의 환경에서 시행하면 해결될 수 있다”며 “만일 코로나19 이후 원격 의료에 대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면 잃은 것만 있을 뿐 얻는 것은 없는 큰 퇴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기사 인덱스]
① ‘규제 개혁’ 없으면 성장 엔진 멈춘다
- 세계 경제 호령하는 G2의 비결은…‘네거티브 규제’
- ‘말로만 규제 완화’ 언제까지…늘어나는 규제에 속 터지는 기업들
- 조봉현 IBK경제연구소장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미국‧유럽 등 다른 국가와 규제 수준 맞춰야”
- 김영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코로나19 이후의 경기 반등, 우리가 먼저 올라타야”
② 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 화평법‧화관법‧미세먼지법…대처에 인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 실적 곤두박질치는 유통 기업에도 여전한 ‘출점 규제‧의무휴업’
- 덩치 커진 한국 금융…규제 완화로 ‘서비스 전환’ 이룰 때
- 꽉 막힌 의료 규제에 중국‧일본으로 가는 SK‧네이버
- ‘일하지 않고 성장이 가능할까’ 기업도 노동자도 우는 노동 규제
- ‘도대체 왜 기업해야 합니까?’ 규제에 꺽인 기업가 정신
③ 다시 뛰는 한국 기업들
- 삼성그룹, 초격차 전략으로 ‘포스트 코로나’ 대비…반도체 등 기술 리더십 선점
- 현대차그룹,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 목표…‘기술 개발’에 61조 올인
- SK그룹, ‘사회적 가치’를 미래 경영의 줌심에…신소재‧AI 등에서 신성장 동력 찾기
- LG그룹,  ‘뉴 LG’ 플랜 가동, AI 선점하고 디지털 전환 속도 낸다
- 롯데그룹, ‘과거처럼 하면 망한다’…전 사업부문 ‘새판짜기’ 돌입
- 포스코, 한국 철강 산업의 자존심, 고부가가치 WTP 제품 앞세워 위기 정면 돌파
- 한화그룹, 10년의 도약 이끌 ‘한화솔루션’ 출범…화학‧소재‧태양광 통합
- 신세계그룹, 이마트 점포 30% 이상 리뉴얼…‘매장 혁신’에 사활 건다
- CJ그룹, ‘한류 열풍’ 이끌며 ‘글로벌 생활문화 기업’으로 도약한다
- 두산그룹, 대변신 시작한 ‘100년 기업’ 중공업 넘어 디지털 기업으로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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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20-03-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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