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경비즈니스 선정 한국을 움직이는 정책발전도 100대 싱크탱크]
- ‘외교·안보 1위’ 국립외교원 김준형 원장
- “세계화 이념 대신 찾아온 ‘뉴 노멀’ 시대, 실익 외교 절실”
“한국 코로나19 대응법 세계가 주목…미·중 사이에서 발언권 커졌죠”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지금 한국은 말 그대로 내우외환 상태다.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한반도 문제, 세계 각국의 자국 보호 정책 기조, 중국과 일본과의 갈등 등 안보·정치·경제·사회를 둘러싼 문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여기에 올해 2월부터 사상 초유의 질병 재난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세계 경제 대공황이 현실화되면서 심상치 않은 외교 현안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조사에서는 국립외교원 산하 외교안보연구소가 외교·안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지난 3월 23일 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을 만나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제 외교 흐름과 대응책을 물었다.

▷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조사에서 올해도 1위에 올랐습니다.
“2008년부터 12년 연속이죠. 작년에 취임하자마자 이야기를 들었어요. 부담이 상당했습니다. 혹시 제가 취임하고 난 후 1위를 못 하면 어쩌나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책임감을 더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1등다운 역량을 갖추고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겠다고 말이죠.”

▷ 글로벌 싱크탱크와 국립외교원과의 역량을 비교한다면 어떤가요.
“싱크탱크 자체를 놓고 직접적으로 비교할 만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싱크탱크가 잘 운영되는 선진국 국책 연구원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대부분 민간 연구소로 운영되는데 국책 연구소와는 업무나 역할의 차이가 있죠. 예를 들면 보안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하는 연구물들이 우리에겐 있는 반면 글로벌 민간 싱크탱크는 자유로운 편입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싱크탱크 순위에서 국립외교원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어요. 물론 자체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가령 국립외교원에서 발표하는 연구 자료를 영문으로도 만들어야죠. 지금까지는 주로 국내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고 결과물 발표도 국내에 머무르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글로벌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반대로 글로벌 싱크탱크가 갖추지 못하고 있는 국립외교원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거시적인 시야와 중·장기적인 플랜을 외교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미래와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담론이 우리 국립외교원의 큰 장점이죠. 대부분의 글로벌 민간 연구소들은 경제·일자리 등의 실용적인 부분에 대한 접근이 많습니다.”

▷ 한반도 문제를 비롯해 중국·일본 등과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간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는데, 국립외교원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입니까.
“외교부가 각국과 얽힌 사안에 대해 즉각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국립외교원은 외교부의 산하 기관이 아닌 소속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분명합니다. 외교적 갈등의 본질,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점 등을 파악하고 연구해 중·장기적 측면에서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국립외교원은 현재 한국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외교 현안에 대해 복합적이면서 다각적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최근의 외교 문제는 정치·사회적인 문제보다 경제적 측면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국제 질서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유지해 왔습니다. 즉, 미국이 주축이 된 시장주의와 민주주의 등이 근간이 돼 국제적 안정을 이뤄 왔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경제 불황 때문입니다. 세계의 경제가 호황일 때는 나타나지 않았던 문제가 글로벌 저성장 기조로 인해 불거진 거죠. 잘될 때는 서로 좋아 협력했지만 막상 어려워지니까 살길을 찾기 바쁜 겁니다. 그래서 각국이 각자도생이나 보호무역 등을 추진하고 있죠.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각국이 자체적인 해결법을 찾기보다 상대 국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정치가들은 이를 이용해 선동하며 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 국가별 무역 갈등, 자국 보호 무역 조치 등이 진행되고 있고 혐중·혐한·혐일 등의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우리 외교의 변화도 필요해 보이는데요.
“대책을 마련해야죠. 상황이 정말 심각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던 용어가 사라졌어요. 바로 ‘세계화’죠. 하지만 현재 한국은 아직 세계화에 얽매여 있습니다.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지금 글로벌 외교 무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는 ‘뉴 노멀’입니다. 뉴 노멀은 기존 체제인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각국의 보호무역이 더 강화되는 비정상인 상황을 말하는데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미·중 무역 전쟁만 보더라도 어느 한쪽이 제압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 연출될 가능성이 높죠. 이 때문에 지금은 외교의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과거와 같이 이념적으로 묶어 했던 외교는 더 이상 실익이 없습니다. 협력할 땐 협력하고 실속을 챙길 땐 챙기는 고도의 외교력이 필요합니다.”

▷ 이러한 외교적 변화에 싱크탱크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거시적이며 복합 다중적인 연구가 필요하죠. 하나의 사안만 놓고 연구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는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미션 완료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주변 모든 나라가 우리에게 도전거리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를 해결하고 다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얽히고설킨 과제를 각국의 입맛대로 마구 던지고 있죠. 한마디로 외교적 도발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외교 문제가 발생하면 현실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싱크탱크는 한 발짝 뒤에서 각 사안을 정리하고 담론으로 발전시켜야죠. 그래야 다음에 이런 문제가 또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고 변형된 문제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 외교적 측면에서 한국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미국·중국·일본·북한 중 어느 곳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까요.
“앞서 말했듯이 한 나라의 문제만 풀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미국과 중국은 같이 엮어 해결해야 해요. 당장 한·미 관계, 한·중 관계를 떠나 보더라도 미·중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문제인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두 나라의 싸움에 우리가 끼여 있는 것이죠. 이 때문에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는 한국의 대응을 주목하고 있어요. 이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를 보고 연구하기 위해서죠.”

▷ 해결 가능성은 높습니까.
“저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봅니다. 한·미·중을 둘러싼 경제·외교적 문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급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는 미국과 중국에 끼여 한국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키를 잡게 됐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잘했기 때문이죠.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외교의 주축들이 중국의 대응법보다 한국의 대응법이 올바른 것이라고 보고 있고 한국을 치켜세우기 위해 혈안입니다. 이유는 미·중 무역 전쟁에서 불거졌던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이 미국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이겨야만 반서구적이고 반세계화적이며 권위주의인 중국을 누를 수 있는 것이죠. 한국의 발언권이 높아진 지금 이 기회를 활용해 그동안 얽혀 있던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야 합니다.”
“한국 코로나19 대응법 세계가 주목…미·중 사이에서 발언권 커졌죠”
▷ 한반도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현 정부의 임기도 그렇고 미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2019년의 재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반도 문제는 연도별로 온도차가 심했습니다. 2017년에는 최악이었고 2018년에는 180도 변한 급진전이 이뤄졌었죠. 2019년에는 진전과 교착이 반복되는 중간점이었어요. 당장 급한 것은 2017년으로 회귀하는 것을 막는 것이죠. 전면적인 비핵화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일부라도 비핵화를 이뤄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 놓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가 출범하든 정권이 바뀌든 한반도 평화 체제 기조가 이어질 겁니다.”

▷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외교적 역할은 무엇인가요.
“우선 여섯 개 플레이어(한국·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죠.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한국을 제외한 5개국의 통치자들이 모두 스트롱 맨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죠. 이들 모두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 영향력으로 행사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는 결코 이들의 희생양이 돼선 안 됩니다. 현재 한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6개국 중 가장 정치적 영향력을 갖지 않은 나라입니다. ‘평화’, ‘민주주의’, ‘국제 협력’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죠. 이 기조를 다음 정부도 계속 밀고 나가 다른 플레이어가 같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 북한과의 관계 회복 가능성은 있습니까.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여 어렵죠. 일단 북한은 우리가 미국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며 ‘한국이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느냐’는 자세를 보이고 있고 미국은 독불장군이죠. 현재 북한과 미국의 대화는 완전히 스톱된 상태 같습니다. 한국의 중재력도 2018년에 비해 약해졌고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과 미국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무엇을 제공할 것인지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 현재는 일종의 버퍼링이 걸려 있는 상황 같습니다. 단번에 해결하기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한·일 외교 관계도 심각해 보입니다.
“현 정부의 신념은 확실합니다. 과거사 문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에 길게 보는 반면 경제와 같은 실용적인 문제는 우호적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일본 아베 정부는 한반도 문제, 과거사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며 정치적 이익과 국가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선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현 정부의 외교력은 어떤가요.
“위기 속 기회란 말은 진부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국익을 위해선 일정 부분 희생도 필요하니까요. 특히 한반도 문제는 언젠가는 풀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언제까지 다른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희생당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문제는 능력인데 일단 열심히는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국내 싱크탱크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늘 아쉬웠던 것은 바로 네트워크입니다. 정부는 프로젝트 용역을 통해 민간 연구소에 많은 연구를 맡기지만 실제로 연구 결과물이 사용되는 사례가 적습니다. 정부와 민간 연구소, 민간 학자 그룹 간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그렇죠. 국립외교원이 국책 연구 기관으로서 정부와 민간 연구소를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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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0호(2020.03.30 ~ 2020.04.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