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진-하산 프로젝트’를 통한 유라시아 물류 루트의 장밋빛 청사진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온 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이제부터는 지분을 팔려는 측과 사려는
측의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지루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산책]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성공 조건
성기영 통일연구원 남북통합연구센터 연구위원

1968년생. 1991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2011년 영국 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 1995년 시사저널 기자. 2011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2014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현).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한반도를 종단한 후 러시아·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하는 물류 네트워크를 완성한다는 계획을 구체화해 가고 있다. 또 이를 위해 남북한과 러시아의 삼각 경제협력 방식으로 북한의 나진항을 개발하는 이른바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지난해 5월 북한·러시아 접경 도시인 러시아 하산에서 북한 나진에 이르는 54km의 철도 보수 작업이 완료됨으로써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포스코·현대상선·코레일 등 참여 기업 관계자들이 7월 15일부터 현장 실사를 위한 2차 방북을 앞두고 있고 러시아 측 회계 자료에 대한 한국 측의 실사도 진행되고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만큼 양국 정부와 기업들은 정치적·경제적 득실 계산에 분주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치적 측면만 살펴보면 이 사업의 효과는 충분하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분쟁 이후 서방국가들의 제재 국면에 맞닥뜨리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동북아시아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정부로서도 이 사업의 정치적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기대감을 가질 만하다. 남북 관계 개선을 필요로 하면서도 북한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정부로서는 북한과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를 남북 경협에 참여시킴으로써 사업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경제적 득실만큼은 좀 더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나진이 열리게 되면 실크로드익스프레스(SRX)를 통한 부산~모스크바 간 수송 기간이 20일이나 단축되는 듯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해상운송과 신규 노선을 통한 육로 운송을 비교했을 때의 수치일 뿐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현실화됐을 때 이 노선을 이용해 화물을 중앙아시아나 유럽으로 내보내게 될 기업들의 이해타산은 보다 구체적이다. 대부분의 물류 기업들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시베리아횡단철도(TSR)보다 중국횡단철도(TCR)가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TSR 노선도 모스크바행은 경쟁력이 있지만 유럽행 물량은 그만한 경쟁력이 확보되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부산~나진~모스크바 노선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항만을 현대화하고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는 한편 충분한 물동량을 확보한다면 경제적 효용성은 충분히 보장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전제 조건들 하나하나가 현재로서는 불확실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통한 유라시아 물류 루트의 장밋빛 청사진을 얘기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온 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이제부터는 이 사업을 위한 북·러 합작 법인의 지분을 팔려는 측과 사려는 측의 밀고 당기는 협상이 지루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사의 논리로 따지면 팔려는 사람은 좌판에 놓인 물건 값을 어떻게든 비싸게 부르려고 할 것이고 사려는 사람은 눈앞에 놓인 물건 앞에서 없는 흠집이라도 찾아내려고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이 프로젝트에 정부 기금 투입이 불가피할 가능성도 있다. 국익을 챙기는 지혜로운 방법을 놓고 협상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