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중심 통화 제도 한계 드러내…전문가들 ‘국가 간 조약’ 필요성 공감

<YONHAP PHOTO-0033> U.S. President Barack Obama pauses during a news conference in the White House Briefing Room in Washington, March 6, 2012. REUTERS/Jason Reed (UNITED STATES  - Tags: POLITICS HEADSHOT)/2012-03-07 04:24:50/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U.S. President Barack Obama pauses during a news conference in the White House Briefing Room in Washington, March 6, 2012. REUTERS/Jason Reed (UNITED STATES - Tags: POLITICS HEADSHOT)/2012-03-07 04:24:50/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오바마 정부가 집권 2기를 맞아 남아 있는 현안 가운데 대외 정책에서 금융 위기 극복으로 흔들렸던 달러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회복하는 일이 최대 난제로 꼽히고 있다. 금융 위기 직후 중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준비 통화인 특별 인출권(SDR)을 ‘슈퍼 통화’로 도입하자는 제안에 따라 세계 기축통화 논쟁이 거세진 적이 있었다.

그 후 잠잠하던 이 논쟁이 2011년 9월 이후 선진국이나 신흥국 가릴 것 없이 양적 완화 정책에 속속 동참하면서 환율 전쟁까지 가세돼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최근 들어 일본에 이어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중국의 무역수지 악화와 미국 국채 매입 축소로 브레턴우즈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런 우려대로 제2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다면 아직까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확실한 제2의 중심 통화가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브레턴우즈 체제하의 미국 달러화처럼 확실한 중심 통화가 구축돼야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크다.

향후 제2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다면 기축통화 속성상 과도기 단계에서 ‘중심 통화 혼돈(chaos of key currency)’ 시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최근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환율 전쟁과 중심 통화 혼돈 시대에 예상되는 불안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제통화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통화 질서는 달러화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가 지속돼 왔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에서는 미국의 달러화만이 금과 일정한 교환 비율을 유지하고 각국의 통화는 기축통화와의 기준 환율을 설정·유지함으로써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제무역을 증진시켰다.


공산주의 저지 위해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 유지
제2 브레턴우즈 체제는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 이후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를 골간으로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묵시적인 합의하에 유지해 온 환율제를 의미한다. 미국이 자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 체제를 유지해 온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숨은 의도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국제금융 역사에서 제2 브레턴우즈 체제는 이런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에서 제2 브레턴우즈 체제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의 부흥과 공산주의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지원했던 ‘마셜 플랜(Marshall plan)’의 또 다른 형태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 후 제2 브레턴우즈 체제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다. 아시아 통화에 대한 의도적인 달러화 강세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위험 수준에 달했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여러 방안을 동원했지만 결국 선진국 간의 미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달러화 중심의 제2 브레턴우즈 체제가 흔들리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금융 위기 극복 과정에서 누적된 재정 적자, 국가 채무 같은 구조적 문제점으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금융 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 효과(stigma effect)’다.

미국 이외 다른 국가들의 탈(脫)달러화 조짐도 원인이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 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들이 갈수록 가시화되고 있다. 즉, ▷중심 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 ▷중심 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글로벌 불균형 조정 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화 보유에 따른 부담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탈(脫)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미국이 처한 여건과 최근 보이는 입장을 감안하면 달러 약세는 오바마 정부의 남은 기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달러 약세가 진행될수록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달러 캐리 자금의 유입으로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는 절상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것이 미국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달러 약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이 의지와 관계없이 절상되는 자국 통화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외형상으로 달러 약세를 수용하는 일본은 엔화 가치가 80엔 밑으로 떨어져 ‘엔고 불황’이 현실화되자 잇따른 자산 매입 정책으로 맞대응하는 쪽으로 통화와 외환정책이 바뀌고 있다.

중국도 위안화 절상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오다가 올해 2월 이후 수출이 부진하자 미국의 위안화 평가절상 요구에 위안화 절하로 맞대응하는 자세로 전환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 등 다른 국가들도 자국의 통화가치가 절상되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금융 위기 이후 수시로 발생하는 환율 전쟁
이 때문에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 전쟁을 줄이기 위해 논의돼 왔던 안정책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태다. 2010년 이후 적자만 규제하던 종전과 달리 흑자에 대해서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상 흑자국들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는 추세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화 중심의 현 국제통화 제도는 갈수록 근본적인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어 새로운 중심 통화 논의를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제통화 제도는 1976년 킹스턴 회담 이후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국가 간의 조약이나 국제 협약이 뒷받침되지 않아 ‘없는 시스템(non-system)’ 혹은 ‘젤리형 시스템(jelly system)’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그 결과 킹스턴 회담 이후 달러화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이전보다 느슨하고 불안한 형태로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현재 국제통화 제도는 실질적으로 시스템이 아니므로(non-system) 중심 통화의 신뢰성이 크게 저하되더라도 이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미국은 경기 활성화 등을 위해서라도 대외 불균형을 시정하려고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국은 이를 조정할 유인이 별로 없어 글로벌 환율 전쟁이 수시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 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1980년대 중반 플라자 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용어 설명
트리핀 딜레마…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중심 통화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부채 증가로 신뢰성이 떨어져 공급된 통화가 중심 통화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메커니즘이 무너지고 궁극적으로 중심 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유동성과 신뢰성 간의 상충 관계를 말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