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승기는 고비용·저수익…장기적 안목서 역발상 투자 필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원자재 가격 하락은 자원 투자 신호탄
국제 원자재 시장의 추세적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원자재 시장은 지난해 초 이후 지속돼 온 슈퍼 사이클 종료 논쟁이 가열되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1990년대 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은 4번의 슈퍼 사이클을 경험했는데, 이번 논쟁은 4차 슈퍼 사이클에 대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강하게 상승하던 원자재 가격이 세계경제 저성장 위기가 확산되며 하락세로 반전돼 이를 두고 원자재 가격 상승 국면이 끝났다는 주장과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것이란 주장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슈퍼 사이클이 종료됐다고 주장하는 측은 선진국의 경기 침체, 중국의 성장률 둔화, 비전통 원유 생산 증가 등을 주된 논거로 삼는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도시화에 따른 지속적인 원자재 수요,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이유로 슈퍼 사이클의 종료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슈퍼 사이클이란 자원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후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현상으로 통상 20년 이상의 상승과 하락 주기를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쟁 특수를 기반으로 한 2차 슈퍼 사이클과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시작된 3차 슈퍼 사이클 등 20세기 들어 3차례의 슈퍼 사이클이 발생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슈퍼 사이클은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성장으로 촉발됐는데, 기상이변, 바이오 연료 생산, 투기성 자본의 유입 등 공급 및 금융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됐다. 올 들어서는 우크라이나와 이라크 사태 등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지정학적 위험도 가세하고 있다.


반등 없이 장기적 하락 국면 진입했나
국제 원자재 시장이 장기적으로 하락 국면에 진입했느냐 여부는 경기와 자원 시장 이슈라는 2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원자재 시장의 큰 흐름을 세계 경기 침체라는 거시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하락 국면의 속도와 기울기는 자원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요인들로 판단해야 한다.

미시적 요인으로는 셰일가스와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연료, 중국 자원 수요, 기상이변 등이 있는데, 자원 가격 하락 국면에서 세계 자원 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셰일가스 개발에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이 동참하면서 국제 원자재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예의 주시되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슈퍼 사이클 논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슈는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새로운 냉전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종 확인된 사망자가 무려 298명에 달하는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사건은 구냉전 시대의 최대 사건이었던 대한항공 격추 사건(사망자 269명)과 비교된다. 과거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과 현재 미국과 러시아 간의 신냉전 속에 구소련이나 러시아가 격추의 주체였거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두 사건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원자재 가격 하락은 자원 투자 신호탄
앞으로 신냉전 시대가 도래된다면 현재의 국제 관계는 정치·군사적 전쟁보다 경제 주도 양상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가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이 국내에서 생산된 원유를 수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안정을 유지했지만 앞으로 셰일가스 개방을 통해 수출을 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때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원유의 가격이 미국의 셰일가스 개방으로 하락하면 러시아 경제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응해 러시아는 미국의 국채를 팔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재 러시아가 소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는 1300억 달러에 불과해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는 러시아와 유럽 간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그동안 유럽이 중심이 돼 왔는데 이마저도 러시아 경제에 타격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럽과 러시아보다 미국과 러시아로 갈등 관계의 축이 바뀌었는데 미국이 이제는 2차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지금까지 취한 러시아 기업과 러시아인에 대한 여행 금지, 자산 동결과 비교하면 매우 확대된 조치이지만 러시아 경제의 핵심 부문을 완전히 차단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셰일가스, 미·러 신냉전 등이 교란 요인
앞으로 서방과 러시아 간의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초강경 제재 조치와 맞대응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강경한 제재 조치가 단행된다면 러시아 경제가 경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른 세계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세계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러시아가 서방의 확대된 경제제재에 대해 자국의 주요 수출품인 에너지 및 곡물 수출을 중단하는 등 부분적으로 맞대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여전히 변수가 남아 있다.

현재 원자재 슈퍼 사이클은 4차 슈퍼 사이클의 상승 에너지가 소진돼 장기 하락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위의 요소들이 국제 원자재 시장의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자원 수급을 결정짓는 세계 경기변동이라는 거시적인 틀 속에서 자원 시장을 구성하는 미시적인 요인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자원 가격의 단기적인 변동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주기 현상을 이해하고 선제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인 시세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관리 기술이 필요하지만 장기 추세에 대해서는 추세 전망을 기반으로 한 대응 체계가 필수적이다. 한국처럼 원자재 자급도가 크게 떨어지는 국가일수록 그렇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원자재 슈퍼 사이클의 정점을 확인한 후 자원 탐사 및 개발과 관련된 기술 투자를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격 상승 국면이 본격화되는 시기의 자원 확보 투자는 고비용·저수익 사업인데, 원자재 시장이 정점을 지난 후퇴기와 불황기가 투자의 적기로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원자재 가격 하락기에는 자원 생산 기술 및 서비스에 대한 단기 기대 수익률이 낮아져 투자가 위축되지만 장기 기대 수익률은 오히려 높아지므로 역발상 투자가 필요하다. 원자재 시장 후퇴기에 실행한 투자의 결실은 다음 차례의 상승 국면에서 발생하므로 장기적인 인내를 가져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