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미쓰비시·맥라렌 등 인수·제휴 잇단 실패, 스마트도 스와치와 결별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고급차 대명사 벤츠…협업에선 번번이 좌절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메세에서 2013년 9월 9일 열린 메르세데스-벤츠의 국제자동차전시회(IAA:프랑크푸르트모터쇼) 전야 행사, 음악과 함께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회장이 신형 S500의 뒷자리에 앉아 무대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체 회장이 탄 차는 자율 주행 자동차였다.

차에서 내린 제체 회장은 다시 한 번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자율 주행 자동차인 ‘S500 인텔리전스 드라이브’로 독일 남서부의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62마일(103km) 구간을 운전자 없이 스스로 주행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이번 성공을 기반으로 2020년까지 양산형 자율 주행 자동차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고속도로나 성능 시험용 트랙이 아닌 일반 도로에서 100km가 넘는 거리를 자율 주행한 것은 벤츠가 처음이었다.


“교통사고와 배기가스 없는 차 만든다”
벤츠가 테스트한 자율 주행 코스는 125년 전 칼 벤츠의 부인인 베르타 벤츠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몰고 여행했던 구간으로, ‘메모리얼 루트(memorial route)’라고도 불린다. 이 구간은 구불구불한 시골길과 고속도로, 복잡한 도심이 모두 섞여 있다. 제체 회장이 말을 이어 갔다. “벤츠의 최종 목표는 교통사고와 배기가스가 없는 자동차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고틀립 다임러와 칼 벤츠가 말 없이 움직이는 마차를 발명한 것처럼 공해와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차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부터 미래의 자동차인 자율 주행 자동차까지, 벤츠는 기술력을 통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다임러그룹은 벤츠의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통 강자라는 탄탄한 입지를 기반으로 경차부터 슈퍼카까지 아우르는 협업을 진행하는 한편 경차부터 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 부문까지 전방위로 영역을 확장했다. 만들지 못하는 차가 없는 다임러그룹의 역사는 자동차 제조 기술과 산업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칼 벤츠는 1883년 독일 만하임에서 세계 첫 자동차 생산 공장인 ‘벤츠&시에(Benz&Cie)’를 세웠다. 그리고 2년 6개월 뒤인 1886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불리는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내놓았다. 1893년에는 앞바퀴를 여러 각도로 돌릴 수 있는 신차 ‘빅토리아’를 개발해 판매했다. 이 차량은 1900년까지 7년간 매년 600대 정도가 판매됐다.

당시 벤츠의 경쟁자로 고틀립 다임러가 있었다. 1886년 ‘말 없는 마차’라는 이름의 모터 장착 틀을 개발했고 1890년 DMG(Daimler-Motoren-Gesellschaft)를 설립했다. DMG는 1890년 96대의 차량을 만들어 팔았는데, 이때부터 ‘메르세데스’ 브랜드를 사용했다. 이는 오스트리아 사업가 에밀 옐리넥의 딸 이름이다. 옐리넥은 36대의 차량을 구입하며 다임러에 몇 가지를 제안했다. 유럽 일부와 미국의 독점 영업권, 차량에 딸의 이름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다임러는 시장에서 반응이 좋자 아예 모든 차에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1914년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두 회사는 독일 군용차를 만들었다. 이후 1920년대 독일의 경기 침체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두 회사는 1926년 합병했다. 사명은 다임러벤츠AG였다. 경영은 칼 벤츠가 맡았다. 다임러벤츠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에는 메르세데스-벤츠라는 이름이 붙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설립 당시부터 그랬듯이 기술적으로 한 발 앞서나갔다. 먼저 1928년 내놓은 고성능차 메르세데스 SSK는 13일 동안 쉬지 않고 2만km를 달리는 동안 단 한 번도 고장이 나지 않았다. 오늘날의 기준에서도 높은 수준의 내구성이다. 1935년 디젤엔진이 탑재된 최초의 승용차 260D를 내놓았고 1940년까지 2000대를 만들었다. 1951년에는 사고 시 탑승객들이 다치지 않도록 충격을 흡수하는 크럼플 존 개념도 처음 도입했다. 안전벨트와 안티록브레이크시스템(ABS)도 처음 양산 적용했고 1959년에는 세계 최초로 충돌 테스트를 진행했다.

1954년에는 지금까지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300SL을 내놓았다. 300SL은 경주용차를 기본으로 제작됐는데, 도어가 위쪽으로 열리는 ‘걸윙 도어’ 방식을 처음 적용했다. 당시 이 도어에 대한 개념은 있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양산 적용은 이뤄지지 않던 상황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를 해결했고 디자인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걸윙 도어를 처음 적용할 수 있었다. 배기량 3.0리터짜리 6기통 엔진을 탑재했고 최고 출력 215마력, 최고 속도 시속 250km의 성능을 갖췄다. 1963년까지 10년간 3258대가 생산됐다.


크라이슬러 재매각…무너진 자동차 제국의 꿈
다임러벤츠AG는 메르세데스-벤츠를 중심으로 다양한 회사들과 협업했다. 인수·합병(M&A)에서부터 지분 참여, 기술제휴 등 방식도 다양했다. 기술력과 부가가치는 높지만 차량 판매 대수가 적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임러가 손댄 협업은 대부분이 실패했다. 오늘날 도요타·혼다·현대차 등이 협업보다 자체 해결에 무게중심을 둔 건 이 같은 협업에서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임러그룹의 역사상 가장 큰 M&A는 1998년 크라이슬러와의 인수·합병일 것이다. 위르겐 슈렘프 당시 다임러그룹 회장이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360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 이로써 크라이슬러가 갖고 있던 닷지·지프까지 모든 차종을 아우르는 자동차 제국을 완성했다. 당시 기준으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세계 3위 제조사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 ‘세기의 결혼’은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2007년 파경을 맞았다. 하나의 몸체를 이루지 못한 채 공전하던 두 조직의 효율성은 낮았고 벤츠의 폐쇄성으로 크라이슬러의 기술 발전은 더뎠다. 이 M&A의 실패를 책임지고 슈렘프 회장은 퇴진했다. 이어 지휘봉을 잡은 이가 바로 디터 제체다(한경비즈니스 8월 22일자 참조).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영역 확장을 위한 노력은 끝이 없었다. 2000년 3월 27일 이 회사는 일본 미쓰비시와의 자본 제휴를 발표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가 20억 유로를 투자해 미쓰비시 지분 34%를 확보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유럽 소형 승용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아시아 시장까지 세력을 넓히고자 했다. 당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매출액의 25%를 성장 지역인 아시아에서’라는 장기 목표도 세우고 있었다. 다임러는 제휴 이후 미쓰비시에 대한 지분은 37.3%까지 늘렸다. 인수까지 고려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04년 4월 다임러는 경영 위기에 빠진 미쓰비시에 대한 증자를 발표했다. 2007년까지 다임러크라이슬러가 4500억 엔, 미쓰비시그룹이 1000억 엔, 기관투자가들로부터 2000억 엔 등 총 7500억 엔 규모였다. 경영난을 겪고 있던 미쓰비시를 지원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크라이슬러 역시 경영 악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주들과 내부 경영진의 반대에 부닥친 슈렘프 회장은 결국 미쓰비시에 대한 지원을 전격 철회했다. 결국 다임러는 2005년 11월까지 보유한 미쓰비시 지분을 단계적으로 전량 매각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2007년 크라이슬러를 매각하면서 사명을 다임러AG로 변경했다.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고급차 대명사 벤츠…협업에선 번번이 좌절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와의 협업으로는 맥라렌을 꼽을 수 있다. 맥라렌은 포뮬러 원(F1)에서 전통의 강자 페라리와 가장 오랫동안 맞붙어 온 영국의 모터스포츠 팀이자 스포츠카 제조사다. 1963년 영국의 쿠퍼 팀에서 레이서 겸 엔지니어로 활동 중이던 뉴질랜드 출신의 브루스 맥라렌이 독립해 세운 ‘브루스 맥라렌 레이싱팀’이 시작이다.

맥라렌은 1995년 혼다가 F1에서 철수한 후 엔진 공급자를 찾지 못하다가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을 잡았다. 이 협력은 양산차 부문에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물이 2003년 공개된 ‘SLR 맥라렌’이다. 맥라렌이 차체 설계와 생산까지 맡았다. 벤츠의 5.4리터 8기통 슈퍼차저 엔진을 얹어 최고 출력 626마력의 성능을 갖췄다. 벤츠와 맥라렌과의 협업은 2014년으로 막을 내린다. 맥라렌은 2015년부터 F1에서 혼다 엔진을 공급받는다.

‘벤츠=S클래스’라는 상징적인 개념은 오랫동안 소비자들 사이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 정도로 최고급차는 역시 벤츠라는 인식이 컸다. 벤츠 S클래스의 존재감과 높은 경쟁력이 빚은 결과다. S클래스의 시작은 1903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60hp’가 출시되면서 시작됐다. 최고 출력 60마력의 이 차량은 최고 속도 시속 109km를 기록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벤츠는 1928년 출시된 W08 모델을 교황에게 선물했고 ‘교황의 차(포프 모빌:Pope Mobil)’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벤츠의 포프 모빌 역사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S클래스라는 모델명이 적용된 것은 1972년이었다.

이런 벤츠가 경차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스마트’라는 경차 브랜드는 알고 있지만 이 브랜드가 다임러AG 소유의 브랜드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벤츠에서 우회적으로 경차를 판매하는 셈이다. 시발점은 시계 제조사인 스와치다. 모기업 SMH를 이끌던 니콜라스 하이에크가 2인승 고연비 경차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파트너를 물색했고 1991년 7월 폭스바겐과 손잡았다. 하지만 1993년 폭스바겐 회장 자리를 꿰찬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에 의해 협력은 끊겼다. 피에히 회장이 경차를 독자 개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경차 스마트
이후 1994년 스와치는 벤츠와 협력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마이크로 콤팩트 카(MCC)’라는 합작사를 세웠다. SMH가 49%, 다임러AG가 51%의 지분을 가졌다. 브랜드는 스와치의 S와 메르세데스의 M, 여기에 아트(art)를 붙인 ‘스마트’로 정했다. 1998년 7월 첫 결과물인 ‘시티’가 나왔다. 첫 차가 나온 이 시기에 스와치는 사업에서 손을 뗐다. 하이에크 회장이 벤츠와의 잦은 의견 충돌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이에크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원했지만 벤츠는 가솔린엔진을 고집했다. 벤츠는 MCC의 잔여 지분을 모두 인수했고 지금까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S클래스와 E클래스를 주력으로 만들던 벤츠는 1982년 콤팩트 세단인 190시리즈를 내놓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전륜구동 방식의 소형차 A, B클래스도 출시하는 등 경차부터 대형차까지 라인업을 갖췄다.

상용차 부문도 적극적으로 키웠다. 전쟁 중 군수물자를 대기 위해 상용차 제조를 시작한 다임러AG는 이후 트럭과 버스 사업에 본격 나섰다. 현재 벤츠 트럭과 미쓰비시와 합작한 FUSO, 프레이트 라이너(Freightliner), 웨스턴 스타 등 다양한 상용차 부문 브랜드를 갖고 있다. 다임러AG는 점차 경쟁이 심화되는 프리미엄 승용차 시장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묘수를 고민한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