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이탈 우려로 경기 둔화 속 금리 인상…남미·신흥 유럽 등 위험성 높아져

미국 경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2014년 11월 미국의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예상치인 23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32만1000명으로 ‘서프라이즈’를 나타낸 데 이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11년 만에 최고치인 5.0%를 기록했다. 주요국 중에서 경제지표와 기업의 이익 전망치가 동시에 꾸준히 개선되는 곳은 거의 미국이 유일하다.

그 영향으로 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 인덱스 역시 9년여 만에 최고치를 넘어섰다. 최근 3개월간 달러 인덱스와 미국 증시는 각각 5.7%와 3.0% 상승했다. 선진국 증시는 1.1% 상승에 그쳤다.

반면 신흥국은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경제와 주식시장은 상당히 부진하다. 최근 3개월간 신흥국 주식과 달러 대비 통화가치는 각각 5.1%, 8.1% 급락했다. 그나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에서 약 19%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주식시장이 상하이와 홍콩 증시 간의 교차 매매를 허용한 후강퉁 등 당국의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로 33.4% 급등했지만 전체 신흥국 지수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산유국인 러시아가 마이너스 34.4%, 브라질이 마이너스 14.1%나 급락했고 한국 마이너스 6.0%, 남아프리카공화국 마이너스 5.4% 등 대부분의 신흥국 증시는 부진한 모습이다.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교역량의 감소로 신흥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과 중국 수요 부진에 영향을 받는 원자재 생산 신흥국의 타격이 심하다.


금리 상승 시 ‘엎친 데 덮친 격’ 돼
이런 와중에 2014년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015년 중반 이후 기준 금리 인상에 대한 시각을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FOMC는 성명서에서 “양적 완화 종료 뒤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현재의 제로 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문구를 유지했다. 반면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최소한 두 차례의 회의에서는 금리 인상 결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당장 2015년 4월부터 인상 가능성이 열렸다는 의미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1차적으로 달러 강세와 신흥국 통화 약세, 2차적으로 글로벌 금리 상승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자금 유출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흥국들에는 부정적인 뉴스다.
부채 쌓아 둔 신흥국, 악순환에 직면
그러나 성명서와 옐런 의장의 발언에서 “금리를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앞당겨 인상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가이던스의 변경이 정책 기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하는 데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고 동시에 밝힘으로써 조기 금리 인상에 대한 리스크를 차단하는 모습이었다. 2015년 중반께부터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기존의 통화정책 스탠스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옐런 의장은 “유가 하락은 미국 경제에 긍정적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 및 금융 연계성은 비교적 작다”라고 언급함으로써 최근 유가 하락과 러시아 사태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주로 정부의 부채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섰다. 선진국들의 가계 부채는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의 영향으로 오히려 경제 규모 대비 감소했다. 반면 신흥국들은 정부·가계·기업의 부채가 경제 규모 대비 모두 증가했다. 특히 비금융 기업의 부채는 급증했다. 달러 차입 비중도 높아졌다.

홀로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는 미국 경제와 2015년 중반 이후 Fed의 금리 인상 예상으로 달러의 초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신흥국 통화 약세와 함께 금리 상승까지 시작된다면 신흥국들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통화가치 급락으로 달러 차입을 늘렸던 신흥국들의 부채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신흥국 통화지수는 2008년 8월 고점 대비 마이너스 31%, 2011년 5월 고점 대비 마이너스 28%나 급락한 상태다.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가치의 급락을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방어하고 있다. 2014년 6월 말 대비 신흥국들의 외화보유액은 1770억 달러가 감소했다. 대외 건전성도 약화되고 있다.

성장과 물가,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외화보유액과 대외 부채, 공공 부채와 민간 부채 등의 항목을 비교했을 때 신흥 아시아보다 남미와 EMEA(신흥 유럽·중동·아프리카)의 위험성이 높다. 남미·EMEA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와 상대적으로 높은 대외 부채 비중과 낮은 외화보유액을 가지고 있다. 달러 강세와 신흥국 통화 약세가 먼저 나타나는 국면에서는 1차적으로 러시아·브라질·남아공·터키 등 남미와 EMEA 국가들의 위험이 먼저 부각될 수밖에 없다.

다만 신흥 아시아도 가계와 비금융 기업 등 민간 부채의 위험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중반 이후 미국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2차적으로 글로벌 금리가 상승한다면 그때는 민간 부채의 취약성을 가지며 금리 위험이 높아진 중국·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미·EMEA의 위험은 외화 유동성 위기로 디폴트의 위협과 직결되고 있지만 아시아의 금리 위험은 성장 정체와 디플레에 대한 위험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신용 등급 등으로 디폴트와 거리가 멀다는 점은 다행스럽지만 신흥국 특유의 성장성을 잃어 가고 있다는 점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 건전성 좋지만 성장 둔화
환율 전쟁과 달러 강세에 대한 대응은 국가마다 다르다. 자금 이탈 우려가 있는 신흥국들은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기준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브라질과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브라질은 2014년에만 1.75% 포인트나 기준 금리를 인상했고 러시아는 2014년 12월 중 급격한 자금 이탈을 방어하기 위해 한 번에 6.50% 포인트나 기준 금리를 올렸다. 러시아의 하루짜리 기준 금리는 무려 17.0%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 금리를 올리다 보니 펀더멘털이 더 나빠진다.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플레 위험이 더 높아진다. 신흥국은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대내외 건전성 지표들이 상당히 양호하다. 특히 재정 건전성은 신흥국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 대외 부채 비중도 가장 양호한 편에 속한다. 달러 강세에 대한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 다른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의 약세를 방어하기 위해 개입하지만 한국은 엔화 약세에 동조화시키기 위해 원화를 약세로 만들기 위한 개입에 나서고 있을 정도로 신흥국들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금융 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체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위기에 대비하느라 정부와 민간이 모두 막대한 현금을 쌓으면서 현재의 안정성이 상당히 확보됐다. 2014년 연초 이후 전 세계 33개 주요 통화 중에서 달러 대비 통화가치 상승률은 4.7% 하락하며 9위 수준이다. 반면 투자와 산업구조 재편이 늦어지며 성장성 측면에서는 상당히 뒤처지는 모습이다. 2014년 연초 이후 전 세계 58개 주요 증시 중에서 코스피는 4.0% 하락으로 48위를 기록했다. 안정성이 낮고 성장성이 높은 신흥국의 전통적인 특징과는 사뭇 다르다.

다만 약점이 있다면 민간 부채다. 경제 규모 대비 공공 부채는 작지만 민간 부채 비중은 신흥국 중 가장 높다. 2013년 말 가계와 비금융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중은 각각 86%, 108%로 2007년 말 대비 약 14~18% 포인트 증가한 규모다. 한국은 신흥국 중에서 향후 금리 상승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금리가 낮은 것도 리스크를 높이지만 이제는 금리가 상승할 때의 리스크도 동시에 커졌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정책은 정체성의 혼란으로 방향성을 잃어버린 듯하다. 다소 늦었지만 2015년 경제정책 방향의 어젠다를 구조 개혁으로 설정한 만큼 기대를 걸어본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 djshin@hana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