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으로 모라토리엄 몰린 러시아, 신냉전 불붙일 수도

‘10년 위기설’ 악몽…신흥국이 위험하다
새해 들어서도 원유를 중심으로 국제 원자재 시장의 추세적인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원자재 시장은 ‘슈퍼 사이클’ 종료 논쟁이 더 가열되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슈퍼 사이클은 자원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후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현상으로 통상 20년 이상의 상승과 하락 주기를 갖는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쟁 특수를 기반으로 한 2차 슈퍼 사이클과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시작된 3차 슈퍼 사이클 등 20세기 들어 3차례의 슈퍼 사이클이 발생했다.

이번 논쟁은 ‘4차 슈퍼 사이클’에 해당되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강하게 상승하던 국제 원자재 가격은 세계경제 저성장 위기가 확산되며 하락세로 반전됐다. 이를 두고 원자재 가격 상승 국면이 끝났다는 주장과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것이란 주장이 동시에 제기돼 왔다. 2014년 하반기에는 ‘슈퍼 사이클 국면이 사망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하락 폭이 컸다.
‘10년 위기설’ 악몽…신흥국이 위험하다
슈퍼 사이클이 종료됐다고 주장하는 측은 ▷선진국의 경기 침체 ▷중국의 성장률 둔화 ▷비전통 원유 생산 증가 등을 주된 논거로 삼는다. 하지만 ▷중국·인도 등 신흥국의 도시화에 따른 지속적인 수요 ▷중동(MENA)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이유로 슈퍼 사이클의 종료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특히 4차 슈퍼 사이클 종료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2000년대 들어 원자재 가격이 추세적으로 올랐던 것은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성장 촉발 ▷기상이변 ▷바이오연료 생산 ▷투기성 자본의 유입 등 공급과 금융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지정학적 위험도 가세돼 왔다.


원자재 슈퍼 사이클 끝났나
원유 등 국제 원자재 시장이 장기적으로 하락 국면에 진입했느냐의 여부는 경기와 자원 시장 이슈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원자재 시장의 큰 흐름을 세계경기 침체라는 거시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하락 국면의 속도와 기울기가 자원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요인들로 판단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미시적 요인으로 셰일 가스,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연료, 중국의 자원 수요, 기상이변 등이 있는데, 자원 가격 하락 국면에서 세계 자원 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셰일가스 개발에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이 동참하면서 국제 원자재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슈퍼 사이클 논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슈는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새로운 냉전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시대를 낳은 시대적 배경과 최근 신냉전 우려가 제기되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여건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다면 현재의 국제 관계는 정치·군사적 전쟁보다 경제 주도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경제적 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국내에서 생산된 원유를 수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안정을 유지했지만 앞으로는 셰일가스 개방을 통해 수출을 재개하겠다고 언급한 상태다.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원유 가격이 미국의 셰일가스 개방으로 하락하면 러시아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응해 러시아는 미국의 국채를 팔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재 러시아가 소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는 1300억 달러어치에 불과하다.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올해도 서방과 러시아 간의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초강경 제재 조치와 맞대응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러시아가 서방의 확대된 경제제재에 대해 자국의 주요 수출품인 에너지 및 곡물 수출을 중단하는 등 부분적으로 맞대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다.


선진국 금리 인상이 위기 시점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세가 지속됨에 따라 연초부터 각종 위기설도 고개를 들고 있다. 러시아의 둘째 모라토리엄 우려, 그리스발 유로존 2.0 위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가능성,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제2의 외채 위기, 중국의 부동산 거품 붕괴설, 한국의 골든타임 위기설 등이 그것이다.

최근 나돌고 있는 위기설이 빠르게 공감대를 얻어 가는 것은 위기가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되는 ‘주기설’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1987년 10월의 블랙먼데이, 1997년 10월 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10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처럼 금융 위기가 10년마다 반복된다는 10년 주기설이다. 차기 위기는 10년 주기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경고가 오래전에 나왔다.

지금까지 금융 위기의 시장별 발생 패턴과 미국의 금리 인상을 예상해 보면 다음 위기는 신흥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1983년 이후 발생한 신흥국의 위기 15건은 대부분이 선진국의 금리 인상 기간 전후로 발생했다. 1999년 이후 2012년까지 강세 국면을 펼쳐 왔던 신흥국 상품 시장은 오래전부터 차기 위기 후보지로 주목 받아 왔다.

‘하나의 세계(One World &One Market)’로 상징되는 초연결 시대로 접어든 이후 위기 판단 기법으로 캐나다 중앙은행이 개발한 금융 스트레스 지수(FSI:Financial Stress Index)가 각광 받고 있다. 종전의 판단 지표는 각종 위기를 제한적으로 접근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움직임과 위기 발생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지수화해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 스트레스 지수는 ‘금융시장과 정책 당국의 불확실한 요인에 따라 경제 주체가 느끼는 피로도’로 정의된다. 금융 변수의 기댓값이 변하거나 분산이나 표준편차로 표현되는 리스크가 커질 경우 금융 스트레스를 높이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특정국의 피로도가 높게 나오면 유입됐던 외자가 미국 금리 인상과 같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신흥국별 금융 스트레스 지수를 산출해 보면 경상과 재정수지가 건전하고 외화보유액을 충분히 쌓아 놓고 있는 중국·대만·홍콩·한국 등은 위기 가능성이 작게 나온다. 하지만 외화보유액이 적고 경상과 재정적자가 심한 러시아·베네수엘라·우크라이나·아르헨티나 등은 높게 나온다. 모두 유가 움직임이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국가들이다.

2015년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는 한국 경제로서는 각종 위기설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충격이 의외로 커질 수 있다. 당리당략과 이해관계보다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는 목표와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투자자로서는 6년 전 금융 위기 사태처럼 예기치 못하는 상황에서 닥치는 재산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