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이어 시중은행 진출 초읽기…일본은 안착까지 10년 걸려}

[한경비즈니스= 조현주 기자] “중금리 대출 시장을 잡아라.” 금융권에서 ‘중금리 대출’ 열풍이 불고 있다. 중금리 대출은 중간 단계의 신용 등급(4~7등급)을 지닌 고객을 대상으로 연이율 10% 안팎의 신용 대출을 해주는 것을 이른다.

불과 2~3년 전 P2P(개인 대 개인) 업체들이 문을 열었던 중금리 대출 시장에 이제 저축은행·카드사·캐피털사는 물론이고 올 하반기에는 시중은행까지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P2P 대출 스타트업들이 시장 개척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SGI서울보증과 함께 오는 7월 연 10%대의 중금리 대출 상품을 쏟아낼 예정이다. SGI서울보증에 따르면 금리는 연 10~15% 수준이며 대출 한도는 2000만원, 상환 기간은 5년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신용 등급 4~7등급 ‘중신용자’들도 보다 저렴한 수준의 금리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시중은행이 중금리 대출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차원의 일이긴 하지만 중금리 대출 시장을 넓혀 갈 수밖에 없는 금융 당국의 의도도 엿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올 초 업무 보고를 통해 ‘10%대 중금리 대출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2일 금융위원회는 SGI서울보증·전국은행연합회·저축은행중앙회와 함께 ‘중금리 신용 대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들은 중금리 신용 대출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중금리 신용 대출 상품 개발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붐비는 중금리 대출 시장, 부실 위험은 없나
(사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지난 3월 2일 하영구(왼쪽 둘째) 은행연합회 회장, 임종룡(왼쪽 셋째) 금융위원회 위원장, 최종구(맨 왼쪽) SGI서울보증 사장,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이 중금리 신용 대출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 당국은 신용 등급 4~7등급의 중신용자를 대상으로 연 10% 내외의 중금리 대출을 1조원 규모로 공급할 계획이다. SGI서울보증이 대출금에 대해 100% 보증을 서고 은행과 저축은행이 보증보험료 등 원가 요소에 마진을 덧붙여 판매하는 방식이다.

시중은행에 앞서 중금리 대출 시장에 뛰어들었던 저축은행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앞다퉈 상품을 출시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우선 SBI저축은행과 JT친애저축은행은 현재 연체율 ‘제로’를 기록하며 중금리 대출 시장 저변을 넓혀 나가고 있다.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12월 21일 모바일 중·저금리 신용 대출 상품 ‘사이다’를 업계 최초로 출시했고 현재 누적 대출액은 약 580억원대에 이른다. SBI저축은행의 사이다는 카드사의 카드론보다 금리가 낮고 최저 연 6.9%부터 최고 13.5%까지 금리를 신용 등급별로 사전에 확정해 대출을 실행하는 게 특징이다.
붐비는 중금리 대출 시장, 부실 위험은 없나
JT친애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 상품도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원더풀 와우론’은 지난 4월 말 누적 기준 300억원이 넘어선 상태고 금리는 연 12~19.9%이며 대출 금액이 500만원을 초과하면 최장 6년에 나눠 장기 상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 중금리 대출은 불과 2~3년 만에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급격히 자리를 잡고 있다. 시장 확대의 속도는 빠르지만 금융권에서 이에 따른 리스크 관리에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유사한 시장이 형성된 일본은 중금리 대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자리를 잡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일본에서는 2010년 전후로 대금업법이 개정돼 대금업체 기반이 위축되기 시작했고 일본 은행들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중금리 대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개정 대금업법을 시행하면서 일본의 은행들은 중금리 대출 상품으로 수익성이 높은 중금리 대출 상품인 카드론 판매에 주력하게 됐다. 일본 은행들은 중간 단계의 신용 등급을 지닌 고객에 대한 신용 평가 기술을 보유한 대부업체 등과 보증 계약을 체결하는 등 자발적으로 향후 생겨날 수 있는 부실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정부, ‘1조 보증’ 앞세워 활성화 주도

전문가들은 한국 또한 중금리 대출 시장의 확대로 부실화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에 대해 김혜미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정부가 은행에 대한 1조원대의 보증에 나서고 있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그렇다 보니 중금리 대출 시장이 (일본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하지만 중신용 고객에 대한 신용 평가 기술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앞으로 1조원의 대출로 데이터가 쌓이면 이를 통해 부실을 막을 방안을 더 강화하는 식의 대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