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헤지펀드 퇴조 속 나홀로 고수익…사내 유보금 두둑한 일본·한국 기업 정조준
행동주의 헤지펀드, ‘아시아 대공습’ 나섰다
(사진) 폴 엘리엇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삼성전자에 대한 ‘행동주의 헤지펀드(activist hedge funds)’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2차 공세가 시작됐다.

엘리엇은 삼정전자에 배당 확대, 지배 구조 개선, 나스닥 상장 등을 요구함과 동시에 이사회 진출까지 제안했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세계적으로도 점점 더 세를 불려 가고 있는 추세다.

헤지펀드는 다양한 전략을 활용해 ‘절대 수익률’을 추구하는 펀드를 뜻한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헤지펀드의 한 종류다. 이들이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은 ‘경영 개입’을 통해서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정의에 따르면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기업의 주식 매입을 통해 의결권을 확보한 뒤 자사주 매입, 구조조정, 지배 구조 개선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함으로써 투자 수익을 내는 펀드를 말한다. 재무적인 목적으로 투자해 기업의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일반적인 헤지펀드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일반적으로 5~10% 수준의 지분을 확보한다. 이후 기업의 분산된 지분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존 경영진이 아닌 기관투자가, 개인 투자자와의 협력을 통해 영향력을 키운다. 2007년 JP모간 조사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비율은 전체 헤지펀드 시장에서 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엇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해 온 대표적인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엘리엇은 1977년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이 설립했다. 엘리엇의 연평균 수익률은 14.6%이며 운용 자산은 290억 달러(약 32조원) 수준이다.

엘리엇이 유명해진 것은 아르헨티나 국채 투자를 통해서다. 2001년 아르헨티나는 기술적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그 당시 채무의 71~75%를 탕감해 준다는 합의안에 다수의 국제 채권단이 참여한 반면 엘리엇은 합의를 끝까지 거부하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액면가 13억3000만 달러의 국채를 4800만 달러에 구입한 엘리엇은 원금과 이자 모두를 내놓으라며 이후 10년이 넘는 긴 소송전을 벌였다. 결국 법원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16억 달러를 상환할 것을 판결했고 이는 2014년 아르헨티나 재정 위기의 단초가 됐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아시아 대공습’ 나섰다
◆최근 1년 수익률 8.8% …헤지펀드 중 톱

엘리엇 이슈로 한국에서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재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성장세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헤지펀드’는 확연한 하락세다. 글로벌 헤지펀드 전문 평가 업체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올해 평균 수익률은 1.3%에 불과하다. 미국 주식시장이 올해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기준 5% 이상 오르면서 강세장을 펼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조한 성과다.

이 때문에 올 들어 지난 7월 말까지 헤지펀드에서 이탈한 자금은 559억 달러(약 62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9년 이후 7년 만에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한때 제임스 사이먼 르네상스테크놀로지 회장,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 등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들이 금융 위기를 통해 천문학적 수익을 내서 미국 국회의 청문회장까지 불려갔던 것을 되돌아보면 ‘격세지감’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시장 하락에 베팅했던 헤지펀드들의 수익률이 부진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헤지펀드의 한 종류인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상황이 정반대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지난 8월 말 기준 최근 1년 평균 수익률이 8.8%에 달한다. 롱쇼트·이벤트드리븐 등 주요 10개 헤지펀드 전략 가운데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유독 좋은 성과를 유지하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이들의 전략이 ‘보다 정교해지고 치밀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규모가 작고 자본력이 약한 기업을 겨냥했다. ‘잡음’을 일으킨 뒤 주가를 올리고 빠져나가는 단기 투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이들이 대기업으로 타깃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다. 강화된 규제 속에서 수익률을 내기 위해 택한 전략은 주주 가치 극대화를 내세운 경영 개입이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은 핵심 철학은 ‘주주 가치 극대화’와 ‘공정성’이다.

이들은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투자 기업들에 대해 다른 어떤 기관투자가보다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혹은 지배 구조 개선 등에 대해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나아가 경영진 교체는 물론이고 회사를 팔거나 인수하라고 압박했다. 이마저도 힘들면 소송도 불사했다. 특히 이들은 언론 플레이에 능해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의 15% 이상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애플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P&G·모토로라·야후 등 글로벌 기업들도 이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엘리엇과 함께 대표적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칼 아이칸은 2013년 10월 애플의 현재 주가가 기업 가치보다 낮다며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아이칸은 애플 주식을 꾸준히 사들인 뒤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아이칸의 요구에 굴복한 애플이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한 이후 애플의 주가는 2년 동안 상승했고 아이칸은 경영 개입을 통해 약 100%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막대한 수익을 내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전문 매체인 액티비스트인사이트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는 2010년 76개에서 2015년 397개로 5년 사이 약 5.2배 급증했다. 이들이 타깃으로 삼은 기업도 2010년 136개에서 2015년 551개로 약 4배 증가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주주의 단기적 이익만 지나치게 강조해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체돼 있는 기업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아시아 대공습’ 나섰다
◆정교해진 투자 전략…성공률도 ‘쑥’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긍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7월 6일 출시 후 2주 만에 45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해 닌텐도의 주가 급등을 견인하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모바일 콘솔 게임 포켓몬 고의 탄생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포켓몬 고의 개발을 주도한 것은 닌텐도가 아닌 홍콩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오아시스매니지먼트다. 닌텐도는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기반의 게임 출시를 피해 왔다. 모바일 게임을 출시하면 자사 게임 콘솔(하드웨어) 매출의 자기 잠식을 초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아시스매니지먼트는 2013년 4000만 달러를 닌텐도에 투자해 1% 미만의 지분을 확보한 이후 지난해까지 3차례 공개서한을 보내 닌텐도에 모바일 게임 출시를 촉구했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사용자가 25억 명에 달하는 반면 닌텐도 콘솔 사용자는 2억5000만 명에 불과하다는 점과 모바일 플랫폼을 수용하면 닌텐도의 주가가 최대 240%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근거다. 닌텐도는 오아시스매니지먼트의 압박을 수용해 증강현실 전문 게임회사 나이앤틱(Niantic)과 합작해 포켓몬 고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 올해 7월 공식 출시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최근 들어 일본·한국 등 아시아 기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그동안 자신들이 익숙한 미국과 영국 지역의 기업들에 투자해 왔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일본 시장에서 활동을 확대하고 있는데 그 배경과 유인이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들은 오랜 저성장 때문에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대규모의 사내 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많다. 또 외국인 투자자들의 기업 지분율도 높다. 이런 환경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역시 저성장에 진입하는 단계여서 자기자본이익률(ROE)과 같은 수익성 지표가 낮아지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진우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그간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아시아 기업에 대해 관심이 덜했던 이유는 ‘성공 확률’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성공 확률이 대폭 높아지면서 아시아 기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회 참여를 통한 경영권 확보보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이나 재무 구조 개선 요구 등을 강조하며 ‘전략 전환’을 한 것이 확률을 높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아시아 지역 기업에 요구 사항을 내놓아 관철시킨 성공률은 2014년 29.6%에서 2015년 46.7%로 크게 높아졌다.

최 연구위원은 “금융 위기 이후 수익률에 목마른 기관투자가 자금이 몰리면서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급성장하는 추세”라며 “아시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배당성향이 낮고 기업 지배 구조에 약점이 있는 대기업들에 대한 입김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확산은 기회와 위협 요인이 공존하는 만큼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자체적 노력과 함께 국내 기업 및 금융권의 전략적 사고와 역량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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