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③] 화폐개혁 후 관심 급증… 모디 총리의 ‘디지털 인디아’ 앞당기는 계기 되나
비트코인 세계에 ‘인도인’이 몰려온다
(사진) 인도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인도 대법원은 7월 초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 화폐가 야기할지도 모를 모든 사회 안전과 보안 쟁점에 대해 4주 안에 답변하라고 중앙정부와 중앙은행에 요구했다. 인도 대법원은 비트코인이 불법 자금의 세탁이나 국제 테러 단체를 지원하는 모금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법원의 요구는 인도 정부가 비트코인을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쏟아지는 시점에 나왔다. 전 세계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인도 정부가 비트코인 금지에서 합법화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는 소문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런데 인도 대법원이 이렇게까지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정도라면 중앙정부 내에서 비트코인 합법화는 논의 단계를 넘어 실행 직전까지 진행됐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13억 명의 인구와 세계 7위의 경제 규모, 정보기술(IT) 산업에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인도가 비트코인을 합법화한다면 올해 4월 일본의 비트코인 합법화에 버금가는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일본의 합법화는 당시 1000달러대에 머무르던 비트코인 가격을 한 달 반 만에 3000달러까지 끌어올린 결정적 계기였다. 인도의 합법화 역시 비트코인과 암호 화폐 시장을 한 단계 도약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가을까지 인도인들은 비트코인에 대해 무심했다. 금과 현찰처럼 손으로 만질 수 없다면 설령 은행의 잔액이라고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문화가 인도에 뿌리 깊게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수준의 인도 지하경제

인도인들이 비트코인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야심찬 ‘디지털 인디아’ 프로젝트 때문이다. 정부 문서와 행정 처리뿐만 아니라 금융도 IT 대국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전자화하겠다는 야심이다.

현찰을 방석 밑에 쌓아 놓는 방식의 ‘저금’은 금융 발전을 오랫동안 저해했다. 또한 지하경제와 탈세를 구조화했다. 인도의 지하경제 규모는 전문가들조차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5000억 달러에서 1조4000억 달러의 지하 자금이 인도 밖으로 흘러나와 국제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방대한 규모의 지하경제를 근절하겠다는 공약에 힘입어 모디 총리는 정권을 교체했다. 모디 정부는 뇌물과 탈세를 뒷받침하는 현찰 문화가 인도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충격요법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모디 정부는 2016년 11월 시중 통화량의 86%에 달하는 고액권(500루피·1000루피)의 사용 금지를 명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2억30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평생 은행 계좌 하나 없이 드넓은 대륙의 농촌에 흩어져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정부의 기대대로 은행 계좌가 늘어났고 지하경제가 위축되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인도인들은 현찰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당시 인도 언론들은 정부가 조만간 금의 수출입과 판매도 강하게 규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무렵부터 비트코인에 관심이 치솟았다. 2016년 인도 비트코인 사용자는 총 20만 명이 늘어났는데 이 중 4분의 1이 화폐개혁 이후에 몰려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인도인들의 급작스러운 관심은 가격 프리미엄으로 나타났다. 인도는 비트코인이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는 나라다. 보통 300달러에서 500달러까지 웃돈을 주어야 살 수 있다. 비트코인 거래액 중 11% 정도를 인도 시장이 뒷받침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도 커졌다.

인도 대법원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비트코인 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대변한다. 우르지트 파텔 인도중앙은행장은 국회 답변에서 비트코인은 그 자체가 불법이라는 중앙은행의 인식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면 왜 인도 정부는 과감하게 비트코인과 가상 화폐들을 전면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것일까. 인도와 같이 국가의 통제가 느슨한 나라에서 비트코인을 전면 금지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수 있다는 인식을 정부 관계자들이 공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전면 금지는 지하경제 키울 뿐

규제 당국 쪽에서 보면 비트코인 온라인 거래소가 비트코인의 급소다. 모든 정부는 당장이라도 자국 화폐와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온라인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금지하면 인도인들은 온라인 거래소를 통해 비트코인을 거래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차피 은행 계좌가 없는 인도 국민들은 온라인 거래소를 이용하지 않는다. 온라인 거래소는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를 통해 비트코인을 사고팔기 때문이다. 결국 인도에서는 온라인 거래소의 폐쇄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인도인들은 직접 만나 현찰을 주고받는 거래에 익숙하기 때문에 비트코인도 그런 방식으로 얼마든지 확산될 수 있다. 이런 거래를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 반드시 거래소를 통하거나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컴퓨터와 전기만 있으면 채굴을 통해서도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다. 인도가 국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전면 금지하지 않는 한 넓은 땅에서 이뤄지는 영세한 채굴을 금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채굴 자체가 불법이라면 인도의 채굴자들은 채굴로 얻은 비트코인을 특별한 용도로 세계에 수출하려고 들 것이다. 바로 프레시 코인(fresh coin)이다. 모든 거래를 모두에게 공개하는 비트코인은 매우 투명해 대규모 범죄 조직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성공한 채굴자에게 시스템이 새롭게 생성해 주는 프레시 코인은 아직 거래 기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프레시 코인을 확보하면 수사 기관이나 세무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거래하거나 증여 및 상속할 수 있다. 만약 인도에서 비트코인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면 인도는 프레시 코인 생산과 거래의 글로벌 허브가 될 잠재력이 충만하다. 인도에는 이미 거대 규모의 지하경제를 운용하는 금융 범죄 조직들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래를 내다본다면 금지보다 양성화를 통해 비트코인의 투명한 속성을 활용하는 편이 이롭다. 특히 은행이 파고들기 어려운 농촌 주민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비트코인을 활용한다면 현찰 거래를 없애고 투명한 금융을 앞당기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아룬 자이틀리 재무장관이 참여한 정부 관계자 회의에서 금지보다 세금 부과 쪽으로 논의됐다는 뉴스가 인도 매체 ‘더 힌두(The Hindu)’발로 나오기도 했다. 전면 금지안도 논의되기는 했지만 지지를 얻지 못했고 양성화를 통해 세수를 늘리고 블록체인 산업도 장려하고 범죄행위를 추적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의 비트코인 합법화는 스케일링에 대한 뉴욕 합의와 함께 2017년 하반기 최대의 이슈로, 투자자들은 추이를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