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4) : 금융인들 ‘잘 모르지만 늦으면 안 된다’…미 정부 규제완화 적극 검토 중]
월가는 왜 비트코인에 투자 시작했나
(사진)미 CNBC의 스타 방송인인 조시 브라운 라이톨츠웰스매니지먼트 CEO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CNBC 하프타임 리포트를 진행하고 있는 조시 브라운 라이톨츠웰스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전형적인 월가맨이다. 그는 7월 1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을 처음 샀다고 밝혔다. 책을 한 권 읽는다고 비트코인이나 암호 화폐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건 성장하는 신산업에 한쪽 발을 담그지 않을 수 없었다는 요지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설명했다. 투자 상품에 대해 남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직업인 전문가가 완전히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 자체가 파격이다.

특히 비트코인 연대기에 두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대형 뉴스가 터졌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레드저엑스(LedgerX)에 비트코인 선물 옵션을 포함한 파생상품 거래 허가를 내줬다. 레드저엑스는 이르면 9월부터 비트코인 선물 옵션 거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정부 기구가 주류 금융 기업들에 비트코인을 취급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비트코인 옥죄는 SEC

2017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의 폭등 원인은 미국 금융가의 관심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만약 기존의 금융회사들이 비트코인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가격대일 수밖에 없다. 과연 보수적인 월가의 주류 금융인들이나 금융 기업들이 비트코인과 암호 화폐를 진지한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을까.

전통적 금융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특히 월가가 자랑하는 최첨단 금융공학적 기법을 적용해 다양한 유가증권이나 파생 상품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유가증권과 파생 상품을 관할하는 기관은 미 금융감독위원회(SEC)와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다. 즉 두 개의 독립된 정부 기구가 월가에 진출하는 출입구의 열쇠를 쥐고 있다. 접근의 난해함과 가격의 변동성이라는 비트코인의 두 가지 난제를 푸는 해결책이 이 두 개의 기관 관할 범위 안에 놓여 있다. 할머니들도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비트코인을 근거로 유가증권을 제삼자가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 윙클보스 형제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이고 이는 SEC가 관할한다. 가격 변화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서는 선물 계약을 둘러싼 파생 상품이 다양해야 한다. 주로 CFTC가 인허가를 결정한다.

2017년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올해 3월 SEC는 3년간 검토해 온 비트코인 ETF의 승인을 거절했다. SEC는 비트코인을 근거로 수익을 확정하는 계약은 모두 유사 수신업이나 유가증권 발행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처벌해 왔다. 또한 달러가 아니라 비트코인으로 기업 주식을 매매한 행위도 기소해 벌금을 받아냈다.

SEC는 합법적인 사업 방식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미국의 비트코인 사업자들은 나중에 SEC에 금지당할 위험 때문에 금융 상품을 개발하는 시도의 비용과 효용을 계산하기 어려웠다. 3년 가까이 시간을 끌던 ETF의 거절은 비트코인을 가지고 금융업을 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읽는 게 자연스럽다.

◆‘당근’ 제시하는 CFTC

하지만 CFTC는 SEC와 달리 채찍을 휘둘렀지만 당근도 제시해 왔다. CFTC는 비트코인을 상품(commodity)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선물거래나 차입 거래가 자신들의 규제 관할이라고 일찌감치 공표했다. 몇몇 비트코인 거래소가 허가받지 않은 차입 거래를 했다며 회사들을 기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민간 사업자를 기술위원회에 참여시키기도 하면서 새로운 분야의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또 이들에겐 스와프 거래와 선물거래를 실험적으로 해볼 수 있도록 면허도 내줬다.

CFTC의 적극적인 태도에 힘입어 최대 상품선물거래소 중 하나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2016년 비트코인 가격지수를 만들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비트코인이 주류에 한 발 더 다가섰다고 보도하면서 CME가 결국 비트코인 선물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CFTC의 적극적인 태도는 트럼프 정부의 금융 규제 완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CFTC 위원장은 5월 랩CFTC를 발족했다. 랩CFTC는 핀테크로 인해 변화하는 금융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미국 최초의 정부 내 연구 기관이다.

지안카를로 위원장은 “21세기의 금융은 부모 세대의 금융과 전혀 다르다”고 선언했다. 랩CFTC의 목적은 21세기 디지털 금융 환경에 걸맞은 금융 감독 기관으로의 이행을 돕는 것이다.

자신들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SEC는 거절 한 달 뒤 재심사 요청을 한다면 ETF에 관한 결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날이 갈수록 SEC와 CFTC의 관할 범위가 겹치는 금융 환경을 고려할 때 SEC가 지금과 같이 규제 일변도로만 대응하면 암호 화폐 관련 분야를 통째로 CFTC에 자진 이관하는 셈이다. SEC로서는 핀테크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정당한 두려움을 가질 법하다.


[비트코인 발전 5단계론] 현재 4단계 수준…5단계 위해선 주류 금융의 혁신 필요
뉴욕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앞장섰던 배리 실버트 디지털커런시그룹 CEO는 2014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5단계를 거쳐 발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1단계인 태생 및 실험기(2009~2010년)에는 창안자와 소수의 천재들 그리고 해커들이 소스 코드를 검토하면서 시스템의 견고함을 테스트했다. 특히 해커들이 시스템을 깨려고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열렬한 비트코인 신도(bitcoin believers)가 됐다.

2단계 얼리어답터 국면(2011~2013년)은 비트코인 창업 1세대였다. 재미삼아 혹은 마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비트코인을 구입하거나 채굴했던 마니아들이 가격이 몇 백 배가 뛰어 번 돈으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비트코인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 덕에 주류 미디어와 정부 기관의 무관심 속에서 시스템의 규모가 커졌다.

주류 언론이 다루면서 제3단계인 벤처캐피털의 시대(2013~2014년)가 도래했다. 많은 모험 사업가들이 뛰어들었고 투자금의 규모도 크게 늘었다. 제4단계는 비트코인의 월가화는 2015년부터 시작됐다.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를 마지막 5단계는 글로벌 소비자 채용 국면이다. 아마존이나 월마트와 같은 대형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고 비트코인은 달러나 금보다 더 편리하고 친숙한, 국경 없는 결제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5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주류 금융 산업에 의한 혁신이 필수다. 훨씬 편리하고 안정화된 시스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4단계와 5단계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견인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과 규제 기관의 비트코인 관련 행보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