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제 1132호 (2017년 08월 09일)

미 SEC, 무분별한 ICO에 제동을 걸다

[비트코인 A TO Z] '규제'는 제도권 편입의 또 다른 가능성...장기적으로 ICO 시장 안착할 것


(사진) 미 증권감독위원회(SEC) 로고/한국경제신문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비크코인은 강했다' 저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금융기법을 통해 사업자금을 마련하려고 구상 중이라면 당신의 게임 상대는 정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규칙을 바꾸어가면서 경기에 임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은 많은 분야를 혁신하는 기술이다. 특히 파이낸싱에서 기존 방식을 거세게 파괴하고 있다. 벤처기업들은 사업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돈을 꾸거나 회사의 지분을 팔 필요가 없다. 사업에 운용되는 여러가지 권리를 토큰으로 만들어 블록체인 상에 올리면 토큰은 글로벌 자유경쟁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에 팔린다.

새로운 코인을 만들어 공개시장에서 출시하여 판매하는 행위를 IPO(Initial Public Offering)에 빗대어 ICO(Initial Coin Offering)라고 부른다.

증권을 포함한 유무형 권리가 블록체인에 올라가면 토큰화(tokenization)된다. 토큰화란 미분화, 유동화, 즉시화, 글로벌화, 최종사용자중심 정도의 의미다. 삼성전자 주식을 잘게 쪼개서 일부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런 유동화가 제3기관을 거치지 않아 신속하게 이루어지며 일체의 등기나 인증과정도 필요없다. 그것도 인터넷과 연결된 글로벌 마켓을 대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 아이디어만 가지고도 수천억원의 자금을 순식간에 모을 수 있다.
ICO규모는 전년대비 여섯 배나 성장했다. 2017년 상반기에만 10억달러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ICO를 통해 모금하는 사업자는 채권처럼 갚거나 주식처럼 의결권을 줄 필요가 없으며 기존의 유가증권이 아니라서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인식이 급성장의 원인이다. ICO는 주로 이더리움 플렛폼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ICO 붐에 힘입어 이더리움 가격이 상반기 20배나 폭등했다.

'ICO는 유가증권 발행으로 간주한다'
7월 25일 미 증권감독위원회(SEC)는 ICO가 SEC가 관할하는 미국 증권법의 규제대상이라고 밝히면서 ICO 광풍에 제동을 걸었다. 우선 SEC는 증권 관련법률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4가지 요소가 무관하다고 밝혔다. 투자에 사용된 결제수단의 형태, ICO의 주체, 자금모금에 사용한 기술과 용어는 증권법을 적용하는 데 장애요소가 아니다. ICO는 달러가 아니라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투자를 받고 있으며 블록체인이라는 가상의 플랫폼 위에서 구동되며 증권이나 채권이라는 명칭 대신에 토큰(token)을 발부하므로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SEC는 호위테스트(Howey Test)를 통해서 증권여부를 판별한다. 호위테스트는 1946년 SEC 대 Howey 소송에서 미연방대법원이 판결에 사용한 기준이다. ‘일반 기업의 자금조달을 위한 투자 계약으로서 타인의 노력 여하에 따른 미래수익을 기대하고 있는가’로 축약할 수 있다. SEC는 상당수의 ICO가 이 기준에 따라 유가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ICO를 하려면 기업공개에 준하는 서류와 정보를 SEC에 보고한 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토큰을 교환하는 거래소도 증권법의 규제대상이다. 거래소나 거래소의 서버가 미국에 있지 않아도 미국인에게 증권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SEC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SEC의 발표 뒤에도 예정된 ICO가 진행되고 있는데 새로운 토큰들이 증권이 아니라는 나름의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 또 애매한 경우에는 일단 미국 바깥에 서버를 두고 미국인들에게 토큰을 판매하지 않으면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SEC도 모든 토큰이 증권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SEC의 의지를 제대로 읽지 않으면 결국 막대한 법률비용을 지불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법리공방에서는 증권판별 기준이 중요하지만 이번 SEC 발표의 핵심은 ‘앞으로 ICO는 규제하겠다’는 미 정부기구의 의지다. 증권에 대한 법적인 개념 때문에 규제가 어렵다면 미정부는 법을 고쳐서라도 ICO시장을 틀어쥐려 할 것이다. 다른 나라 정부들도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SEC발표 의미를 애써 축소해석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8월 1일 ICO가 증권과 선물법에 적용받는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토큰이나 코인을 발행할 이들이 고려할 판별기준은 호위테스트가 아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설계할 때 사용한 암묵적 기준에 비추어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비트코인의 창안자는 자신의 상대가 규칙을 바꾸어가며 게임할 수 있는 정부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정부는 유사화폐가 광범위한 유통력을 갖거나 청산가능하다면 규제하거나 금지하려한다.

만약 제한적인 공간에서 특정인들에 의해서만 사용된다면 정부는 규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게임공간에서만 유통되는 아이템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ICO를 통해 배포하는 토큰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정부는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두번째 기준이 중요하다. 만약 규제당국이 누군가의 신변이나 재산을 압류했을 때 토큰의 가치가 청산수준으로 낮아진다면 정부는 규제하려 한다. 금융과 화폐에 관련한 일이라면 미국 정부는 규제할 수 있는 대상은 규제해왔다. 10년 동안이나 성공적으로 영업하던 E-gold가 하루아침에 미국법원에 의해 청산당한 사례도 있다.

아직도 미국이나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금지하지 않는 이유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들에 대한 법적 개념규정이 난감해서도 아니다. 뉴욕주는 비트라이선스 법령을 만들면서 ‘사람들이 화폐라고 말하면 화폐다’라는 정도의 엉성한 개념규정만으로 넘어갔다. 누군가를 감옥에 가두거나 서버를 차단하거나 재산을 압류한다고 해도 비트코인을 청산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관측이 진실에 가깝다. 금융혁신이라면 어느 정도는 정부 관할에 대한 도전을 전제하기 때문에 정부들은 금지할 수 없을 때만 타협하거나 혁신을 북돋는다.

ICO를 통해서 누군가가 막대한 이익을 취한다면 그는 신종화폐 혹은 유가증권의 발행자(issuer)라고 규정될 것이다. 그리고 발행자의 행위로 인해서 토큰의 가치가 좌우된다면 정부는 그 누군가를 규제함으로써 토큰을 통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 때 법리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우선 그 발행자를 가두고 재산을 압류하는 것으로 사업부터 청산시키고 시작한다. 금융업은 신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당국의 판결전 조치만으로도 사업은 괴멸될 가능성이 크다. 

ICO,장기적으로 건전한 방향으로 갈 것

ICO는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스타트업 기업은 물론 기존 기업들과 투자자들에게도 이익을 주는금융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장이 정부규제 바깥에 놓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기업들이 주식공개 대신에 ICO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임회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부 개입의 명분도 충분하다. 채권처럼 돈을 갚아야 하거나 주식처럼 경영권을 침해받을 우려가 없는 점은 사업가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그간 시장의 폭발적 확산에 기대어 허황되고 부실한 사기성 프로젝트까지 ICO에 성공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왔다. 스마트 콘트랙(smart contract)이 모든 정보비대칭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신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도덕적인 이슈들도 있다. 금융산업에서의 대규모 사기는 시장여파가 연쇄적이라서 사회, 경제적 영향도 크므로 정부나 정부적 기구의 개입은 타당한 면이 있다.

무법지대라는 허황된 기대가 촉발한 성장은 오히려 진정한 혁신을 오랫동안 가로막을 수 있다. 따라서 SEC의 선언은 장기적으로는 ICO 시장을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 E-gold와 사토시 나카모토]


미국 법원은 2008년 11월, E-gold의 설립자인 더글러스 잭슨의 유죄를 확정했다. 잭슨은 6개월간 가택연금되었고 재산은 압류되었다. 이에 앞서 FBI는 E-gold 고객들의 금잔고를 동결했고 회사 서버를 통제했다. 이로써 1996년 설립된 최초의 인터넷 결제업체이며 페이팔에 이어 시장규모 세계 2위이던 회사는 사라졌다. 자금세탁음모 공조와 무허가 금융업이 잭슨의 죄명이다.

그러나 그는 범죄와는 무관했던 종양전문의였고 의심 가는 거액 거래를 FBI에 자진신고한 모범적인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의 진짜 죄는 달러에 무관하게 금에 기초한 가상화폐를 만들어 유포한 것이다. E-gold의 고객들은 금을 구입하고 금계좌를 받아서 현금처럼 나누어서 사용했다. 금은 두바이의 회사 금고에 보관했기 때문에 고객들은 자신들이 맡긴 금의 순도는커녕 금을 만져본 적도 없다. E-gold는 중앙은행 관할 밖에서 태어난 금본위제 화폐였던 셈이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의 원리를 담은 논문을 인터넷에 올린 시기는 잭슨의 무죄가 확정될 무렵과 겹친다. 그는 E-gold 청산을 종종 언급하면서 비트코인 발명과의 연계성을 암시했다. 비트코인은 두 가지가 없는 E-gold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금과 서버가 없다. 금과 서버가 없다는 사실은 비트코인을 E-gold처럼 가치 있는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 장애물이다. 그러나 규제당국 입장에서 보자면 금도 서버도 없기 때문에 차단하거나 압류해서 유통을 차단할 수단이 없다. 비트코인은 실물이 아니라 변경 불가능한 규칙에 근거한 최초의 화폐이다. 실물에 익숙한 정부들은 그래서 실물에 근거하지 않는 비트코인을 상대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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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8-0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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