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⑮] CPU 채굴에서 GPU 채굴로의 ‘혁신’…‘우주 채굴’ 꿈꾸는 비트코이너들
인공위성에서 비트코인 ‘채굴’하는 시대 올까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매커니즘캠퍼스 출강] 비트코인을 모르는 사람들도 ‘600억원짜리 피자 두 판’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수의 컴퓨터 개발자들만 채굴하던 2010년 라스즐로 하넥스라는 개발자가 비트코인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피자 두 판을 주문해 주는 대가로 1만 BTC를 주겠다는 제안을 비트코인 포럼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당시 이 포럼의 회원은 고작 230명이었다.

3일이 지나서야 런던에 사는 열여덟 살 제레미 스투디번트(필명 저코스)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에 있는 파파존스의 홈페이지에서 25달러(19파운드)어치 주문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피자를 받은 하넥스는 런던에 있는 스투디번트의 주소로 1만 BTC를 송금했고 집으로 배달된 피자 두 판의 사진을 찍어 커뮤니티에 올렸다. 이 사진은 비트코인이 거래에 사용된 첫째 사례라며 널리 알려졌다.

600억원짜리 피자는 듣는 이에게 여러 가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아쉬움과 부러움이다. 하지만 1만 BTC를 얻은 스투디번트가 1만 BTC를 고작 400달러어치밖에 안 되는 거래에 사용해 버렸다는 이야기는 잘 모른다. 그 나름대로는 10배나 이익을 봤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거래였을 것이다. 미래의 시점에서 우리가 그를 보듯이 당시에 그 스스로를 행운의 주인공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스투디번트는 2009년부터 비트코인에 대해 확신했던 소년이어서 조금 기다리다가 10배 정도의 이익을 볼 수 있었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거래를 후회하다가 더 헐값에 누군가에게 줘버렸거나 아예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600억 피자 두 판의 주인공은 누구
실제로 제임스 하웰스라는 영국 청년은 2009년부터 자신의 컴퓨터로 채굴해 모아 놓았던 7500BTC를 컴퓨터를 버리면서 함께 버렸다. 불과 수년 후 500억원에 달할 재산을 모아 놓았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버린 비트코인 때문에 유명 인사가 됐다. 600억원짜리 피자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면 자신의 컴퓨터에 담긴 500억원어치의 비트코인을 버린 영국 청년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사실 이 에피소드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하넥스는 비트코인 채굴에서 매우 중요한 혁신을 이룬 역사적인 인물이다. 초창기 개발자들은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를 활용해 채굴했다. 채굴자가 소수였기 때문에 CPU만으로도 쉽게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채굴 성공자에게 50BTC가 주어졌다. 지금까지 두 번의 반감기를 지나 현재의 채굴 보상은 12.5BTC다. 하넥스는 그래픽카드(GPU)를 사용해 채굴하기 시작했고 CPU를 사용할 때보다 수백 배나 성공 확률을 높였다.

피자 이벤트를 벌일 당시 하넥스는 전체 채굴량의 50%를 혼자 채굴했다. 피자 거래가 성공한 이후 하넥스는 몇 차례 더 비슷한 이벤트를 벌이면서 비트코인을 뿌려 댔다. 그러다가 비트코인 잔액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벤트를 중단했다. 자신의 채굴 점유율이 급격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GPU 채굴은 빠르게 번졌고 혁신 우위는 갑자기 사라졌다. 하넥스에게는 더 이상 피자와 맞바꿔도 좋을 만큼 싼 비트코인이 없었다.

경제학의 스승들은 물질 중심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사물의 가치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에서 살아간다. 이 때문에 사물의 가치를 분자 상태로 가늠할 수 없다. 사물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진다. 2010년의 1만 BTC와 2017년의 1만 BTC가 같은 물질이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는 전제야말로 경제학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물질 중심적 가치론이다.

과학자들이 태양광 패널을 붙인 거대한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다. 대기층의 간섭과 밤이 없는 이상적인 상태에서 저렴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에서 지구까지 생산한 전기를 송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은 비트코인을 이용하기로 했다. 태양광 패널과 채굴용 컴퓨터로 가득 채운 인공위성을 우주에 띄워 24시간 비트코인을 채굴한다. 태양은 뜨겁지만 태양을 마주보지 않는 쪽의 온도는 낮기 때문에 지구에서처럼 채굴 컴퓨터의 열처리를 위한 비용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우주에서 채굴한 비트코인을 지구로 보내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이 두 경우는 달라 보인다. 하지만 사물을 관계 중심적으로 보는 경제학자들은 두 경우가 동일하다고 간주할 수 있다. 두 경우가 미칠 영향의 경제적 맥락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싸게 생산한 전기를 지구로 보내면 전반적인 전기요금이 낮아진다. 전기 공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생산한 전기로 우주에서 비트코인을 채굴해 지구로 보내도 효과는 동일하다. 왜냐하면 우주 채굴자와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지구의 한계 생산자들이 자신의 에너지 소모적 채굴 컴퓨터의 코드를 뽑으면서 채굴 경쟁으로 높아졌던 전기요금의 상승세가 꺾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전체 전기 소비에서 채굴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고 비트코인의 가격도 낮아 우주 채굴은 상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 개발자들은 조만간 우주 채굴이 실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더 오르면 우주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버티는 컴퓨터에 투자할 수 있다. 우주 채굴은 한계 생산비용이 낮아 지구 채굴자들의 상당수는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채굴이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비난도 잦아들지 모른다.

[돋보기 : 비트코인과 전기요금] 글로벌 전기료를 평준화할 비트코인

비트코인이 대중화되면 인류 최초로 전 지구적 1물 1가(一物 一價)를 실현하는 매개물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요금이다. 미래의 비트코인은 전기요금에 대한 개별 국가의 자율성을 위축시킬 것이다. 국경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비트코인이 대중화되면 채굴자들은 남들보다 싼 전기를 찾아 코드를 꽂으려고 할 것이다. 무수하게 많은 경제 주체들의 선택이 모여 전기료는 결국 비트코인의 시장가격과 맞물리게 된다. 발전용 원료의 차이나 전기요금에 대한 국가 정책을 무시하는 압력이 지구적으로 전기료를 단일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비트코인 채굴을 위한 전기 절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전기료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일수록 심하다. 실제로 국가가 전기료를 크게 보조하는 베네수엘라는 비트코인 채굴을 중심으로 지하경제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 수사 당국이 전기 절도를 색출하고 있어 베네수엘라의 채굴자들은 감옥에 감금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중국도 지난해에만 77
명의 채굴 관련 전기 절도범을 체포했다.

남들보다 값싸게 생산하는 채굴자들은 비트코인을 시장가격보다 싸게 처분할 유인을 갖는데 전기 절도를 잡으려는 정부들의 노력은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을 끌어올린다. 전기 절도범을 적발할수록 비트코인 시스템은 더 탄탄해지지만 전기료를 시장에 맡기지 않는 한 절도와 편법을 동원한 채굴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1물 1가라는 거대한 압력 때문에 정부들은 지하경제를 단속하는 비용을 지불하든가 전기료를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