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위안화 국제화 위해선 반드시 한국 필요…‘사드 배치 보복’ 풀리나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 과제와 한·중 관계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피해는 당초 예상을 훨씬 넘었다.

다행인 것은 10월 이후 한·중 관계가 빠르게 해빙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만기를 넘긴 통화 스와프 협정이 극적으로 연장됐고 2년 만에 국방장관 회담도 재개됐다.

베트남 다낭에서 치러졌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회의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문재인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열렸다. 화장품·자동차·면세점 등 중국 관련 주가도 반등하기 시작했다.

◆국제 결제시장의 위안화 비율 2%

피해액이 컸던 만큼 사드 보복이 풀린다면 반사이익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18기 당 대회를 통해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한 시 주석은 ‘대국굴기(大國起 : 경제 위상을 널리 드높인다)’를 추구해 왔다.

대국굴기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시 주석은 취임 이후 △동남아 무역 위안화 결제 △역외 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설 △통화 스와프 체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중국형 국제 결제 시스템(CIPS) 구축 △위안화 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SDR) 편입 순으로 위안화 국제화 과제를 추진해 왔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세계 실물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15%를 넘어 미국과 함께 ‘G2’ 체제(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차이메리카’라고 부른다)를 구축했다. 하지만 무역 등 국제 결제 시장의 위안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화에서 위안화 비율은 1%에도 못 미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다.

중국처럼 사회주의 국가의 성장 경로를 보면 초기에는 노동·자본 등 생산요소의 양만 단순히 늘려 성장하는 ‘외연적 단계’를 거친다. 이 단계에서 ‘루이스 전환점(농촌에서 더 이상 노동 공급이 중단돼 임금이 급등하는 시기)’과 같은 한계에 부닥치면 그 이후에는 생산요소의 효율성을 중시해 성장하는 ‘내연적 단계’로 이행되는 것이 정형적인 경로다.

사회주의 국가는 이 경로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자산(특히 부동산) 거품, 물가 앙등 등과 같은 심각한 성장통(growth pains)을 겪는다. 중국도 이런 후유증을 걷어낼 목적으로 1차로 2004년 하반기부터 1년 6개월 동안, 2차로 2010년부터 긴축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중국 정부는 물가를 잡는 데 주력해 온 것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긴축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던 금리 인상은 대내외 여건이 따르지 않아 실패했다. 1차 긴축기에는 의욕적으로 단행했던 금리 인상이 때 맞춰 불어 닥친 증시 호황으로 국내 여신을 잡는 데 한계가 있었다. 2차 긴축기에는 미국 등 선진국이 금리를 대폭 내리자 중국과의 금리 차를 노린 핫머니가 대거 유입돼 부동산 거품이 더 심하게 발생했다.

당초 계획보다 길어진 긴축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리 인상→핫머니 유입→통화팽창→부동산 거품·물가 앙등→추가 금리 인상’ 간 나선형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금리 인상 폭도 커져 실물경기마저 둔화되기 시작했다. 2015년 3분기 이후 성장률이 7% 밑으로 떨어졌다.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 과제와 한·중 관계
◆신흥국에서 한국 위상 최상위권

이때 추가로 긴축을 단행하면 곧바로 경기 순환상 ‘경착륙’으로 추락할 위험이 높다. 중국 정부는 긴축 정책을 추진해 자산 거품과 인플레를 걷어내고 성장률(비행기)을 잠재 수준(활주로)으로 착륙시켜 경제 주체(승객)를 안심시키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이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자 ‘위안화 국제화 과제’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위안화 국제화는 선진국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달러·유로 등 선진국 통화는 국제 결제와 각국 외환 보유에서 위안화보다 더 높은 위상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와 국제금융 질서에서 주도권 다툼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당분간 위안화 국제화 추진 대상국은 신흥국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신흥국에서 한국의 위상은 최상위권에 속한다.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1위, 무역(수출+수입) 규모는 8위, 외화보유액과 시가총액은 각각 9위, 8위다. 20K-50M(1인당 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클럽에도 세계에서 일곱째로 가입했다. 모든 세계 국가 중에서 10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외형상 경제 규모만 따진다면 선진국이다.

위안화 국제화 과제에 한국이 빠진다면 상징성이 크게 줄어들고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어진다. 만기가 지난 통화 스와프 협상이 어떤 반대급부 없이 연장된 것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극적으로 양국 정상회의가 열린 것처럼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사드 보복이 풀리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형성되는 배경이자 근거다.

한국 경제의 중국 쏠림 정도는 지나치게 높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유커(중국인 관광객)에 의한 윔블던 현상(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자국 선수인 영국인보다 외국 선수가 우승하는 횟수가 더 많은 것에 비유된 용어)’도 심하다. 최소자승법 등을 통해 2014년 12월 원과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된 이후 두 통화 간 상관계수가 ‘0.8’에 달할 만큼 높게 나온다.

사드 보복이 풀리는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 무역과 기업 진출의 중국 쏠림 정도를 시급히 줄여 나가야 할 때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유커 윔블던 현상도 완화해 나가야 한다. 그 방안만이 자국의 실리 관계에 따라 한순간에 바뀌는 국제 정세에서 한국 경제의 독립성과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