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미래 바라보고 쌓아 놓은 ‘자산’은 결코 ‘불로소득’ 아니다
발생한 소득이 없는데도 왜 세금을 내야 할까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소득의 사전적 정의는 ‘경제 주체에 의해 이뤄지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등을 통해 얻는 수입’이며 자산은 ‘개인이나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이다.

쉽게 말해 소득은 직업 등 일상의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말하며 자산은 소득에서 생활비 등을 지출하고 남은 돈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득에 대해서는 ‘노동의 대가’라고 말하며 관대하던 사람도 자산에 대해서는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소득이 부의 원천이라고 하면 자산은 부의 결과물이라고 할 만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자산의 기능에 대해 살펴보자. 세상이 소비 위주로 바뀌면서 “쓸 돈도 없는데, 모을 돈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500만원을 버는 사람이 500만원을 모두 소비한다면 상당히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실직했다고 가정해 보자. 수입이 끊어지면서 삶의 질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다. 다른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새로운 직장을 얻는 기회는 줄어든다.

본인이 그 회사의 오너가 아니라면 그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없다. 오너라고 하더라도 회사는 한순간에 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산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본인이 사는 집을 제외하고 실직하더라도 몇 년간은 버틸 수 있는 자산이 있어야 인생이 불안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산은 보험이다.

◆자산은 또 다른 이름의 ‘자유’

물론 실업급여나 연금보험 등의 보조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들이 완벽하게 자신의 미래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쓸 만큼 연금이 나오는 나라는 없다.

기본 생활에 필요한 수준의 연금만 주기 때문이다. 하물며 복지 시스템이 아직까지 잘 갖춰지지 않은 한국에선 싫으나 좋으나 본인이 어느 정도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
문제는 자산을 모으기까지의 과정이다.

한 달에 500만원을 벌어 다 쓰던 사람이 한 달에 200만원씩 저축하기 시작했다면 쓸 수 있는 돈은 300만원으로 줄어든다. 이 때문에 이전보다 삶의 질이 떨어질 것이다. 여행도 마음대로 못 가고 먹고 싶은 것도 줄여야 한다.

그러면 “무슨 낙을 보려고 구질구질하게 살아”라면서 포기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이래서 소득이 비슷한 사람이라도 저축액에 차이가 생기게 되고 장기적으로 보면 자산의 수준이 달라지게 된다.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더 느끼는 사람은 현재의 높은 삶의 질을 포기하고 저축을 많이 할 것이고 현재의 높은 삶의 질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대의 결정을 할 것이다. 전자는 현재 대신 미래를 선택한 것이고 후자는 미래 대신 현재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선택이니 뭐라고 할 수 없다. 개인의 가치관과 개개인의 사정에 맞는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산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자산을 많이 축적한 사람은 집값이 비싼 동네에 살아도 되고 싼 동네에 살아도 된다. 하지만 자산 축적이 덜 된 사람은 집값이 싼 동네에서밖에 살 수 없다.

자산의 규모에 따라 주거지 선택의 자유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 가까이에 있고 교통도 좋고 학군도 좋고 주거 환경이 쾌적한 곳은 집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누구나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자산이 많은 사람이다.

자산이 적은 사람이 무리하게 그런 곳에 살려고 하면 상당 수준의 대출을 받거나 월세로 살아야 한다. 대출이자나 월세 모두 지출을 늘리는 것이므로 자산을 모을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멀어져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산은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산이 많다는 의미는 적어도 주거지를 선택할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자산으로 얻는 소득을 보는 ‘불편한 시선’

자산의 또 다른 특징은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 낸다는 것이다. 소득을 담아 두는 그릇 역할이 자산이지만 어느 정도 자산이 축적되면 그때부터는 수익을 창출해 내기도 한다. 가장 쉬운 예가 이자소득이다. 은행에 돈은 맡겨 놓기만 해도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의 시세 차익도 마찬가지다. 결국 자산은 보험이자 자유이자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타인이 자산을 모으는 과정의 어려움을 무시하고 그 결과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산은 쓰고 남은 돈을 모아둔 것이니 부족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 주자”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심지어 자산으로 얻어지는 소득을 불로소득으로 보고 죄악시한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인 만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중심을 잡아야 할 정치권이나 정부의 일부 인사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보유세 논란이 그것이다. 자산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자산의 원천인 소득이 발생할 때 소득세를 내게 된다. 이미 과세됐다는 뜻이다.

부모나 조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자산은 증여세나 상속세를 이미 낸 것이다. 더구나 자산으로 얻어지는 소득에도 소득세가 매겨진다. 이자소득세나 자산을 처분할 때 내는 양도소득세가 대표적이다.

이렇듯이 자산 형성 과정에서 이미 세금을 충분히 냈는데도 불구하고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이 보유세다. 소득 분배가 미흡하다면 소득세를 손보면 된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출발이 다른 것이 문제라면 상속세나 증여세를 강화하면 된다. 이런 것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조정해 나가면 된다.

흔히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유세는 소득이 발생하지 않아도 매겨지는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마시멜로의 달콤한 유혹을 참아내고 먹지 않은 아이의 마시멜로를 빼앗아 먼저 먹은 아이에게 주겠다는 것이 보유세 논란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