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p] 둘 사이 우열 가리기 어려워…적절히 배합해 보유하는 것이 ‘정석’
'BTC냐, BCH냐’ 그것이 문제다
(사진) '권위'에 저항하는 서구식 사고를 잘 나타낸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장면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매커니즘캠퍼스 출강] 모두가 예상하던 비트코인 하드포킹이 연기됐다는 뉴스와 함께 비트코인 가격은 떨어지고 비트코인캐시의 가격은 올랐다. 일반적으로 하드포킹이 연기되거나 포기된 것은 호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도 비트코인 가격은 급격히 떨어졌고 오히려 중국 채굴자들의 힘에 의해 미래가 좌우될 뿐이라던 비트코인캐시가 급부상했다. 이 같은 현상은 비트코인캐시를 음모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던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비트코인은 새로운 현상이자 하나의 학문이다. 비트코인을 만든 암호학자들은 고난도의 수학적 정교함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 신종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에서 큰 실패를 하지 않으려면 증권가 정보지나 어설픈 차트 분석 따위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한두 시간 설명을 듣고 비트코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무리다. 비트코인은 상식을 배반하는 역설과 난해한 논리와 긴박한 현상들로 가득한 학문이자 새로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중앙’이 없어 오히려 더 신뢰할 수 있는 비트코인

비트코인은 중앙 서버도 없고 당연히 리더도 없다. 그래서 쉽게 고치지도 못하고 합의에 이르기도 어렵다. 이것은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비트코인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다. 서구의 인문학자들은 비트코인을 ‘트러스트리스 트러스트(trustless trust)’라고 부른다. ‘무신뢰 신용’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무신뢰 신용’을 알려면 권위를 해체하고자 하는 서구 역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구의 정신을 잘 대변하는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절대반지’를 용광로에 녹여 없애는 머나먼 여정이다. ‘초월적 권력’을 상징하는 절대반지를 아예 녹여 없앤다는 철학은 ‘성군이 권력을 얻으면 좋은 세상이 온다’는 정신을 대변하는 ‘삼국지’와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긴밀하게 대응하는 정부가 유능해 보인다. 하지만 긴밀함은 인격적인 시스템일 때 가능하고 인격적인 시스템은 재량권을 양산한다. 재량권이 바로 절대반지가 상징하고자 하는 권력이다. 재량권은 소유한 사람을 타락시킨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유일한 돌파구는 재량권 자체의 봉인이다. 철저한 법치와 빡빡한 관료제도의 발달이라는 우여곡절이야말로 서구 역사의 줄거리라는 것이 영화 ‘절대반지’ 원작의 주제 의식이다.

하드포킹의 무산은 비트코인캐시를 부각시켰다. 비트코인캐시는 언제나 왕좌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자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캐시가 비트코인의 원본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을 소유한 이들이 대부분 8월 하드포킹을 통해 비트코인캐시도 소유하고 있기도 해서다. 비트코인의 2MB 하드포킹 포기도 8MB의 비트코인캐시의 생존과 관련이 있다. 2MB로의 용량 확대의 의미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 예측과 달리 11월 예정됐던 비트코인 하드포킹은 비트코인캐시와 같은 아류를 낳을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비트코인 왕좌를 놓고 벌이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승부는 1시간이나 길어도 3시간 안에 완료됐을 것이다. 하드포킹이 일어나면 채굴자들은 두 코인 중에 하나를 선택해 채굴한다. 비트코인의 채굴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기 때문에 해시 파워가 충분하지 못한 쪽은 1시간이나 2시간이 지나도 블록을 완성하지 못한다. 이기는 쪽에 붙고자 하는 네트워크 현상 때문에 승기는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3년 이상 끌어 온 용량 문제가 최종 국면을 향해 나아간다는 기대감이 꺾이면서 비트코인의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이때 채굴자들과 투자자들의 눈에 비트코인캐시가 두드러져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트코인의 수수료 중간값은 10달러를 넘었다. 반면 용량이 큰 비트코인캐시는 0.1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비트코인캐시가 비트코인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역학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거래 용량보다 프로그램의 속성을 아예 바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비트코인 핵심 개발자들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암호학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비트코인 핵심 개발자 그룹에 대한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신뢰는 초보 비트코인 투자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

비트코인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비트코인캐시 가격이 급등하던 하던 11월 12일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받기도 하는 권위 있는 암호학자인 아담 백은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한 비트코인캐시가 당장은 용량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은 비트코인의 편’이라고 말하면서 비트코인 진영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용량을 1MB로 제한한 비트코인이 100층짜리 건물을 올리기 위해 기반을 다지느라 1층을 단단히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기술적 철학을 반영한다면 비트코인캐시 쪽은 우선 8층으로 증축해 놓은 후 영업부터 시작해 보자는 사업가의 경영학적인 접근을 대변한다. 비트코인 핵심 개발자들의 논리도 옳지만 비트코인캐시의 현실적인 관점도 의미가 크다. 따라서 비트코인과 비트코인캐시는 경쟁 관계이자 상보적이기도 하다.

그럼 이 둘의 미래는 어떨까. 이 둘은 결국 ‘수렴’할 것으로 필자는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수년 안에 비트코인은 용량을 늘리고 비트코인캐시는 세그윗과 같은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해 둘 사이의 시스템적 차이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접근 순서의 차이였다고 볼 수 있으니 어느 쪽이 더 성공적이었는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명확해질 것이다. 그래서 단기적 폭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한 두 코인을 적절하게 배합해 소유하는 것으로 투자자는 손쉬운 정석에 이를 수 있다. 실제로 8월 1일 이전에 비트코인에 투자했다면 비트코인캐시도 동일한 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두 진영의 논쟁과 경쟁을 여유 있게 관망하면서 암호화폐의 새로운 역사를 음미하는 여유를 누리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돋보기] 비트코인의 비싼 거래 수수료 해결책
‘용량 확대’보다 ‘라이트닝 네트워크’ 급부상

비트코인의 용량 확대를 막고 있는 핵심 개발자들이 수수료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ning network)다. 올해 8월에 세그윗으로 업그레이드한 이유도 라이트닝과 같은 사이드체인(side chain)들로 비트코인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비자카드는 초당 4만7000개의 거래를 처리한다. 하지만 1MB의 비트코인은 7개 정도다. 8MB로 늘린다고 하더라도 1년도 안 돼 트래픽 잼에 걸려든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이런 변화는 비트코인 채굴을 기업화하고 중앙집중화하기에 비트코인의 자유주의적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 개발자들의 논리다. 그래서 비트코인과 병행하면서도 독립적으로 구동하는 시스템을 발전시키면 모든 거래를 일일이 블록체인에 기록하지 않고도 변형 불가능한 거래라는 블록체인의 핵심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개념이다.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기대한 효과를 발휘하면 소액 결제에는 수수료가 거의 0으로 수렴한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캐시의 존재 의의가 줄어든다. 그뿐만 아니라 라이트닝 네트워크와 같은 사이드체인들은 바로 비트코인 기반의 스마트 콘트랙트 솔루션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스마트 콘트랙트를 주요 기능으로 성장한 이더리움의 지위도 위협받게 된다.

라이트닝을 비롯한 비트코인 사이드체인의 성장으로 향후 암호화폐 간의 역학은 매우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이라는 신기술 자체가 테크놀로지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욕구와 집단지능을 반영한 총체적 시스템이다. 단편적인 음모론에 의지하는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너무 난해한 방정식이므로 욕심을 줄이는 대신 오히려 지식을 늘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성공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