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21]단순하기에 더욱 강하다…결국 모든 변화의 핵심엔 비트코인 있을 것
게임 체인저는 ‘블록체인’ 아닌 ‘비트코인’
(사진) 줄리언 어센지 위키리크스 설립자

[오태민 크립토 비크코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비트코인 가격이 5000달러를 넘었던 올해 10월 줄리언 어센지 위키리크스 설립자가 미국 상원의원 몇 명을 거론하며 감사 인사를 트윗에 올려 세계적으로 보도됐다. 어센지 설립자는 위키리크스를 설립해 2010년 미국 외교정책과 관련한 민감한 비밀 정보들을 인터넷에 공개한 인물이다. 2010년 미국 상원 양당 중진이 공동 발의해 위키리크스에 대한 모든 후원 계좌를 동결했다. 후원 계좌가 동결되자 어센지 설립자에게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다.

태동기에 있던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비트코인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센지 설립자에게 비트코인으로 기부금을 보내는 캠페인을 제창했다. 어센지 설립자에 따르면 그때부터 비트코인으로 받아 모은 금액이 500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비트코인이 1만 달러를 넘었으니 어센지 설립자가 받은 기부 금액도 1000배가 된 셈이다.

어센지 설립자에 대한 ‘기부 캠페인’은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세상으로부터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집단의 정신적 리더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위키리크스 기부를 반대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어센지 설립자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막 태동한 비트코인 시스템이 정부들의 타깃이 돼 해체될 수 있다는 논리로 기부를 당분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그는 비트코인 커뮤니티에는 이 일로 ‘그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경고문을 커뮤니티에 올린 지 19시간 만에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자취를 올리고 사라졌다. 마지막이라거나 떠난다는 인사도 없었다.


◆‘적대적 환경’ 속에서 커온 비트코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중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지를 예측해 달라는 질문은 어느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2.0이라는 슬로건으로 비트코인과의 차별화를 선언하면서 등장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비트코인보다 발달한 이더리움’이라는 표현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반면 이더리움의 반대편에는 이른바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과격주의자)들이 버티고 있다. 그들은 이더리움을 비롯한 다른 대체 코인들의 성공에 비관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비트코인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암호화폐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배신행위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폐쇄적인 광신도들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비트코인 태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암호학의 걸출한 대가들이 이 그룹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인식이라는 틀에는 이미 어떤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블록체인을 활용한 하나의 암호화폐로 생각하는 것은 이미 어떤 ‘인식’이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비트코인이 아니고 블록체인’이라는 말이 이 인식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 ‘인식’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을 이렇게 규정하기에는 너무 특별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안정된 시스템들이 그러하듯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블록체인 시스템들은 언젠가 다층적 구조(layers)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다층적 구조의 맨 아래에는 비트코인이나 비트코인 캐시와 같은 화폐들이 자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비트코인이 주도하는 최근 암호화폐의 가격 변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두 화폐 모두 블록체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직접 만든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는 ‘완전 적대적 환경’을 염두에 두면서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완전 적대적 환경에서 생존한 객체는 환경 자체를 변화시킨다.

액화 연료 차량만을 위한 도로 시스템에서도 오래 달리는 첫째 전기차가 되기 위해서는 충전소의 부재라는 적대적 환경을 극복해야만 한다. 적대적 환경에서마저 전기차를 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군데군데 충전소가 설치되면서 점차 전기차에 맞는 환경으로 변화한다.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게임 체인저에 효율이나 디자인 혹은 다양한 기호의 충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만을 드러낼 뿐이다. 망망대해에서 표류 중이라면 바닷물을 증수해 식용수를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냉랭한 물의 온도나 맛은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커피를 타 마실 수 있는지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비트코인은 적대적 환경에서 살아남아 적대적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온 게임 체인저다.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날로 성장하고 있는 현실은 비트코인이 완전 적대적 환경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뒤집어 말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엄연히 화폐 현상이다. 화폐 현상은 대중심리와 상상력의 산물이다. 다수의 마음과 재산이 묶여 있다. 시스템적으로도 비트코인은 단순하면서 깊다. 어떤 시스템과도 잘 호응하며 구조물을 쌓아 올릴 만큼 튼실하다. 맥시멀리스트들은 비트코인이 단순하고 강하기 때문에 그 위에 복잡한 시스템을 쌓아 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는 제삼자의 개입이나 신뢰가 필요 없는 코인 간 거래 실험도 성공했다. 1비트코인과 10라이트코인을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성숙한 시스템은 다층적이면서도 다양하고 화려하다. 오늘날 자동차 문화는 다층적이며 다양한 시스템의 전형이다. 고급 스포츠카는 심지어 과속방지턱마저 피해야 한다. 비포장도로도 마다하지 않는 투박한 지프가 적대적 환경을 전제하고 있다면 도로 바닥에 붙어 달리다시피 하는 스포츠카는 호의적 환경의 산물이다.

블록체인이 주류가 될 즈음이면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것은 비트코인이 아닐 것이다. 비트코인은 빠르지도 않고 맵시도 별로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적화된 시스템들은 어떤 식으로건 비트코인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은 강하고 특별하다.

◆[돋보기] 사상적 배경 다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제삼자의 개입’ 비트코인과 다른 암호화폐의 차이점

‘트러스트리스 트러스트(Trustless Trust)’를 믿는가. 모순어법으로 보이는 이 어휘는 비트코인을 가리킨다. 상대를 믿지 않으면서도 거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신뢰에 기반 하지 않는 신뢰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서버 다운 사태는 암호화폐 생태계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원화나 달러 기반으로 비트코인을 사고파는 거래소는 트러스트리스 트러스트가 아니다.

거래소가 내 계좌를 훔치거나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 비트코이너들이 거래소에 비트코인을 오래 저장하지 말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거래소 해킹은 많은 피해를 양산한다. 거래소와 같은 중앙 서버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두텁다. 국가나 금융회사같이 신뢰할 만한 시스템에 오랫동안 적응해 온 사고의 습관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P2P 시스템으로 만들어졌으니 애초에 중앙의 서버라는 개념이 없다. 신뢰할 만한 제삼자의 개입을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자산 청산이라는 개념도 없다. 아무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 비트코인의 속성은 트러스트리스 트러스트의 필연적인 속성이다. 주식이나 채권은 청산 기관에 대한 믿음을 전제할 때만 가치를 갖는다. 아무도 가치를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은 비트코인의 결정적인 단점이 아니다. 아무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가치를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탄성을 질러야 할 만큼 중요한 현상이다.

이더리움은 스마트 콘트랙트를 지향한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에 비해 구조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 콘트랙트는 사람들의 현실 생활과 관련을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뢰받는 제삼자를 배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날씨를 근거로 내기를 하는 스마트 콘트랙트를 운영하려면 내기 당사자 모두가 신뢰하는 제삼자가 날씨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이때 기상청의 공식 발표는 상당히 신뢰할 만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트러스트리스 트러스트 철학에는 맞지 않는다. 신뢰받는 제삼자라는 어휘가 암호화폐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피해야 할 전염병과도 같아서인지 이더리움은 신뢰받는 제삼자(TTP : Trusted Third Party)라는 어휘 대신에 ‘오라클(orac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