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인사이드]
벤처 투자, ‘빠른 성과’보다 ‘야심의 크기’가 중요…비트코인, 거품 아닐 수도 있다
핀테크 '찻잔 속 태풍'이라고? 실제 금융 시장 변화 주도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금융(Finance)과 기술(Tech)의 결합으로 탄생한 ‘핀테크’는 여전히 그 의미가 모호한 게 사실이다. 금융 산업에서 로보어드바이저$인공지능(AI)과 같은 용어들이 익숙해지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전통적인 금융이고 어디서부터 핀테크인지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최근 ‘테크핀(Techfin)’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전통적인 금융 산업에 기술이 활용된 ’핀테크‘와 달리 기술을 중심으로 금융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는 업체들을 구별하기 위한 이름이다.

올해 초부터 미국 금융시장에서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는 ‘테크핀’이라는 단어는 국내에서는 아직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김성준 렌딧 대표가 광화문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12월 13일 열린 ‘2018 핀테크를 내다보다, 테크핀의 부상’이란 세미나에서 이 단어를 처음으로 설명했다. 그는 “케이뱅크가 핀테크라면 카카오뱅크는 테크핀”이라며 “둘은 태생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세미나에는 김 대표 외에도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의 한킴 대표,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의 공동창업자인 김진화 블록체인협회장, 소상공인들을 위한 회계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인 캐시노트를 개발한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대표 등이 참여해 ‘2018년 핀테크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한킴 알토스벤처스 대표
"핀테크, 국내만 해도 어마어마한 시장"

한킴 알토스벤처스 대표가 본격적인 세미나의 문을 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 한 알토스벤처스는 배달의 민족$쿠팡$미미박스 등에 투자하며 벤처 투자의 신화를 쓰고 있는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다. 핀테크 기업으로는 간편 송금 서비스인 ‘토스’를 개발한 비바리퍼블리카와 P2P업체인 렌딧에 투자하고 있다.

한킴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은 국내시장이 작기 때문에 큰 회사로 성장하기 어렵다거나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시장에서 성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와 같은 편견이 자리 잡은 이유로 ‘빨리 이익을 내려는 투자 문화’를 꼽았다. 대부분이 국내 벤처펀드의 회수 기간은 5년에서 7년 정도로 짧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작은 회사들이 이른 시간 안에 이익을 내기 위해 기업공개(IPO) 등을 시도한다. 문제는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할 시기에 IPO에 나서게 되면 그만큼 기반이 취약해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큰 회사가 덤벼들면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킴 대표는 “우리는 창업자와 많은 대화를 나눠본 뒤 투자를 결정한다”며 “창업자가 이 회사를 얼마나 크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야심의 크기’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업체들에 투자하게 된 것 또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금융시장은 ‘모바일’과 만나며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산업 분야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시가총액만 하더라도 대략 80조원을 넘어선다. 기존의 금융사 가운데에는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며 더욱 성장할 곳도 있겠지만 적응에 실패하는 곳들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그 빈자리를 차고 들어갈 ‘새로운 회사’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
"블록체인은 인터넷 '신뢰 네트워크'"

둘째 연사로 나선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비트코인을 금융의 시각에서 보자면 버블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버블이 아닐 수 있다”며 “현재 비트코인이 버블인지 아닌지는 이 시기가 지나봐야 결론이 날 것”이라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강조했다.

그는 비트코인에 돈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그동안 인터넷에 탑재돼 있지 않았던 ‘신뢰’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기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인터넷 네트워크에서는 거래자들 간의 신뢰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업체들이 중개자 역할을 했다. 소비자들은 이 업체들을 믿고 개인 정보를 맡기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가 이뤄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을 탄생시킨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중개자 없이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인 간의 거래가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믿는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물리적 인프라는 사물인터넷이, 그리고 그 디바이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은 블록체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비트코인이 미국 선물거래소에 상장되고 호주는 비트코인을 정식 지급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는 등 정부가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며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표현하는 핀테크는 이미 찻잔에서 흘러나와 실제 금융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
"IT 산업 패러다임,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카카오톡을 통해 카드 매출을 조회하고 카드 수수료 확인이 가능한 ‘캐시노트’는 출시 2개월 만에 4000여 소상공인 사업자를 그러모으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캐시노트를 개발한 한국신용데이터의 김동호 대표는 “이미 시장에 캐시노트와 비슷한 기능의 앱들이 있었다”며 “새로운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할 때 별도의 앱을 제작하는 대신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 위에 새로운 플랫폼을 얹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전략의 배경이 된 것은 ‘변화의 패턴을 읽는 눈’이었다. 1990년대 퍼스널컴퓨터가 등장했을 때는 전 국민의 80%에 보급되는 데 약 17년이 걸렸다. 2010년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전 국민의 80%에 보급되기까지 불과 3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보기술(IT)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가 카카오톡을 주목한 것 역시 그와 같은 이유였다. 김 대표는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90%가 카카오톡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있다”며 “어느 나라도 카카오톡처럼 전 국민이 단일 메시지를 사용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캐시노트 사용자들 중 40% 이상이 40대 이상이며 하루 한 번 이상 앱을 사용하는 비율도 97%에 달한다.

◆ 김성준 렌딧 대표
"핀테크 VS 테크핀, 앞으로 차이 더욱 두드러질 것"

마지막으로 강단에 선 김성준 렌딧 대표는 “모바일 쇼핑이 일상화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기저귀를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앞으로는 금융 서비스도 마찬가지로 100% 디지털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는 ‘핀테크’와 ‘테크핀’의 차이를 강조했다. 같은 P2P 업체라고 하더라도 부동산 담보대출은 전통적인 금융 산업을 기반으로 한 ‘핀테크’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 담보 설정을 위해서는 오프라인 현장을 방문해 물건을 확인하는 등 전통적인 금융 산업의 절차를 따라야만 한다.

이에 비해 개인 신용 대출은 출발점이 다르다. 개인 대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 평가 시스템’이다. 대형 금융사들은 개인의 신용 평가 등급이 매우 넓게 설정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등급에 묶여 같은 금리를 적용 받는다.

렌딧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데이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 개인의 신용 평가 등급을 세분화함으로써 각자의 상황에 맞는 적정 금리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출금리를 낮출 수 있고 모든 과정은 모바일을 통해 진행된다.

지향점이 다른 핀테크와 테크핀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P2P 업체들의 미회수율(연체율) 추이다. P2P 부동산 담보대출은 그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반면 P2P 개인 신용 대출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금융 데이터가 쌓이고 기술력이 정교해질수록 이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김 대표는 “P2P와 같은 핀테크 업체들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며 “다만 기존의 금융시장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를 개선함으로써 소비자들이 보다 편안하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