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 판 바뀐 재테크]
4차 산업혁명 반도체 관련주 ‘랠리’, 트럼플레이션으로 채권·금 투자 ‘시들’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금융 전문가의 눈에 2017년은 어떤 한 해였을까. 은행·증권사의 자산 관리 전문가 10인을 통해 올해의 투자시장을 되돌아 봤다. 불투명한 투자 시계(視界)에서 그들은 어떠한 흐름을 발견했을까.

◆코스피 2400시대의 주역은?

“기업의 실적 개선이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 냈습니다.” 자산 관리 전문가 10인은 올해 투자시장 성적표에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줬다. 글로벌 경기 회복과 기업의 이익 증가로 투자시장이 되살아났다는 평가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수년간 지속돼 온 선진국들의 뉴노멀(저성장·저물가·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다시 호황 국면에 진입하는 매크로 환경에서 한국의 수출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 업황의 호조가 ‘코스피 2400’ 시대를 열었다는 분석이다. 윤 센터장과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김기호 KEB하나은행 평창동골드클럽 PB팀장은 “반도체의 약진으로 기업 이익이 증가했고 이것이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올해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에는 상반기에 이어진 1차 랠리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가격 상승에 따른 대형 정보기술(IT) 회사의 실적 호조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2월 초 기준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유가증권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약 1600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율만 약 400조원에 달한다. 2개 회사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약 25%를 차지하는 것이다.

올해 가장 유망했던 투자 자산을 꼽는 질문에는 열에 아홉이 ‘주식’을 선택했다. 이들은 특히 IT·기술주 등 4차 산업혁명 관련주에 높은 점수를 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혁신 성장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은행·증권 전문가 10인이 본 '2017 시장'
육대현 KEB하나은행 서압구정골드클럽 PB팀장은 “자동화·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자율주행 등 4차 산업과 연관된 자산이 최고의 투자처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은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 4차 산업혁명 관련주가 유망 투자 자산으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해외 기업 중 대표적인 4차 산업혁명 관련주로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애플과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구글의 알파벳,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회사인 페이스북, 전자 상거래 기업인 아마존 등이 꼽힌다.

관련 금융 투자 상품도 급증했다. 올해 국내에 출시된 상품은 글로벌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해외 펀드가 다수를 이루고 있고 4차 산업혁명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됐다.

최근에는 3차원(D) 프린팅과 보안 기술, 게임·인터넷·소프트웨어·소셜미디어·핀테크·전기자동차 등으로 투자 분야가 세분화돼 출시됐고 중국 내수 시장이 커짐에 따라 중국 인터넷 관련 펀드도 만들어졌다.

향후 국내 IT 산업도 4차 산업혁명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관련 펀드의 출시는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이 밖에 신동일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삼성전자 등 대형주 편입에 따른 성장주 펀드가 강세를 보였고 주가연계증권(ELS)도 다시 부각됐다”고 말했다.
은행·증권 전문가 10인이 본 '2017 시장'
◆“아, ‘트럼플레이션’…”

반면 올해 기대주였지만 이에 미치지 못한 투자 자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채권과 금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히 우리은행WM자문센터는 ‘금’에 만장일치 표를 던졌다. 국제 금값이 4개월 만에 온스당 125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금 펀드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 기준으로 국제 금 선물 가격은 12월 11일 온스당 1243.70달러에 마감되며 앞선 7월 19일 이후 4개월 만에 최저가를 찍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주식 등 ‘위험 자산’ 선호 현상이 지속되면서 안전 자산인 금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과 채권이 올 한 해 시장에서 인기가 떨어진 주된 요인으로는 ‘트럼플레이션(Trumpflation)’이 꼽혔다. 트럼플레이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미국 경기를 되살리겠다고 공언하면서 물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란 데에서 유래한 신조어다.

즉 트럼플레이션으로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미리 정해진 금리가 수익을 결정하는 구조인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채권 투매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육대현 팀장은 “지금은 다소 미지근해졌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트럼플레이션이 유럽과 신흥국 등으로 퍼져나가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을 선호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럽 주식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구용욱 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 관련주가 올해 투자를 이끈 반면 IT 비율이 낮고 금융과 에너지 비율이 높은 유럽 주식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시장의 성장을 저해한 요인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인 북핵 문제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은행·증권 전문가 10인이 본 '2017 시장'
올 한 해 핵문제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미국 간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될 당시에는 직접적인 당사국인 한국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은 국내외 국채 등 일부 안전 자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산 가격이 하락세를 면하지 못했다.

특히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원자재와 글로벌 주식 그리고 하이일드 등 글로벌 자산시장 전반에 불안 심리가 노출됐다.

신동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경기 회복과 기업 실적 호조 등 우호적 환경이 지속되고 있지만 지정학적 위험은 우리 투자시장의 할인 요소이자 반복되는 변동성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투자 vs 투기, 제재 vs 제도화

2017년 투자시장을 뒤흔든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자산 관리 전문가 대부분은 비트코인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강조했다.

투기적 수요에 따른 가격 형성으로 가격 상승 속도가 매우 가팔라 한탕주의 인식에 대한 변화와 제도적 정비가 선행돼야 할 것이란 주장이다.
은행·증권 전문가 10인이 본 '2017 시장'
윤희도 센터장은 “투자보다 투기 수요가 절대적으로 많은 만큼 현재 가격에는 거품이 끼었다”며 “화폐로 통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보영 KEB하나은행 한남1동골드클럽 센터장 역시 “투기와 투자, 제재와 제도화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며 “정부 제재로 가상 계좌에 대한 거래가 힘들어진다면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기인 센터장은 “화폐 대체 기능보다 상품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우호적인 의견도 있었다. 신동일 부센터장은 “단기적으로는 묻지 마 투자를 경계해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관심 가져야 할 가상화폐”라고 말했다.

김기호 팀장 또한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향후 거래 안전성만 확보된다면 거래 확대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