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임차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주의해야
임대차 계약의 ‘묵시적 갱신’이 가진 위험
[한경비즈니스=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변호사] 서울 소재 상가 건물의 어느 점포 임차인으로부터 묵시적 갱신과 관련해 받은 상담 내용이다. 의뢰인의 비밀 보호를 위해 사안을 약간 변형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이 의뢰인은 임대차 보증금 1억원에 월 200만원, 임대차 만기가 2018년 3월 31일이다. 의뢰인은 임대차 만기를 앞둔 2월 초순께 임대인에게 임대차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한다.

하지만 임대인으로부터 뜻밖의 답을 듣게 된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본 임대차 계약 기간 만료 2개월 전까지 당사자 어느 일방으로부터 의사표시가 없는 때는 본 임대차 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1년 계약을 연장하는 것으로 한다’는 임대차 계약 조항에 따라 1년간 계약이 자동 연장된다는 취지였다.

이런 계약 내용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의뢰인은 임대인에 대해 임대차 만기 2개월 전까지 계약 종료 통지를 하지 못했는데 공교롭게도 계약 종료를 전제로 이미 다른 점포에 임대차 계약을 마친 상태여서 더욱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차인에겐 불리해 ‘무효’ 될 수도

당황한 의뢰인은 필자를 찾아와 “내용에 대한 구체적 합의 없이 부지불식간에 삽입된 내용이니 무효가 아닌가”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계약 내용이 기재돼 있는 계약서에 두 사람이 서명날인했다면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의뢰인의 하소연은 법적인 분쟁에서 효과적일 수 없다.

거짓이 아니라 진심과 억울함이 충분히 느껴지는 사안이라 필자로서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문제가 된 계약 내용이 워낙 분명하고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 법적 분쟁에서 불리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고민 끝에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키포인트는 ‘이 법의 규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5조다. 즉, 문제가 된 위 계약 내용은 묵시적 갱신에 관한 내용인데 묵시적 갱신에 관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상임법) 제10조의 내용보다 위 계약 내용이 임차인에게 불리하다는 점에서 무효일 수 있다는 논리다.

상임법 제10조는 ‘계약갱신요구권’과 ‘묵시적 갱신’을 함께 규정하고 있어 혼동할 수 있지만 의뢰인은 임차인이 갱신을 통한 계약 연장을 주장하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계약갱신요구권관 관련된 제10조 제1항이 아닌 제4항이 관련 규정이 된다.

제4항은 일정 기간 내에 임대인이 갱신 거절 등의 통지를 하지 않을 때 묵시적 갱신이 발생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반면 임차인에게는 묵시적 갱신의 저지를 위한 통지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지 않다. 민법 임대차 규정과 기본적으로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결국 임대인과 달리 임차인은 위 기간에 구속됨이 없이 계약 만기 전 언제든지, 극단적으로는 계약 만기 하루 전에라도 계약 종료를 통보하면 그만이다. 다시 말하면 정해진 기간 내에 갱신 거절 등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1년간 기간 연장의 부담을 안게 되는 임대인과 달리(이 경우에도 임차인은 통지 3개월 만에 계약 종료의 특권을 보유한다) 임차인에 대해서는 그런 부담을 두지 않는 것이 상임법의 내용이다.

◆고액 계약에선 적용되지 않는 묵시적 갱신

따라서 언뜻 보면 양자 간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 효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임대인과 임차인은 이 임대차 계약 기간 만료 2개월 전까지 당사자 어느 일방으로부터 의사표시가 없는 때에는 이 임대차 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1년 계약을 연장하는 것으로 한다’는 계약 조항은 위와 같은 상임법의 취지를 종합해 보면 임차인에게 불리한 내용이어서 무효일 가능성이 높다.

주의할 점은 상임법 제10조 제4항의 묵시적 갱신 조항이 상임법령에서 정하는 소정의 환산 보증금 기준을 초과하는, 즉 고액 임대차 계약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상임법 제2조).

즉 고액 임대차 계약에서는 묵시적 갱신에 관해 상임법 제10조 4항나 상임법 제15조를 적용받을 수 없고 임대차 계약의 일반 조항인 민법 제639조가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위 의뢰인의 임대차 계약이 소정의 환산 보증금을 초과한다면 민법 제639조에 따른 묵시적 갱신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민법 제639조는 민법상 강행 규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사자 간에 얼마든지 달리 약정할 수 있다.

결국 민법상 묵시적 갱신 조항에 대한 특약이라고 할 수 있는 ‘임대인과 임차인은 이 임대차 계약 기간 만료 2개월 전까지 당사자 어느 일방으로부터 의사표시가 없는 때에는 이 임대차 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1년 계약을 연장하는 것으로 한다’는 약정 내용은 유효로 해석된다. 그 결과 의뢰인은 원하지 않는 1년 계약 연장의 불이익을 입게 될 수 있다.

한편 주거용 건물에 관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주임법)상의 묵시적 갱신 규정은 상임법과 다른 특징이 있다.

첫째, 주거용 주택에 대해서는 갱신요구권 제도가 없어 주임법 제6조 전체가 ‘묵시적 갱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둘째, 임차인에 대해서도 갱신 거절 등의 통지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다. 다만 계약 만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인 임대인과 달리 ‘1개월 전’이라는 요건에 차이를 두고 있다. 셋째, 묵시적 갱신에 따른 연장 기간은 2년이다.

만약 필자의 견해와 같이 위 계약 조항이 무효가 된다면 계약서상 명시적인 합의에 따라 당연히 1년 기간 연장이 됐을 것으로 상황을 오판한 임대인은 의뢰인에 대한 적시의 보증금 반환, 후속 임차인 물색에 따른 공실 문제 등의 면에서 많은 손해를 볼 수 있다.

불의의 손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라도 임대차보호법령 전반에 대한 임대인의 세심한 주의가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