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달러 많으면 위기 억제 가능해, 외환위기 가능성 거의 ‘제로’
신흥국 ‘테이퍼 텐트럼’…한국도 위험한가

(사진)제롬 파월 Fed 의장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6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 인상을 앞두고 신흥국에서는 긴축 발작, 즉 테이퍼 텐트럼(이하 TT)이 재현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도 했다. 터키의 리라화, 러시아의 루블화, 브라질의 헤알화 가치도 5월 들어 평균 8% 정도 급락했다. 2013년 1차 TT, 2015년 2차 TT에 이어 이번에 자금 이탈과 금융시장이 불안한 국가는 자본 거래에서 달러의 비율이 높고 달러 부채가 많은 점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헤알화 가치 8% 급락


일반적으로 신흥국의 TT 대응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사전적 대응 방안으로 토빈세·가변예치제 등을 통한 해외 자본 유출입 규제, 또 다른 하나는 내부 역량 강화를 통한 대응 방안으로 외화보유액 확충과 외화보유액 활용 능력 제고, 외화 건전성 규제 등이다.


각국의 TT 대응 방안에 대해 실효성을 검토한 한국은행 등 기존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신흥국이 최우선 순위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 자본 유출입 규제는 직접 규제든 간접 규제든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가 없거나 효과가 있더라도 단기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해외 자본 유출입 규제보다 앞서가는 복잡한 고도의 파생금융 기법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 흐름도 각종 캐리 자금이 주도되면서 직간접 규제 이후에도 약간의 수익률 차이가 나면 종전보다 자금 유출입이 심해지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외화보유액 확충은 1994년 중남미 외환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를 거치면서 신흥국이 외부 요인에 의한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적인 안전장치(self-insurance)로 중시돼 왔다.


연구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외화보유액이 10억 달러 증가하면 신흥국이 위기를 겪을 확률은 평균 50bp (1bp=0.01%p)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화보유액 확충이 위기 발생 확률을 낮추는 것은 신흥국의 자본 자유화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유입되는 해외 자본이 최대한 총투자 금액을 늘리는 이른바 레버리지 투자를 주도하는 헤지펀드·사모펀드 등이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예기치 못한 사유로 이들의 증거금 부족이 발생하면 자본 회수국으로 선택된 신흥국에서는 한꺼번에 대규모 자금이 이탈되는 과정에서 위기가 발생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화보유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기 발생 억제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20년 전 한국의 외환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외화보유액 5000억 달러 달해


최근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 방지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논의되고 속속 규범화되는 새로운 자본 유출입 규제와 TT 방지 방안에 신흥국이 적극 동참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를 계기로 금융 위기 재발 방지 차원에서 금융 안전망 구축과 금융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선진국은 주로 은행 건전성 규제에 중점을 두는 반면 신흥국은 해외 자본 유출입, 그중에서도 TT 방지와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 등을 통한 인접국과의 공조 채널을 강화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이후 논의·추진되는 이들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평가하기에는 아직까지는 이른 듯하다. 기존의 대책과 차이가 있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종 국제 규범을 주도해 온 미국 등 선진국에서 발생해 온 만큼 최근 논의·추진되는 대책은 보다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이런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금융 위기를 방지할 수 있어도 세계경제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또 다른 과제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TT 대응 방안으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외화보유액이다. 1차 TT 당시 JP모간이 인도·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브라질을 ‘구취약 5개국(Fragile5·구F5)’으로, 2차 TT 당시 골드만삭스가 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멕시코·콜롬비아를 ‘신취약 5개국(신F5)’으로 분류할 때 외화 평가 지표(보유외화÷(경상수지적자+단기외채+외자회수))를 사용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적정 외화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 지급 수요를 예상 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접근법’, 외화보유액의 수요 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화보유액 수요 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돼 왔다.


세 가지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외화 보유 동기에 따라 IMF 방식, 그린스펀·기도티 방식, 캡티윤 방식으로 세분된다. 추정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국가라고 하더라도 적정 외화보유액이 크게 차이가 남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신흥국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각종 외화 보유 관련 평가 지표로 볼 때 앞으로 Fed가 금리를 올려 나가면 TT가 발생할 상시적인 위험국은 베네수엘라·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다. 주변국 위기 점염 여부에 따라 TT가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국은 러시아·멕시코·브라질·인도다. 어떤 경우든 중국은 TT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게 나온다.


한국의 외화보유액은 ‘1선(직접 보유)’과 ‘2선(통화 스와프 등 간접 보유)’ 자금을 합하면 5000억 달러가 넘는다. Fed가 금리를 인상하는 과정에서 일부 신흥국이 3차 TT 현상이 발생하고 있지만 한국에 점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른 신흥국이라면 몰라도 한국의 6월 위기설은 전형적인 ‘인포데믹(정보 전염병)’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