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보스턴주식거래소와 오버스톡 ‘토큰화 증권거래소’ 추진…‘투명한 거래’가 목표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보스턴주식거래소와 오버스톡의 자회사 티제로(t0)가 세계 최초로 토큰화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보스턴주식거래소의 운영 업체인 BOX디지털마켓과 티제로가 함께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미 연방법이 인정하는 합법적인 토큰 거래소가 탄생한다. 기업들은 증권법 위반에 대한 부담 없이 주식을 토큰화하거나 암호화폐 공개(ICO)를 진행할 수 있다.

BOX디지털마켓은 주식 옵션 분야에 전문화된 업체다. 티제로는 암호화폐 분야에서 독특한 지위를 가진다. 사움 노르살레이 티제로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파트너십이 블록체인 시장을 기존 금융시장에 통합하는 주요한 기점이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증권거래위원회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초의 합법적인 블록체인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기 위해 관할 당국인 미국 증권거래감독위원회(SEC)와 물밑 협상 중임을 내비쳤다.

티제로의 모회사인 오버스톡을 설립한 패트릭 번(Patrick Byrne) CEO에게 ‘증권을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서 토큰 형태로 거래하는 프로젝트’는 반드시 실현해야만 하는 일종의 신념이다.

오버스톡은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 본사가 있는 온라인 유통 회사다. 가구·러그·침구류·전자기기·의류·보석류 등 다양한 제품들을 경제적 가격에 판매하는 글로벌 쇼핑몰이다. 오버스톡은 2014년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온라인 쇼핑몰이기도 하다.

오버스톡은 2014년 포브스가 선정하는 ‘가장 신뢰 받는 100대 기업’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번 CEO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몰두하기 시작한 이후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받아들였지만 고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버스톡은 또한 2017년 상반기 800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 이 중 600만 달러는 블록체인 기술 회사인 자회사 메디치 때문이었다. 당시 번 CEO는 블록체인 기술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이 회사와 주주들의 미래 수익에 공헌할 것이기 때문에 블록체인 관련 투자를 지속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작년 말 티제로는 ICO를 통해 1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모았지만 그 일로 규제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자 오버스톡의 주식이 폭락했다.


◆‘증권의 토큰화’는 자유를 위한 신념

번 CEO는 3차례나 암 투병을 거쳐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공인된 자유주의자로 루드비히 폰 미제스의 오스트리아학파와 맥이 닿는다. 비트코인에 대한 그의 열정은 기업가적이라기보다는 이념적이다. 그는 비트코인이 월가 거대 금융회사들의 타락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말해 왔다. 티제로의 토큰화 증권거래소 설립은 사업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사회운동의 성격이 강하다.

번 CEO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부터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무차입 공매도’라는 그들만의 무기를 휘두르며 주식시장을 교란해 왔다고 주장했다. 오버스톡은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등 월가의 거대한 금융 공룡들과 35억 달러짜리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월가의 거대 금융기업들이 무차입 공매도로 오버스톡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증권을 토큰화하는 블록체인 거래소라면 거대 금융회사들의 주가조작을 차단할 수 있다. 가시성이라고 하는 블록체인의 투명한 속성 때문이다. 보유하지도 않은 증권을 대량 매도해 가격을 폭락시킨 후 헐값에 다시 구입하는 무차입 공매도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또 토큰화한 증권은 비트코인처럼 작게 분할할 수 있어 증권의 유동성도 증가한다. 무엇보다 스마트 컨트랙트(계약)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브로커의 역할이 축소되므로 거래비용을 80% 정도 줄일 수 있다. 즉 투명성·유동성·효율성이 블록체인 증권거래소의 속성이다. 혁신이지만 증권시장 주변에 형성된 생태계를 파괴하는 게 문제다. 제도권의 핵심과 연결된 기존 생태계의 저항이 강력할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이 증권거래에 최적화된 기술이기 때문에 역설적이지만 실현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공매도를 하려면 증권을 차입해야 하는데 미국에서만 1억 달러 정도의 증권이 항상 대출 상태에 있다. 퇴직연금재단 같은 큰손들이 보유한 주식을 브로커들이 맡아 공매도하려는 이들에게 대여해 준다. 기관들은 주식을 맡겨 놓는 것만으로 수수료를 받는다. 브로커들 역시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긴다. 공매도와 관련해 지불하는 수수료만 1년에 2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주식 가격을 인위적으로 움직여 가며 돈을 버는 공매도 시장은 월가의 금융 기업과 수천 명의 브로커, 각종 연기금 재단들이 얽혀 있는 생태계다. 이들은 소수지만 그만큼 결속력이 강해 막강한 이익집단을 구성한다. 블록체인 증권 플랫폼이 넘어야 할 벽이다.

미국의 금융 산업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보이는 번 CEO가 SEC와 같은 규제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전통적인 금융 산업의 토대를 뒤흔들 수도 있는 프로젝트에 규제 당국까지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능할 것 같지 않던 변화다.

하지만 무정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ICO 시장의 빠른 성장을 고려하면 납득할 수 있는 변화다. 규제 당국으로서는 모든 ICO를 금지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티제로와 같은 합법적인 토큰 거래 플랫폼을 양성하는 편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모든 ICO가 불법은 아니라고 말하는 SEC 핵심 인사들의 최근 발언과 티제로와 보스턴주식거래소의 파트너십 같은 가시적인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미국 규제 당국의 저울은 이미 ICO를 비롯해 금융자산의 토큰화를 양성화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금융시장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변화가 시작하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블록체인은 효율적인 기술이라기보다 근본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증권거래소’로 공매도 막는다
(사진) 미국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황소상 앞에 설치된 소녀상. 소녀상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한 월스트리트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돋보기] 비트코인 거래에 뛰어드는 미국의 월가
뉴욕타임스는 5월 8일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인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모기업인 인터컨티넨탈익스체인지(ICE)가 비트코인 거래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플랫폼 개발이 완료되면 비트코인은 뉴욕증권거래소의 정식 상품으로서 스와프 거래 형태로 거래할 수 있다. 거래가 이뤄지면 다음날 비트코인 현물을 인도받는 형태로 비트코인 현물과 선물거래가 연계된 방식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등 일부 대형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선물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주류 금융시장에서 암호화폐를 직접 구매하는 방식은 처음이다.

월가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비트코인 파생 금융상품 거래에 뛰어든다고 결정한 직후 나온 소식이어서 월가가 본격적으로 비트코인 시장에 진입하려고 한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또 나스닥도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