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인사이트]
-‘슬로건’은 선해도 ‘과정’이 악하다…속도와 방향 조절로 ‘소비 늘리기’ 나서야
밀어붙이기식 ‘소득주도 성장론’ 이제 그만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장하성 정책실장 등이 청와대에서 가계소득 동향 점검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원화가 약하다. 달러 인덱스는 95를 기점으로 하향 안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상승세가 여전하다. 언론은 원․달러 환율의 상승을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의한 내외 금리 차나 신흥국 시장(EM)에서의 자금 유출로 해석하지만 필자의 판단은 다르다. 대외 요인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세의 심화는 대내 요인을 반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원화의 약세 기저에는 기반부터 흔들리는 한국경제가 자리해 있다. 원․달러 환율이 고점을 넘어선 것은 6월 15일 이후다. 6월 15일은 한국의 실업률이 기대치인 3.7%를 넘어 4%를 기록한 날이다. 6월 20일에는 20일간의 수출 증가율이 발표됐다. 14.8%에서 마이너스 4.8%로 전년 동기 대비 수출이 오히려 감소했다. 고용 쇼크에 이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돼왔던 수출마저 흔들리자 센티멘털이 아닌 펀더멘털 자체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밀어붙이기식 ‘소득주도 성장론’ 이제 그만
◆ 소비 증가 뒷받침돼야 ‘소득 주도’ 성과

한국 경제가 기반부터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수식에서 출발해 보자. ‘국민소득(GDP, Y)=소비지출(C)+투자지출(I)+정부지출(G)+순수출(X-M)’이라는 공식이다. J노믹스의 ‘소득 주도 성장’은 소비(C)의 증가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최근 기업 세제 개편만 보더라도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줄이고 고용 관련 인센티브에 가점을 주고 있다. 재정지출에서도 인프라 투자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한편 복지와 일자리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있다. 수출에서는 원․달러 환율의 인위적인 상승 정책은 중상주의로 평가절하하며 개입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표명한다. 최근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는 이러한 정책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순수출(X-M)이 낙수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경시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 더욱이 수출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우려에서 알 수 있듯이 글로벌 수요, 글로벌 무역 정책 등 외부적인 요인이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것이 수출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소비 주도 성장론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소득 주도 성장의 이론적 배경은 주류 경제학에도, 마르크스 경제학에도 속해 있지 않다. 자본의 축적이든 투자든 경제성장은 자본에서 출발한다고 보는 기존 경제학과 달리 소비 주도 성장은 임금에 기반한 소비가 성장의 원천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정책의 성공 여부는 민간 소비 확대가 현실화되느냐에 달려 있다.

소득 주도 성장론(칼레츠키학파)은 ‘Y=wN(임금)+P(이윤)=C(소비지출)+I(투자지출)’의 수식으로 표현한다. 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증가해 기업 매출이 증가하고 기업이 투자를 증가시키면서 고용을 늘린다는 메커니즘을 전제한다. ‘임금이 올라야 고용이 증가한다’는 동태적 접근은 소비 증가가 확인될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을 올리면 무조건 고용이 더 증가한다는 이론은 아니다.

소득 주도 성장론이 성공하려면 임금 인상 이전에 소비를 늘리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책 방향은 소비를 늘리기보다 제약하는 정책이 다수다. 자산 가격의 상승을 제약하는 부동산 정책과 가계의 부채 증가를 제약하는 금융정책이 동시에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에서 소비로 이어지는 경로를 뒷받침할 정책이 없다는 것은 우려 요인이다. 소비 자체도 국내보다 해외 성장세가 더 뚜렷하다. 물론 정부의 정책 방향에는 동의한다. 신자유주의의 과잉은 극복돼야 하고 재분배가 아닌 원천 분배의 개선으로 불평등이 완화돼야 한다. ‘재벌’로 지칭되는 가족 자본주의는 법이 중시되는 주주자본주의로 개편돼야 한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이 서서히 올라야 하고 빈부의 격차가 해소돼야 하며 저소득층의 삶의 질 역시 중요한 요소인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옳은 이념 위에 필요한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그 정책의 실천 과정까지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다.

◆ ‘소득 주도 성장론’의 외연 확장이 필요하다

어떠한 정책 슬로건도 그 자체는 선하다. 악한 것은 그 과정일 뿐이다. 정책 현실화 과정 자체가 시장과의 소통을 간과하면 그 부작용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좋든 싫든 우리는 금융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 경제는 실물보다 금융이 지배한다.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책 파급효과를 좀 더 정교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멀리 찾지 않아도 된다. 미국과 유로존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 과정을 복기해 보자.

2013년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의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발언 이후 2014년 양적 완화(QE) 종료, 기준금리 인상의 사이클을 보면 자신의 발언으로 시장의 반응을 떠보며 정책 경로를 면밀히 관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Whatever it takes)’란 언론 플레이만으로 시장을 안정시켰다.

정책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각 경제 주체들의 이해득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과도하게 우려하거나 과도하게 환호한다. 정치는 각자의 지지 기반을 대변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경제정책의 집행 과정에서 나오는 비판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과도한 환호보다 오히려 과도한 우려를 시나리오에 포함해 고민해야 한다. 이번처럼 실업률 쇼크를 두고 민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거나 자동차 업종의 일시적인 요인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만으로 피해 가는 것은 그리 현명한 대처가 아니다.

나아가 더 큰 우려는 경제성장률에 대해 정책 당사자들이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지점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한국은 폐쇄경제가 아닌 개방경제, 그중에서도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는 분배 정책이나 평등을 기준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요소들이고 경제성장률은 외국인이 한국의 경제를 바라보는 절대적인 기준 중 하나다. 전년 동기 대비로 한국과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동일하게 2.8%를 기록했다. 한국이 미국과 동일한 성장을 보일 때 외국인이 한국에 매력을 가질 이유가 어디에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에 투자할 때 이익이 높은 기업과 직원에 대한 대우가 좋고 이익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기업이 있다면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의 문제와 같다.

선거도 끝났고 이제 정부 정책도 ‘소득 주도 성장론’에서 좀 더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Y(국민소득)=C(소비지출)+I(투자지출)+G(정부비출)+(X–M)(순수출)’에서 G(정부지출)라도 변화를 줘야 한다. 아직까지 북한으로의 자금 투자가 불가능하지만 북한과의 연결성을 고려한 한국 내부의 철도․도로․항만 투자는 충분히 인프라 투자의 증가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 투자 역시 인프라 투자로 판단할 수 있고 기업 투자의 확대 역시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이다. 도시 재생 뉴딜 사업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투자 등 하반기에 이뤄질 투자가 현실화된다면 내수 부분의 성장을 기대할 여지도 크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언론 플레이보다 ‘늘공(늘 공무원)’의 정교한 정책 시행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의 내부 거래 개선도 정책 실행 과정에서 진행하면 된다. 굳이 언론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있다. 기업과 내부적인 협의를 통해서도 충분히 상황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내편’, ‘네편’이 아닌 ‘우리편’의 시각에서 정책이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날 선 정책으로 인한 피해와 심리적 위축을 막기 위해 정책 집행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고 미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게 옳다’는 신념이 모든 정책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경제지표가 당초 예상보다 부진하면 왜 그런지 진단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론’의 지난 1년의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미래에는 나아질 것이니 좀 더 밀어붙이자는 접근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J노믹스의 이상에는 동의하지만 J노믹스를 이루기 위한 현재의 정책적 속도와 방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