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단기적 경기 둔화 피할 수 없어…멀리 봐도 세수 감소 등 성장의 지속 가능성 우려
글로벌 감세 경쟁 속 ‘증세’ 택한 한국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놓고 말이 많다. 다주택 보유자와 고가 주택에 초점을 맞춰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조정과 종부세율, 누진세율을 동시에 올리는 급진적인 개편안이기 때문이다.

원안대로 시행된다면 조세 저항과 부동산 시장 그리고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세에 앞서 법인세와 소득세는 올렸다. 작년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각국의 경제정책은 ‘재정’으로 빠르게 옮겨지고 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실물 경기가 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양적 완화 등으로 풀린 과잉 유동성으로 주식·채권·부동산에 걸쳐 모두 거품이 우려돼 더 이상 금융 완화를 추진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은 세금 감면으로 재원 마련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 수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전통적인 케인지언 수단이다. 다른 하나는 감세를 통해 경제 주체(특히 기업)의 의욕을 고취시켜 성장률과 재정수입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1890년대 초반 레이건 정부 시절 추진했던 ‘레이건노믹스(일명 공급 중시 경제학)’다.

미국은 재정정책으로 우선순위가 완전히 바뀌었다. 올해 말로 양적 완화를 끝내는 유럽은 재정정책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1단계 ‘금융 완화’에서 2단계 ‘재정정책’으로 넘어가고 있다. 중국도 고부채, 그림자 금융, 부동산 거품은 ‘금융 긴축’으로 잡아가지만 그 후유증에 따른 경기는 재정정책으로 안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눈에 띄는 것은 종전에 많이 사용했던 ‘재정지출’보다 ‘세금 감면’에 더 주력한다는 점이다. 충분히 이유는 있다.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은 ‘큰 정부론’이 불가피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체제’, 경제적으로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국가에는 이 부담이 크다. 하지만 감세정책은 경기 부양 주체가 민간이기 때문에 ‘작은 정부론’에 부합돼 경제 발전 단계가 높은 국가일수록 선호한다.

문재인 정부는 경기 부양 수단으로 재정정책을 선택했다. 방향은 맞다. 선진국의 출구전략 추진 등으로 금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고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는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하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도 우리의 재정 건전도를 평가해 보면 신흥국 위험수위인 70%의 절반을 조금 넘는 40% 내외다.

하지만 재정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주로 증세로 마련하겠다는 점은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점이다. 증세를 통해 경기 회복과 재정수입에 도움이 될지 여부는 레이건노믹스의 이론적 근거였던 ‘래퍼 곡선(미국 경제학자 아셔 래퍼 교수가 주장한 세율과 세수 간 관계를 나타낸 곡선)’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래퍼 곡선은 두 구간으로 구분된다. 세율과 재정수입 간 정(正)의 구간이 ‘표준 지대’, 부(負)의 구간이 ‘비표준 지대’다. 표준 지대에서는 증세하면 성장에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세수가 증가하지만 비표준 지대에서는 경제 효율을 떨어뜨리는 세율을 낮춰줘야 경기가 살아나고 재정수입이 늘어난다.

미국을 필두로 감세를 추진하는 대부분의 국가는 세율이 비표준 지대에 놓여 있다는 판단에 따라 경제 주체의 인센티브를 제고하는 것이 경기 부양과 세수 확대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소득세·부동산세 가릴 것 없이 세율을 일제히 올렸거나 올릴 계획이다. ‘감세’라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대조적이다.

한국 경제 내부에서는 법인세·소득세·부동산세 모두 적정 세율이 얼마일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현재 세율이 적정 세율 밑이라면 증세를 통한 현 정부의 재정정책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대로 적정 세율보다 높으면 단기적으로 경기 둔화, 중·장기적으로 세수 감소 등과 같은 후폭풍이 의외로 클 가능성이 높다.


◆‘질서 있는 조정’ 유도해 나가야

벌써부터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에 이어 또다시 위기를 겪는다면 ‘부동산발(發) 잃어버린 10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거품 문제로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한국 경제에서 이 우려가 나오는 것은 부동산 거품의 형성 과정이나 거품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대응이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이 심하다. 주택 가격의 적정선을 평가하는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 주택수익비율(PR)이 1990년대 일본처럼 고평가된 것으로 나온다. 거품 정도도 일본의 경우 정점기에 주택 총액 비율이 GDP의 3배까지 급등했다. 작년 말 기준으로 한국도 2.3배에 도달했다.

부동산 거품이 형성된 원인도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高)에 따른 경기 둔화 효과를 우려해 경기가 활황일 때 저금리 정책을 추진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요인 분석을 통해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원인을 따져보면 60% 이상이 저금리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 대응도 종부세·보유세·양도세 등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을 대폭 올린 것도 일본과 유사하다. 한국 경기가 현 정부의 핵심 경제 각료 사이에 ‘침체’ 논쟁이 가열될 만큼 악화되는데도 작년 11월에 이어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이 꾸준히 거론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보다 더 우려되는 점도 있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발생한 주체가 토지와 중소 부동산업자가 중심이 됐지만 한국은 주택과 가계다. 한국의 가계 부채는 7대 취약국으로 분류될 만큼 많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가계 부채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 대비 가계 부채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벗어난 정도)’은 ‘주의’ 단계다.

경기에 미치는 충격이 일본보다 크게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주택 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 변화 탄력성은 0.1 내외로 1990년대 당시 일본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 국민의 주요 거주 수단인 아파트 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 변화 탄력성은 0.23으로 일본보다 높다. 특히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때 경기 둔화에 미치는 역(逆)자산 효과가 크게 나온다.

부동산 등 경기 대책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경기에 부담을 주지 않게 ‘질서 있는 조정’을 유도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시장 패닉에 대비해 다양한 완충장치를 마련하는데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정부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증세와 금리 인상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 비즈니스 제 1181호(2018.07.16 ~ 2018.07.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