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순위 근저당권 설정해 세입자에게 가격 하락 부담 떠넘기는 수법 많아
세입자 울리는 ‘사기성 갭 투자’ 주의보
[한경비즈니스=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변호사] 세입자 임대차 보증금과 임대차 목적물의 시가 차이가 근소하다는 점을 이용해 그 차액 상당의 소액 투자금 정도만으로 부동산을 매수한 후 향후 부동산 시세 상승의 기회를 노리는 투자를 통상 ‘갭 투자’라고 부른다.


이런 갭 투자는 거액의 부동산을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어 임대차 보증금과 시가 차이가 적은 주거용 건물이 투자 대상의 물망에 오르게 된다.



한때 부동산, 특히 주거용 건물의 가격 상승에 편승해 갭 투자가 성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꺾이면서 갭 투자로 인한 세입자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갭 투자를 목적으로 한 사람이 매수한 수도권 아파트 수십 채가 한꺼번에 경매로 나왔다는 얘기도 나왔다.


◆수익에 가려진 갭 투자의 두 얼굴


향후 시세가 상승할 것이라는 막연하고 순진한 기대만으로 시세가 하락할 때 어떻게 세입자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을지조차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투자를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또 시세 하락을 대비해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의도로 미리 치밀한 대책까지 세우고 투자하는 부도덕한 사람도 있다. 후자라면 시세 하락이 개인적인 투자 실패의 문제를 넘어 ‘사기’라는 타인에 대한 범죄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최근 필자는 이런 갭 투자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세입자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임대인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세입자 보증금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안되면 소액 투자금만 손해 보면 그만’이라는 막무가내 식 투자를 근절하는 차원에서 고소 내용을 소개한다.


고소인은 2017년 6월 신축 빌라 특정호실의 소유자인 정 모 씨와 임대차 보증금 2억340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입주를 앞두고 갑자기 해당 임대차 목적물의 소유권이 매매대금 2억4000만원에 장 모 씨 앞으로 이전된다.


임대차 승계를 믿고 당시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입주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장 씨에게 연락하는 과정에서 해당 임대차 목적물이 갭 투자 대상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집주인 장 씨는 보증금을 자진해 반환할 의사가 전혀 없었고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근저당권자를 박 모 씨로 하는 채권 최고액 1억9500만원의 후순위 근저당권까지 설정돼 있어 가뜩이나 집 시세가 기존 보증금인 2억3400만원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후순위 저당권 때문에 다른 세입자 구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장 씨는 위 임대차 목적물뿐만 아니라 다른 빌라호실에도 동일한 수법으로 갭 투자를 하고 있었다. 다른 빌라호실 역시 돈 한 푼 없이 기존 임대차 보증금만 끼고 부동산을 매수한 후 후순위 저당권을 설정했다. 게다가 가압류 등재까지 되면서 채무 관계를 복잡하게 보이려고 한 점, 그 집 세입자 역시 보증금을 반환 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점 등이 고소인과 거의 유사했다.


최근 화제가 된 화성 동탄 사건은 아파트 57채를 갭 투자로 사들인 한 건물주의 물건이 대거 경매로 나오면서 세간에 알려진 사연이다. 대항력 있는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때문에 대부분 (잉여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경매 신청이 기각 또는 취하로 결론이 나면서 임차인들이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모두 비슷한 구조인 셈이다.


이런 갭 투자는 매매가와 전셋값 차이가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결과적으로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성공한 투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자금력 없는 건물주(임대인)는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게 돼 큰 실패로 이어지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애초부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채 그 집을 세입자에게 시세 이상에 떠넘기겠다는 의도로 갭 투자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장 씨의 투자 역시 애초에 임대차 보증금 반환을 이행할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었던 사기죄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


◆후순위 근저당권의 ‘속내’


한편 이 사건을 비롯한 많은 갭 투자는 세입자보다 후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아마도 그 목적은 향후 시세 하락으로 기존 세입자 보증금 정도의 세입자마저 구하기 어렵게 될 때를 대비한 것이다.


후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 두면 임대인의 복잡한 채무 문제로 인해 후순위 근저당 채무 변제가 어렵고 후순위 근저당권이 말소되지 못하면 다른 세입자 구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세입자들이 가지게 된다.


그래서 세입자가 손실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임대인으로부터 울며 겨자 먹기로 해당 임대차 목적물을 시세 이상의 금액으로 인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 때문에 후순위 근저당권은 이런 계산하에 임대인과 서로 공모한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 쉽게 말하긴 힘들지만 동탄 아파트도 전세 만료 기간이 다가오는 시점에 건물주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후순위 근저당권자의 신청으로 경매가 진행된 것인데, 선순위 임대차 보증금 때문에 경매 진행이 힘들 것이 충분히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일괄적으로 경매를 신청한 점은 바로 이런 노림수 때문으로 짐작된다.


결국 이와 같은 허위 후순위 근저당권 설정은 자신의 투자 실패에 따른 책임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기 위한 교묘한 술책일 수 있는데, 갭 투자의 사기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 자칫 자승자박이 될 수도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5호(2018.08.13 ~ 2018.08.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