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편기 투자전략⑤]
- ‘1세대 채권 전문가’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도 장기전 대비해야”
“미국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시작된 신흥국 위기, 쉽게 끝나지 않는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터키의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촉발된 ‘신흥국 위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강달러에 따른 글로벌 자금의 ‘머니 무브’가 지속되면서 전 세계 신흥시장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동반 추락했다. 코스피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8월 14일(2248.45)과 16일(2240.80) 연중 최저점을 두 번이나 갈아치웠다.

‘국내 채권 애널리스트 1세대’로 꼽히는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종종 ‘여의도 비관론자’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냉철하고 보수적인 시각으로 시장을 읽어내는 인물이다.

김 센터장은 “현재 신흥시장의 ‘3중고’가 되고 있는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와 강달러, 무역 분쟁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다”며 “미국의 헤게모니 싸움이 본격화된 만큼 한국도 장기전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미국 금리 인상·달러 강세·무역 분쟁 ‘3중고’

김 센터장은 지난 8월 9일 예금보험공사가 발간한 ‘금융리스크 리뷰’에 ‘미국 금리 인상 및 달러화 강세와 신흥국 위기’라는 글을 게재해 화제에 올랐다. 요지는 이렇다. 기축통화의 금리 인상은 그냥 ‘이자 좀 더 내는 정도’가 아니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문제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가 만날 때를 조심해야 한다. 신흥국의 자본 유출이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상황은 1980년대 초와 1990년대 중$후반에 두 번 반복됐는데 최근 같은 상황이 다시 만들어졌다.

김 센터장은 “중국과 멕시코를 비롯해 지난해 말부터는 일본과 한국도 경기가 둔화되기 시작했는데 미국만 나 홀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며 “보통 미국은 금리 인상 시기에 재정도 긴축을 거들었는데 이번에는 재정은 팽창, 금융은 긴축정책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궁이에 재정(재정 팽창)이라는 장작을 연신 밀어 넣으면서 방이 덥다고 에어컨(통화 긴축)을 튼 형국’이라고 지금의 상황을 묘사했다. 이미 과거에 이와 같은 패턴을 겪어 본 투자자들은 신흥국에서 돈을 빼려고 할 것이고 위기는 확산될 것이다.

최근 미국의 행보도 심각성을 더한다.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도는 단순히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상위의 목표인 ‘글로벌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100년간 글로벌 헤게모니 국가로 군림해 왔다”며 “중국의 첨단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막아 장차 중국이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차단하는 것이 이 싸움을 시작한 미국의 의도”라고 말했다. 단순한 경제문제를 넘어 ‘패권’과 맞물린 문제인 만큼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고래 싸움에 한국의 ‘새우등’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선거에 당선되기 전부터 중국과의 헤게모니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반면 중국은 아직까지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면으로 맞서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김 센터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시장의 주가가 떨어질 때 같이 주가가 하락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며 “현재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수출액 가운데 중국은 올해 1~7월 26.7%를 차지한다. 단일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김 센터장은 “그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전 세계에 거래처를 개척해 왔는데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그 구조가 달라졌다”며 “우리는 중간재 형태로 부품을 넘기면 중국이 완제품을 조립해 미국 등 세계시장에 파는 형태가 되면서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 최저임금 인상 성공하려면 ‘경기 부양책’ 필요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주식시장에 또 다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국내 ‘가계 소득 부진’이다.

김 센터장은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된다면 한국 경제 또한 쌓아 둔 외화보유액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국내 경제의 내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 위기나 위험수위에 달한 가계 부채 논란 등이 불거지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저성장$고령화$사회불평등 등 한국 경제가 가진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김 센터장은 “사실 국내총생산(GDP)이나 이런 지표들만 보면 한국 경제가 큰 위기 상황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 더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소득 하위 계층이 무너지면서 경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 부채와 소득 양극화 등이 맞물리면서 ‘소득 상위 계층’의 경제와 ‘소득 하위 계층’의 경제가 완전히 괴리되면서 내수가 무너지고 이것이 주식시장에도 상당히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가계 소득이 늘지 못한 원인을 ‘자영업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전체 고용에서 자영업의 비율은 25.5%에 달한다. 미국은 6.4%, 주요 선진국들도 10% 내외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기업 소득이 줄어들면서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계인 자영업자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가계인 자영업자에 고용된 취업자의 소득이 증가한다. 기업에서 가계로의 소득 이동이 아니라 가계 사이의 소득 이동 가능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좋은 처방이었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는 “현재 국내 주식시장은 반영될 수 있는 악재가 모두 반영되면서 바닥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며 “그렇다고 이 상황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의 상황만 놓고 보면 국내 주식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대내외 변수들이 모두 불거지면서 코스피도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오히려 이 기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위기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한국 경제는 속에서부터 서서히 곪아 갔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위기라면 이번 기회에 문제점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책을 찾아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물론 문제점들이 매우 근본적이고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처방 또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다”며 “다만 ‘근본적인 변화’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진행하는 것이고 이와 동시에 단기적인 관점에서 경기 부양책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미$중 무역 전쟁, 신흥국 위기와 관련해 어차피 지금처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다”며 “이번이 어쩌면 ‘중국에 대한 과한 의존도’를 떨쳐내고 균형을 잡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김 센터장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정부가 지금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최저임금을 인상과 같은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기 부양책이 뒤따라 줘야 한다. 현재 정치권이 이 문제와 관련해 타협점을 찾아 나가는 단계인 만큼 올가을 정도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다.

하반기 코스피 전망에 대해서는 “이미 반영될 수 있는 악재는 다 반영된 만큼 하단이 2200 선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다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에 상단은 2500 선으로 보고 있다”고 제시했다.

전반적으로 올해 하반기는 코스피가 바닥을 잡아가는 과정인 만, 투자자들에게는 ‘아주 큰 악재를 호재로 생각할 수 있는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두 나라의 경쟁이 격화된다면 인프라 투자가 불붙을 수 있다. 여기에 국내 내수 경기 부진의 문제가 끝난다면 건설과 같은 내수 관련주들이 먼저 살아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건설$산업재 등이 대표적인 수혜주가 될 수 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