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인사이드]
- EU, 리서치 비용 분리 청구 의무화…‘1~2개 리서치센터만 생존’ 구조조정 바람
‘미피드II가 뭐길래’…국내 증권사도 ‘긴장’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미피드(MiFID)II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영업 방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유럽연합(EU)에서 올 1월부터 금융 규제 개혁 방안인 금융상품투자지침(미피드)II가 본격 시행됐다. 유럽 내 은행과 자산 운용사, 연기금 등 금융회사들 외에도 유럽에 지사를 둔 해외 금융회사나 해외에 있는 유럽 금융회사까지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다. 여기에 향후 유럽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 등에서도 미피드II에 준하는 금융상품투자지침이 적용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 이 지침이 본격 시행되기 전부터 글로벌 금융업계로부터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이유다.

미피드II 도입이 6개월을 넘어서면서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국내 증권업계도 이에 따른 금융시장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도대체 ‘미피드II’는 무엇이고 국내 금융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킨다는 것일까.

◆PT·면담도 건별로 비용 지불해야

미피드(Markets in Financial Instruments Directive)는 EU가 2007년 도입한 일종의 ‘금융상품투자지침’이다. 미피드는 EU 내 금융 서비스의 장벽 해소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입됐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수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EU집행위는 2011년 ‘미피드II’의 제정을 공식화했다. 올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까지 장장 8년에 걸쳐 준비한 규제 개혁 방안으로, 그 분량만 1만 페이지가 넘을 정도다.

미피드II는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시장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규제를 받게 되는 금융 상품의 범위가 확대되고 규제에서 제외됐던 장외거래 보고 의무가 강화되는 등 광범위한 규제들이 EU 금융업계 전반에 적용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리서치 보수의 분리’ 이슈다. 쉽게 말해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작성하는 리서치 보고서를 이용하려면 자산 운용사와 같은 기관투자가들이 유료로 그 가격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소속된 애널리스트들은 개별 투자 종목은 물론이고 경제 전반이나 업종 등 금융시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전문적인 투자 의견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의 가장 큰 고객은 기관투자가들이다. 자산운용사·연기금 등의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은 언제든지 다수의 리서치 보고서를 살펴보거나 애널리스트들에게 면담을 요청할 수 있다. 이는 유럽의 펀드매니저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펀드매니저들이 리서치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했다는 것은 아니다. 기관투자가들은 리포트를 쓴 애널리스트가 소속된 증권사를 통해 금융자산을 거래한다. 즉 기관투자가들이 지불한 ‘거래 수수료’에 애널리스트의 리서치 서비스 비용이 포함돼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난 1월 이후 유럽의 펀드매니저들이 애널리스트들에게 면담을 요청하거나 보고서를 받아 읽고 싶다면 이에 대한 비용을 별도로 지급하도록 바뀐 것이다.

이는 자산운용사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에게 ‘비용 증가’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실제 영국의 자산운용사 야누스헨더슨(운용자산 3710억 달러)은 연간 리서치 비용을 1900만 달러(약 202억원)로 추정했고 세계 최대의 대체투자회사인 맨그룹(운용 자산 1090억 달러)도 미피드II 비용으로 1500만 달러(약 166억원)를 책정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관투자가들은 예전처럼 복수의 리서치센터나 애널리스트를 활용하기가 어려워진 만큼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리서치센터나 애널리스트에게 보고서 구매나 면담 요청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대규모의 자금력을 갖춘 자산 운용사는 리서치 인력을 채용함으로써 비용을 내부적으로 흡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증권사들 ‘부익부 빈익빈’ 심화되나

미피드II의 영향으로 대형 증권사들은 더 유리한 입지를 갖출 수 있게 된다. 리서치 서비스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뚜렷한 색깔을 갖추지 못한 중소형 증권사들에는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1월 일본 최대 투자은행인 노무라홀딩스는 미피드II의 도입 영향으로 유럽에서의 리서치 서비스를 중단한데 이어 미국에서도 리서치 서비스의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공경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아직은 미피드II가 적용된 초기 단계여서 글로벌 은행들도 준비가 미흡한 실정”이라며 “이는 국내 증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향후 미피드II의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이와 관련한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당장 해외 운용사와 접점을 넓히면서 해외 브로커리지 서비스를 제공해 오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특히 유럽의 펀드매니저가 국내 기업에 투자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불러 별도의 프레젠테이션이나 면담을 요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각 증권사마다 건별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다 펀드매니저 본인이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증권사가 유럽의 자산 운용사 펀드매니저에게 e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 때문에 최근 해외 법인들에 광범위하게 리서치 자료를 보내던 것 또한 ‘불법’이 될 수 있는 만큼 펀드매니저들의 리스트를 재정비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무엇보다 이런 변화는 유럽의 금융회사들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국내 증권사들을 긴장하게 하는 부분이다. 당장은 미피드II가 유럽 내 금융회사나 이들과 거래하는 증권사에만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최근의 투자는 유럽·미국·아시아로 자금이 계속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럽 시장만 따로 놓고 관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글로벌 투자은행들 대부분은 EU의 미피드II 시행을 계기로 유럽 외의 지역에서도 같은 지침을 적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국내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유럽 기관들뿐만 아니라 해외 브로커리지, 리서치 영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해외 기관에 리서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등이다. 현재도 대형사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앞으로는 이 중에서도 1~2개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자산 운용사들로서는 투자 금액이 크지 않은 한국 시장에 굳이 다수의 증권사 리서치센터를 이용하기보다 1~2개의 리서치센터만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증권사들 간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증권사들은 지금이 고품질의 리서치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이지만 자칫하면 리서치 시장 자체를 뺏길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며 “아직까지는 걱정했던 것보다 초기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경쟁이 심화될 수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8호(2018.09.03 ~ 2018.09.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