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근로 의욕 꺾이지 않게 세제 혜택 활용…최저임금 인상보다 일자리가 더 중요
소득 주도 성장, 워런 버핏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나라 안팎으로 정세가 복잡하다. 끝이 없는 미·중 간 무역 마찰, 신흥국 금융위기 조짐, 평가가 엇갈리는 남북 관계, 소득 주도 성장 논쟁,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동산 대책 등.

미국에서는 앞이 안 보일수록 정치·군사·외교 현안은 헨리 키신저, 경제 현안에 대해서는 워런 버핏에게 혜안을 구한다고 한다.


◆미 이끄는 두 명의 구루, 키신저와 버핏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구루, 가치투자의 전설 등 버핏을 칭하는 용어는 많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금융위기 이후에는 ‘박애주의자’라는 칭호가 자주 들린다는 점이다. 올해 기부액만 하더라도 3조8000억원에 달한다. 기부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은 피한다. 쓸데없는 오해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순수한 기부 정신을 살리겠다는 의지에서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현안에 대해 버핏의 혜안과 조언이 절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많은 ‘성장’과 ‘분배’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느냐에 대한 버핏의 선택은 전자다.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주체가 자본주의 정신과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을 기할 수 있도록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장 과정에서 불기파한 계층 간 소득불균형은 세제 정책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초점이 다르다. 고소득층에게서 걷은 세금을 저소득층에게 단순히 이전시키기보다는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릴 수 있는 세제 혜택 재원으로 활용해야 근로 의욕이 꺾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을 버핏의 시각대로 재조정해 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은 ‘상대소득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저소득층 소비성향은 고소득층보다 높아 세율 인상 등을 통해 고소득층 소득을 저소득층에게 이전시키면 소비가 증가해 성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버핏의 시각은 미국 경제정책 곳곳에 배어 있다.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성장 국면을 구가하고 있다. 핵심 성장 동력은 기업을 중시하는 정책이다.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했던 ‘리쇼오링’ 정책을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더 강화해 추진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지우기에 일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다른 정책과는 대조적이다.

리쇼오링의 핵심 수단은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다. 특히 법인세의 경우 35%에서 21%로 기업이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대폭 내렸다. 이마저 올해 안에 20%로 추가 인하 방안을 발표했다. 미래 국부를 책임질 4차 산업혁명의 경우 정부가 간섭을 안 하는 ‘규제 프리 존’을 설정해 전폭 지원해 주고 있다. 소비의 주체인 개인에게도 원칙은 근로 의욕 제고다.

경제정책 차이는 그대로 성과로 연결된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지난 2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 기준으로 미국은 4.2%, 한국은 2.5%다. 1980년 2차 오일쇼크, 1998년 외환위기 직후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도 한국과 미국 간 성장률이 역전된 것은 이례적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버핏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근로자에게 더 필요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일자리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윤 추구’라는 기업 생존의 본질상 생산성을 외면한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 근로자일수록 일자리 상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버핏의 이런 주장을 통계적으로 입증해 주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국회 예산처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은 16.4% 인상됐다. 최근 5년간 평균 인상폭 7.4%를 2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지만 올해 1∼2분기 저소득층 소득(하위 20% 계층)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8.0%·7.6% 감소했다. 저소득층 일자리 상실이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더 깊은 나락이냐, 또 다른 기회냐


버핏의 시각대로라면 국내 증시는 과연 어떻게 될까. 주가를 예측하는 데 있어 그가 가장 신뢰한다는 이론이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일명 버핏·소로스 가설)’이다. 이 가설은 경기와 투자자 심리와의 관계를 설명한 이론으로 증시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어떤 국가의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이때 주가는 실제 경제 여건보다 더 낮게 형성된다. 경기 침체로 투자 심리가 ‘비관’ 쪽으로 쏠리면서 보유 주식을 대거 내다팔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로 본다면 세계 3대 평가사 가운데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사가 우리 신용등급을 한 단계 상향 조정한 2016년 8월 이전까지 기간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투자자 사이에 경기가 개선되고 있다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한다. 점차 투자 심리도 ‘낙관’ 쪽으로 옮겨 오면서 주가 상승 속도가 경제 여건 개선 속도보다 빨라지는 1차 상승기를 맞는다. 코스피 지수가 2016년 9월 이후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2600선에 바짝 다가섰던 작년 상반기까지 기간이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주가 상승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낙관’ 쪽으로 몰렸던 투자자의 쏠림 현상이 흐트러져 1차 조정 국면을 맞게 된다. 작년 하반기 들어 대부분 국내 증권사가 ‘대세 상승론’을 외쳤으나 그 후 코스피 지수는 오히려 2300선 밑으로 떨어졌다.

이때 경기와 기업 실적이 뒤따라오느냐가 중요하다. 경기와 기업 실적이 받쳐 주면 투자 심리가 재차 ‘낙관’ 쪽으로 쏠리면서 주가는 1차 상승기보다 더 오르는 2차 상승기(일명 대세 상승기)를 맞게 된다. 반대로 악화되면 투자 심리가 ‘비관’ 쪽으로 쏠리면서 주가는 경제 여건보다 더 떨어지는 과잉 조정 국면을 맞는다.

관건은 우리 경기와 기업 실적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작년 성장률이 3%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올해 2분기 이후 성장세가 크게 둔화됐다. 2016년 11월 이후 한국 증시를 이끌었던 수출과 경기, 주가 간 선순환 관계도 원화 강세, 미국의 무역 제제 등으로 흐트러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기업 실적도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다.

올해 들어서는 후발 기업이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발 기업의 실적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외국인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 방침이 알려지면서 저평가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 증시에 대한 해외 시각도 흐트러질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 증시가 지금보다 ‘더 깊은 나락(ice age)’으로 빠지느냐와 ‘또 다른 기회(ice breaking)’를 만들어 내느냐는 문재인 정부의 증시 정책과 이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대내외 예측기관과 외국인은 한국 경기와 증시 정책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