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달러의 가치와 연동된 가격이 특징…
-비트코인과 대립적 아닌 보완적 관계로 성장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연구소장, ‘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비트코인이 침체에 빠졌다고 한다. 비트코인은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확장돼 왔지만 폭등과 폭락은 짧은 시간에 마무리되므로 대부분의 기간은 침체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암호화폐 가격 침체와는 대조적으로 블록체인은 꾸준하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블록체인에 의한 글로벌 공급 사슬망 혁신이 임박했다.

IBM이 주도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에 월마트와 네슬레 등 세계적인 식품 유통회사들이 합류하고 있다. 지난 9월 월마트는 식품 안전을 위해 IBM의 블록체인을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월마트와 샘스클럽은 2019년부터 상추나 시금치 등 녹색 채소를 IBM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추적한다. 농장에서 마트까지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살피겠다는 것이다. 월마트는 2016년부터 IBM과 협력해 블록체인의 식품 유통 추적 능력을 시험해 왔다. 7일 걸리던 망고 추적이 2, 3초 만에 끝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통해 식중독 확산을 방지할 수 있고 불량 식품 공급에 뒤따르는 법적·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공정무역이나 식량 원조와 같은 인도적인 활동도 글로벌 공급 사슬망의 한 부분이다. 영국의 대표적 식료품 체인점 세인즈베리와 유럽 최대의 소비재 업체인 유니레버는 ‘말라위 농부들을 돕는 방법’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농부들에게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농법으로 차를 생산, 가공하는 방법을 교육한 후 체계적으로 생산된 차를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하게 유통하면 소비자들에게 프리미엄 가격에 공급하면서 농부들의 소득도 올릴 수 있다.

유엔도 인도주의적 프로젝트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유엔 산하기관인 세계식량계획(WFP)은 중동의 시리아 캠프에서 사용했던 블록체인 기술을 동부 아프리카 지역의 식량 지원에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원조 식량이 들어오는 디지부티항구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운반되고 전달되는 과정을 블록체인을 통해 모니터링할 수 있다. WFP는 요르단 자타리와 아즈락 난민캠프에서 블록체인을 시험적으로 활용해 왔다. 유엔여성기구는 WFP와 함께 유엔여성노동자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리아 여성들에게 블록체인을 활용해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월 4만 달러의 송금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글로벌 공급망 혁신 이끄는 블록체인

블록체인이 공급 사슬망 관리에 혁신을 부여할 수 있는 이유는 기존에 풀리지 않던 신뢰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공급 사슬망 관리에서 핵심 문제인 데이터 가시성, 프로세스 최적화, 수요 예측과 생산, 재고 관리 문제를 기술적으로만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비리지드 멕도메트 IBM 블록체인 사업부 부회장에 따르면 지구 공급 사슬망이라는 거대한 그림에서 하나 빠져 있던 퍼즐이 바로 신뢰이며 블록체인이 바로 그 신뢰를 제공하기 때문에 미완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급 사슬망은 조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소수 일탈자들의 탐욕만으로도 심각한 위험이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1년에 40만 명 정도가 가짜 식품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다. 원산지 확인은 물론이고 유통 중 발생하는 문제들 그리고 소비자의 갑작스러운 주문 취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위험들이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투명성과 상호 감시라는 도구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

문제는 블록체인 기반의 글로벌 공급 사슬망에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의 역할이다. 공급 사슬망에서는 결제 수단이 중요하다. 비트코인 가격은 요동치기로 악명 높다. 비트코인이 사용되면 물건을 주문할 때와 인도받을 때의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달러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코인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유통된다면 물류와 금융이 통합된 네트워크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달러와 연동된 암호화폐에 대한 시도가 지속돼 왔다. 최근에는 골드만삭스가 투자한 서클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스테이블 코인의 한계는 달러와 연동돼야 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가격을 달러에 고정하기 위해 누군가가 일대일 교환을 보장해야 한다. 비트코인은 총발행량과 발행 속도가 정해져 있다.



‘교환 보장’하는 기관이 필수

하지만 달러와 연동된 코인의 발행량은 고정할 수 없다. 만약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량이 고정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공유된다면 그때부터 달러와 다른 가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달러의 유통량이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사 달러의 발행량이 고정된다고 하더라도 두 화폐와의 교환 비율을 보장해 줄 기구가 환율 공격을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의 시대가 다가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 한 인류에게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암호화폐가 주어져 있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가격이 고정돼 있고 정부의 환율 조작에 노출된 화폐와 발행량이 고정돼 있지만 가격이 수시로 변하는 화폐다. 환율 변동 위험이 낮으면 달러 연동 코인이 글로벌 공급 사슬망에서 더 유력한 결제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율 변동 위험이 높아지거나 혹은 환율 변동과 상관없이 달러 연동 코인에 접근하기 어려운 생산자나 소비자들에게는 비트코인이 신뢰의 최후 보루가 될 가능성이 높다. 10년 동안이나 건재한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폄하하기보다 이 두 가지 전자화폐들이 상호 간에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할지 고민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삼진어묵과 삼성SDS가 시범 운영 중인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유통 이력 관리 시스템.


[돋보기] 1등 스테이블 코인 ‘테더’를 둘러싼 음모론

지난 2월 열렸던 암호화폐 관련 미국 상원 청문회는 테더(Tether) 청문회라고도 불렸다.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FTC)가 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테더와 비트피넥스에 소환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시장에는 테더 음모론이 비등했다. 2017년 말의 가격 폭등이 테더를 활용한 작전 세력의 작품이었다는 내용이다.

테더의 테더코인(USDT)은 달러와 일대일로 교환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테더는 원래 리얼코인(Realcoi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아무도 지불을 보증하지 않는 비트코인의 단점을 해결하려는 이들이 현물 자산에 고정된 암호화폐를 만들기 위해 시도해 왔는데 각기 다른 기원을 갖는 몇 개의 프로젝트가 테더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2018년 9월 28억 달러 규모의 테더가 유통되고 있고 암호화폐 전체 시장 규모로 8위다. 어떤 정부도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테더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지만 루이스 프리 미국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이 설립한 법률 회사 FSS는 테더가 발행량 만큼의 달러 잔액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인해 줬다. 이더리움의 공동 창시자인 조셉 루빈도 테더에 대해 신뢰한다고 말했다.

존 그리핀 텍사스대 교수는 지난 6월 테더가 시세조작을 통해 지난해 12월 비트코인 가격을 2만 달러 가까이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퀸즐랜드 경영대학원의 왕춘웨이 박사는 논문을 통해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과 테더와의 교환 비율 간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3호(2018.10.08 ~ 2018.10.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