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무형자산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져…‘성장과 가치는 일심동체’

[한경비즈니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미국의 국채 10년 금리가 치솟고 미국 성장주의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투자자들의 오래된 논쟁 중 하나가 재부상하고 있다. ‘가치주와 성장주’를 둘러싼 투자 스타일 논쟁이다.

한국 증시를 예로 들면 미디어와 플랫폼과 같은 주가수익률(PER)이 높은 주식은 정점을 지났고 조선과 은행 같은 주가순자산배율(PBR)이 높은 주식이 주가 금리 상승기의 주역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에도 그럴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성장과 가치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법

먼저 스타일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출발하자. 스타일의 범주는 둘이 아닌 셋, 아니 그 이상으로 나뉠 수 있다. 가치 스타일만 하더라도 저PER·저PBR·배당수익률·역발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성장형도 이익 모멘텀, 지속 성장 등으로 세분화된다.

성장과 가치 스타일의 상대 성과로 시기적 우위를 설명하지만 스타일 자체의 분류가 자의적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어보자. 성장주 투자자는 3분기 실적 이후 피크아웃(peak-out : 정점에 이르러 하강 기미를 보임)하는 삼성전자를 줄이겠지만 가치주 투자자는 PER 6배에 불과한 삼성전자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삼성전자는 가치주일까, 성장주일까.

좀 더 명확하게 분류하기 위해 순수한 성장과 가치로 단순화해 보자. 성장은 과거, 가치는 미래가 초점이다. 투자 그루의 스타일을 예로 들면 성장은 필립 피셔, 가치는 벤저민 그레이엄이 필수 교과서일 것이다.

성장주 투자자는 비즈니스 모델, 신기술 등의 성장 드라이브를 반영한 급등주 또는 인기주를 찾는 질적인 접근을 선호한다. 하지만 가치주 투자자는 시장에 휘둘리기보다 숫자와 밸류에이션에 집중하는 정량적 접근에 집중한다.
금리 인상기, ‘가치주 투자’가 항상 정답일까?
하지만 주가가 상승하면 이익 전망치를 비켜 가는 성장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반면 파이가 작아지는 산업에서의 주가 하락은 가치 함정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두 접근법의 일장일단을 인지한 이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다. 그는 스스로를 1969년 ‘85%의 그레이엄과 15%의 피셔’라고 묘사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버핏 회장은 성장하는 산업에서 상대적 가치주를 찾고 있을 뿐이다.

투자 전략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금리가 하락하는 불황 구간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낮은 성장률을 보이므로 성장률 있는 기업이 프리미엄을 받으며 인기주 열풍에 휩싸인다. 반면 금리가 상승하면 성장주는 할인율에 대한 부담이 커짐에 따라 성장 기업의 희소성이 사라지며 투자의 온기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가치 함정에서 벗어난 턴어라운드 기업이 시장 전면에 부상하는 가치주 우위 국면이 바로 금리 상승기에 출현하는 이유다.

예금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예금 금리가 내려가면 돈을 더 아껴야 한다. 이자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해 줄 곳이 마땅하지 않고 예금자도 낮은 금리를 수용한다. 반면 경기가 살아나면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금리는 올라간다. 예금자는 이전보다 더 적은 예금으로도 동일한 이자 수입을 얻는다.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이 돌아가면 금리가 상승하는 경기 확장기다. 이때 가치주는 성장주를 압도할 수 있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 대출자는 고민이다. 돈을 빌려와 금리 이상의 돈을 벌면 문제는 없다. 은행이 안전한 예금을 위험한 대출로 전환해 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게 금리다. 은행이 돈을 돌려받는 게 문제가 없다면 금리에 위험 프리미엄을 더한 만큼 더 올라가도 별문제는 없다. 돈을 빌려 위험을 부담해도 보상이 가능한 구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 상승 이상의 보상이 따르지 않고 제때 이자를 갚지 않아도 금리는 올라간다. 신용 경색은 그때 출현한다.

결국 금리가 상승한다고 해서 가치주 우위 국면이 뒤따르는 게 아니라 수요가 뒷받침되는 인플레이션기의 금리 상승이 전제될 때 가치주 우위 국면이 출현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반영되는 구간에서 이익이 늘어날 때 기업은 사업을 확장하고 인수·합병(M&A)하고 더 고용하고 투자한다. 이에 따라 경기가 호황을 이루는데, 이는 기업가의 ‘화폐환상’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2004년 이후 금리가 상승하는 구간에는 가치주, 2012년 이후 마이너스 금리의 공포 구간에서 성장주가 강세를 기록했다. 2004년 이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기업가들의 과잉투자로 연결됐다. 한국의 조선과 건설이 이에 해당된다. 중국으로 대표되는 이머징 시장의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고 실제 투자자가 앞서가면서 자본재 주문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반면 2012년 이후는 현재의 안정적인 현금 가치가 최우선인 디플레이션 국면이었다. 소수의 성장 기업에 대해 아무리 밸류에이션이 부담돼도 투자가 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변화하는 자본의 성격, 투자도 달라져야

금리가 낮다고 투자가 늘지는 않는다. 금리가 상승하면서 실제 투자 관련 지표들이 상승해야 한다. 현재의 현금 가치보다 미래의 현금 가치가 보다 중요해지는 인플레이션 기대가 반영되는 구간은 바로 그때다.

한국의 9월 소비자물가는 8월 1.4%에서 0.5%포인트 오른 1.9%다. 물가 목표치(2%)에 근접해 있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를 감안하면 10월과 11월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은행주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주 스타일의 성과가 성장주 스타일을 9월 이후 앞서간 배경이다.

하지만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실행되고 난 뒤 금리 인상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적정 금리가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의 합이라고 할 때 성장률이 아무리 떨어져도 2.5%로, 전년 누계비 물가를 1.5%로 봐도 적정 금리 수준은 4%가 될 것이다. 한국은행이 부동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과잉 유동성 회수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목표는 경기 조절이 아닌 물가 안정이다.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8월 0.9%에서 1.2%로 반등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농산물과 유가에 따른 공급 요인을 빼고 보면 인플레이션 기대는 뚜렷하지 않다. 추세적 상승기에 들어선 징후는 전혀 없다. 여전히 예금자들은 금고에 돈을 쌓아 두고 기업들도 투자보다 유보를 선택한다.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은 여전히 기대난이고 단지 날씨에 따른 농산물 가격 그리고 수급 이슈에 따른 유가 상승이 물가를 자극할 뿐이다.
금리 인상기, ‘가치주 투자’가 항상 정답일까?
2019년 한국의 성장률이 2.5% 전후까지 감속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국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부작용을 감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연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난 뒤 은행주로 대표되는 가치주 우위 국면은 진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구조적 변화도 반영해야 한다. 미국에서 그 징후를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49년 최저치까지 하락하고 시간당 평균임금 역시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경기 호황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이를 반영한 듯 9월 이후 성장주의 높은 밸류에이션 부담이 가격 조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실질금리가 상승하는 구간에서 성장 대비 가치 스타일의 우위 국면이 뚜렷하지 않았다. 금리와 물가 레벨 자체가 낮았기 때문에 시장이 성장주의 고밸류에이션을 용납해 온 것이다. 3%대 초반 금리를 견뎠고 이제 3.5% 전후를 테스트하는 구간에 들어섰을 뿐이다.

미래로 가는 길은 이제 유형자산이 아닌 무형자산이 주도하는 경제다. 네트워크의 확장은 물가 안정을 부산물로 가져온다. 이제 경제 생태계는 땅도 설비도 아닌 네트워크이고 수확 체감이 아닌 수확 체증이 지배한다. 자본의 성격이 변화하고 투자도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 금리 인상기의 모습도 이전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형자산의 확장성은 거대한 고수익 기업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고 이제 점점 더 주변 산업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버핏 회장은 성장주를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담지 않았었다. 그런데 2016년 이후 애플을 사들였고 2017년 아마존에 투자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고 고백한다. 성장하는 산업 내의 상대적인 가치주를 사야 한다. 투자는 미래의 대상화를 통해 미래를 사전에 소유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반영할 뿐이다. 버핏 회장의 말이 떠오른다.

“성장과 가치는 일심동체다(Value and growth are joined at the hip).”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