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 부실시공은 줄어드는 반면 분양가 상승은 불가피
후분양제, 소비자에게 ‘득’일까 ‘독’일까
[아기곰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백화점에서 옷을 하나 사는데도 이것저것 꼼꼼히 살펴보고 다른 매장 옷과도 비교해 보고 산다. 그런데 수억원이나 되는 아파트를 살 때는 집이 다 지어지지 않은 단계에서 그 집을 살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마치 마네킹에 걸려 있는 옷만 보고 선금을 지불해야 옷을 만들어 가져다주는 것과 같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선분양은 나쁜 것이고 후분양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면 후분양제가 실수요자에게 진짜 유리한지 알아보자.

◆ 대금 지급 시기에 나뉘는 분양 제도

선분양제와 후분양제는 의사결정 시기와 대금 지급 시기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다시 말해 매수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가 집이 지어지기 전인지 후인지에 대한 이슈와 그 대금을 지급하는 시기가 선금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후불로 지급해도 되는지에 대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현 제도는 선분양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의사결정 시기가 집이 지어지기 훨씬 이전이기 때문이다. 반면 대금을 미리 다 주는 것은 아니고 계약금만 내고 중도금과 잔금은 공사 일정에 따라 분할 지급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면 다른 나라에는 선분양 제도가 없을까. 미국도 선분양 제도를 택하고 있다. 미국은 매매용으로 거래되는 주택은 단독주택이 주류이므로 하나의 평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단지(커뮤니티)를 분양하면 평형별로 몇 개의 평면을 만들어 놓고 그중에서 선택해 계약하는 형태다. 다만 계약금이라는 것이 상징적인 수준으로 낮은 편이고 중도금도 없다. 집이 다 지어지면 집값의 대부분을 잔금으로 지불하고 입주하면 된다.

미국에서 집을 살 때는 대부분이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집이 다 지어져야만 대출이 나오기 때문이다(LTV 85% 정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 주택 시장은 의사결정 측면에서는 선분양 제도지만 대금 지불 측면에서는 후분양제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선분양제가 좋은지 후분양제가 좋은지를 따져보는 것은 의사결정 시기와 대금 지급 시기라는 측면에서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실수요자) 측면에서 가장 좋은 것은 집이 다 지어진 후 꼼꼼히 살펴보고 그 집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정하는 것이 가장 좋고 대금도 그 후 지급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런 것은 지금도 있다. 기존에 다른 사람이 분양 받아 살던 집을 사면된다.

본인이 원하는 단지에서 나온 매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매물을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양을 선호하는 이유는 새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것과 기존 아파트보다 싸게 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를 공급하는 건설사 또는 분양사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다 지어 제값에 팔면 더 이익일 것을 왜 기존 아파트 값보다 싸게 팔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공사 기간 중 금융비용 때문이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우선 땅을 사야 한다. 그리고 시멘트나 철근 등 자재를 사야 되고 그것을 짓는데 들어가는 인건비도 필요하다. 1000가구가 되는 단지라면 수천 억원의 자금이 있어야 겨우 한 개 단지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돈을 금융회사에서 빌려 짓는다면 당연히 금융비용이 발생된다. 하지만 이를 매수자에게 중간중간 받는다면 그 금융비용만큼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둘째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아파트는 보통 인허가부터 입주까지 3년 정도 기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 경제적 변동이 있거나 나중에 다 지어진 아파트가 팔려 나가지 않는다면 그 리스크는 고스란히 건설사의 몫이 된다.

개인은 한 채에 해당하지만 건설사는 수백~수천 채에 해당하므로 이를 견딜 수 있는 회사는 없다. 물론 잘 지어 놓으면 미분양되지 않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나가는 반포자이도 처음 입주 때는 미분양이 났던 단지다.

건설을 결정하는 시기에 경기가 좋았지만 완공되는 시기에 경기가 급랭한다면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리스크를 떠안지 않는 대신 기존 집값보다 가격을 싸게 공급하는 것이다.

발주부터 인도까지 오래 시간이 걸리는 항공기나 선박 건조에 대금의 일부를 미리 지급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 금융비용 더해질 후분양

만약 100% 후분양 제도가 정착된다면 분양 제도 자체가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 아파트에 붙는 프리미엄 자체는 분양사가 당연히 취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금을 대주는 부동산 리츠 제도가 활성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기존 실수요자가 취했던 새 아파트 프리미엄을 부동산 리츠사와 건설사가 공유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에서 이를 법으로 금지하면 어찌 될까. 다시 말해 후분양을 하더라도 이익을 건설사나 리츠 회사가 취하지 못하게 하고 실수요자에게 돌아가게 법을 만들면 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새 아파트를 공급하는 건설사는 없을 것이다. 건설사끼리 담합해 공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공사 대금을 대줄 회사를 찾지 못해 건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주택보증공사 등에서 지급보증을 해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건설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분양이 실패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채워야 한다. 결국 국민의 혈세로 분양 받는 사람의 이익을 챙겨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에서도 후분양 제도 도입에 미온적이다. 정부에서 추진한다는 후분양 제도는 실수요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공정률이 60%만 넘으면 후분양으로 정의하고 있다.

공정률 60%라는 것은 건물의 구조물까지만 완성된 단계다. 마감재는 물론 자기 집을 보러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지 않은 상태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떤 시멘트를 썼고 철근은 어디 것을 썼는지가 아니다.

그런 것은 감리 기관에서 당연히 잘 알아서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일반인이 궁금해 하는 것은 마감재가 잘 처리돼 들뜬 곳이 없는지, 방문은 제대로 잘 닫히는지, 결로가 생기는 곳은 없는 지와 같이 다 지어진 이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후분양제와 국민이 원하는 후분양제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분양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에 앞서 국민과 정부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선결과제다. 제도 시행에 앞서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와 후분양 제도의 장단점을 명확히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의 이해를 먼저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7호(2018.11.05 ~ 2018.11.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