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2011년 이전 ‘잠긴 주소’ 20~30%에 달해…언젠가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도
암호화폐의 진짜 위험 ‘잃어버린 비트코인’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 연구소장, '스마트 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비트코인은 ‘부조리한’ 현상이다. 권위가 없는 민간인들이 세계 화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금처럼 반짝이는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웬만한 주식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이 1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면 상식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한번쯤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트코인은 부조리하다기보다 낯설고 난해한 현상이다.

미국 재무부는 11월 28일 이란 해커의 랜섬웨어(협박 갈취 : ransomware)와 관련된 두 개의 비트코인 주소를 봉쇄했다고 발표했다. 이 주소에 비트코인을 보내면 풋프린트를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의미일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비트코인이 화폐 현상이라면 비트코인은 다른 화폐 현상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블록체인의 가시성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현금과 달리 ‘추적’이 가능한 비트코인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추락했지만 비트코인을 다량 보유한 주소들의 특별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11월 말 현재 1만 BTC 이상 담긴 지갑의 개수는 총 123개로 폭락 이전과 변함이 없다. 패닉에 따르는 붕괴의 악순환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1만 BTC 이상 막대한 가치를 포함한 주소들 중 거래소 지갑을 빼고 대부분은 몇 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는데 이들의 정체야말로 비트코인의 가격과 직결된 사안이다.

경제학자들은 비트코인에 코인이라는 단어가 허락 없이 들어갔다고 분개하곤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옹호자들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코인이라는 단어에 착안해 비트코인을 보도할 때 미디어가 사용하는 반짝거리는 금화 이미지가 비트코인에 대한 오해와 무지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트코인 시스템에 뗑그렁 떨어지는 동전은 없다. 디지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자는 게 아니다. 낱개로 나눠지는 최소 묶음이 없다는 말이다. 비트코인 데이터는 UTXO(Unspent Transaction)라는 장부의 집합이다. UTXO는 겉표지에 수신인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와 비슷하다. 봉투 안에는 비트코인 값이 표기돼 있다. 어떤 UTXO는 1.234BTC가 적히기도 하고 어떤 UTXO에는 0.0000001BTC가 적히기도 하다. 비트코인 주소 혹은 지갑은 복수의 UTXO가 명시하고 있는 수신처를 의미한다.

비트코인 시스템에서의 거래는 철수에게서 갑수에게로 비트코인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철수를 수신자로 하는 UTXO를 갑수를 수신자로 하는 UTXO로 바꾸는 것이다. 1BTC가 적힌 UTXO를 0.5가 표기된 두 개의 UTXO로 나눈 후 하나는 수신자를 갑수로 하고 하나는 철수 자신으로 새로 기록하는 것이 바로 철수가 0.5BTC를 갑수에 보내는 거래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일이다. 동전은 변형되지 않지만 UTXO는 완전히 사라지면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창조된다.

비트코인을 잘 보관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도 UTXO의 이합집산으로 구성되는 비트코인 거래를 이해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용자는 거래소에서의 경험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거나 파는 거래는 비트코인 시스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UTXO를 만들거나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대신 거래소 자체 서버에서 계좌 기록을 변경한다. 거래소에 수백 개의 비트코인을 보관하고 있더라도 비트코인 시스템에서는 흔적이 없기 때문에 거래소 자체가 해킹당하면 시스템에서는 비트코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2011년 이전에 형성된 UTXO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UTXO가 당시 10분당 채굴량인 50BTC를 담은 채 변형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있다. 총량은 대략 200만 BTC에 이른다. 이 비트코인들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즉 죽은 코인일 가능성이 있다. 혹은 장기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비트코인이라면 현재의 비트코인 가격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던 비트코인이 언젠가는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면 가격이 폭락하고 어쩌면 비판론자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붕괴의 악순환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은 달러나 원화와 달리 총발행량과 발행 속도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 규칙을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이 때문에 예측성이 가장 높은 화폐라는 것이 옹호론자들의 주된 논리다. 하지만 비트코인 총량의 20~30%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시장에 쏟아져 나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화폐라고도 할 수 있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로 비트코인을 부정하는 단계에서 벗어난 이후 대중은 잃어버린 코인과 관련한 문제, 즉 비트코인의 총량에 대한 불확실성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가치가 없는 화폐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초창기 비트코이너들이 많은 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진짜 문제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돋보기] 하드포크와 가격 상승에 반응하는 장기 보유자들
암호화폐의 진짜 위험 ‘잃어버린 비트코인’
비트코인은 10년 동안 총 네 번 점프했다.

1차는 2011년에 일어났다. 1달러도 안 되던 가격이 6월 33달러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1달러대로 폭락했다. 2013년 봄엔 198달러까지 치솟고 90달러로 하락했다. 2013년 말에는 처음으로 1000달러 벽을 넘었다가 바로 600달러대로 떨어졌다. 마지막 4차 도약은 2017년 한 해 동안 비교적 장기적으로 진행됐다. 보통 10배 이상 뛰는 이런 시기에 죽었다고 여겨지던 주소들이 움직인다. 그러다가 가격이 하락한 이후 장기적인 침체기 동안에 이 주소들은 다시 장롱 안으로 들어간다.

비트코인 가격의 폭락을 일반적인 자산 가격 하락과 동일시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대용량의 장기 보유 주소들 때문이다. 가격의 침체기에 장기 보유자들은 더 많은 비트코인을 더 오랫동안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 2017년 8월 비트코인 캐시가 갈라져 나온 이후 장기 보유 지갑이 한꺼번에 움직인 흔적이 보인다. 이는 비트코인 캐시를 인출하기 위해 장롱 속에 넣어뒀던 비트코인 지갑을 찾아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장기 보유자들은 가격이 10배 이상 뛰었을 때 이익을 실현하거나 하드포크로 얻은 신규 코인을 매매하기 위해 움직인다. 만약 비트코인을 하드포크해 가치가 있어 보이는 신규 코인에 대한 청구 기한을 설정한다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주소들 중 정말로 죽은 코인의 비율이 얼마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데이터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