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재테크’ 필요성 부각되며 재테크 카페 유행…‘깨어 있어야 살아남는다’
외환위기의 교훈, ‘현상’보다 ‘원리’따져라
[한경비즈니스=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많은 회사가 문을 닫고 많은 실직자가 양산되면서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다. 이렇게 미래가 불확실성에 빠지자 많은 사람이 지갑을 닫았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돈을 다 써버리면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 때문에 경제 주체 모두가 지갑을 닫아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자 한국 경제는 진짜로 경기 후퇴(recession)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집값도 폭락을 거듭했다.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1년여 동안 전국 아파트 값은 무려 15.1%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전셋값도 22.3%나 폭락했다. 집을 팔거나 전세를 빼 현금화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매매가보다 전셋값이 시장에서 먼저 그리고 더 심하게 반응한 것이다.

◆아파트 값 15.1% 하락한 외환위기

경기 수축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그 당시 DJ 정부에서는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쓰게 된다.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통화량(M₂)을 1998년 23.7%, 1999년 13.6%나 늘렸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단기간 동안 기존 통화량에 비해 40%에 가까운 돈을 풀어 시중에 돈이 잘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되면 현금은 가치가 떨어지고 현물의 가치는 올라간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초 상식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DJ 정부에서 급격하게 통화량을 늘리면서 현금 가치가 떨어지고 집값은 올라가게 됐던 것이다.

1998년만 하더라도 통화량이 23.7%나 늘어났다. 경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1999년이나 늦어도 2000년에는 집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일부 사람들은 왜 집을 사지 않고 오히려 팔았을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1998년 한 해에만 전국 아파트 값이 13.6%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빨리 집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중은 집값이 떨어지면 앞으로 더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집값이 오르면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투자에 실패하고 오히려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는 (현상만을 보고) 실물 자산을 현금화한 사람과 (원리를 보고) 현금을 실물 자산화한 사람의 운명을 극명하게 바꿔 놓았다.

외환위기 사태가 바꿔 놓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한국 금융시장이 완전하게 개방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국내 자금 수요는 많은데 자금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특혜로 인식되던 때다. 이에 따라 관치금융이 판치고 장영자 사건과 같이 권력형 비리가 판치던 시절이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지자 부실한 기업뿐만 아니라 그 기업에 대출해 준 은행까지 사라져 가게 됐다.

그 이후 은행은 어찌 변했을까. 위험한 대출보다 안전한 대출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기업 대출은 기본적으로 신용을 기본으로 한 대출이다. 담보를 일부 받기도 하지만 담보 가치에 비해 많은 대출을 해준다든지 담보물의 가치를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이러니 기업이 망하면 은행도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고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외환위기였다.

하지만 은행의 대출은 수익의 원천을 의미한다. 은행에서 대출해 주지 않으면 은행에 들어오는 수입이 없어 은행이 먼저 망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기업 대출이 어렵게 되자 은행들은 자구책을 강구한다. 위험한 기업 대출보다 안전한 가계 대출을 확대한 것이다. 참고로 2018년 10월 말 기준으로 기업 대출의 연체율은 0.85%인데 가계 대출의 연체율은 0.27%로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주택 담보대출은 0.19%에 불과해 기업 대출 리스크의 4분의 1 수준이다.

◆가계 대출 확 늘린 은행들

가계 대출은 기본적으로 담보대출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택 담보대출이다. 원리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담보물을 경매로 넘겨 쉽게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으로선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사업 모델이다. 연체될 가능성도 낮지만 원리금이 연체되더라도 쉽게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계 대출이 활성화됐다는 의미는 주택 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자금이 통화량 증가율보다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통화량이 평균적으로 20% 늘어났다고 가정하면 기업에는 10% 자금이 더 흘러가는데 가계로는 30%나 자금이 더 흘러갔다는 뜻이다. 이러니 집값이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에 따라 2000년과 2001년 두 해에 걸쳐 전국 아파트 값은 40.6%나 올랐다. 요즘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지난 2년간 전국 아파트 값이 4.4% 오른 것에 비해 2000년대 초반의 상승률은 대단했던 것이다.

개인들 생활의 패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재테크라는 말이 일상화되지 않았다. 재테크라고 하면 절약해서 은행에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것 정도를 재테크라고 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열심히 일하면 회사에서 자녀 교육비까지 전액 지불해 주는 평생직장 개념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본인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회사가 외환위기를 맞아 먼저 망해 버리는 것을 목도한 많은 개인들이 자구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재테크 카페가 만들어진 이유가 그것이다.
외환위기의 교훈, ‘현상’보다 ‘원리’따져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역사를 보면 한국은 외환위기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처럼 외환위기를 계기로 누구는 몰락했지만 누구는 기회로 삼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도덕적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지켜주는 것은 국가도 아니고 회사도 아니다. 당신만이 당신 가족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5호(2018.12.31 ~ 2019.01.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