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베일 속 ‘사토시 나카모토 후보 1순위’…2014년 루게릭병으로 세상 떠나
최초의 비트코인 수신자 ‘할 피니’를 기리며
(사진) 비트코이너들에게 사토시 나카모토만큼 존경 받는 프로그래머 할 피니.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미국 플로리다 법원은 8월 27일 최초의 비트코인 개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자처한 크레이그 라이트 엔체인(nChain) 수석연구원이 채무자인 민사소송에 대해 평결을 내렸다. 이 재판은 그가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인지 판별하는 것과 무관하다는 점이 평결문에서도 강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트 연구원의 지지자들은 이 재판이 자신들의 믿음을 사실로 확정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특히 6월에는 라이트 연구원과 그의 지지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비트코인사토시비전(BSV)의 가격이 뛰어오르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법원이 그에게 초창기 비트코인 소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법정 모독죄로 실형을 내릴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평결 자체는 라이트 연구원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에 가까웠다. 라이트 연구원은 초창기 비트코인 채굴이나 비트코인에 관한 지식재산권을 원고와 반반씩 나눠야 한다. 이 내용만 보면 법원이 라이트 연구원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평결문은 라이트 연구원이 법원을 모독했고 말을 여러 차례 바꿨으며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평결도 ‘만약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이고 비트코인을 만들었고 막대한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라이트 연구원이 패소한 셈이다. 다만 자신이 막대한 액수의 비트코인을 채굴한 것은 맞지만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한 채무 부담을 피하면서도 지지자들을 계속 묶어 둘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래머이자 암호 기술 전문가 할 피니

사토시 나카모토를 연구하는 이들이 라이트 연구원을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두 인격의 불일치 때문이다. 라이트 연구원은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한 이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하고 말을 바꿔 왔다. 판사도 라이트 연구원이 서류를 조작하고 진실을 호도한 정황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에 대해서는 섬세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무엇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의 역사적인 발명과 관련해 어떠한 배타적 권리도 주장하지 않았던 데 반해 라이트 연구원은 비트코인 특허를 출원하는 등 재산권에 집착하고 있다.

그의 추종자들은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가 라이트 연구원을 제지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자신들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뉴스위크지가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를 비트코인 발명자로 지목했을 때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의 계정을 통해 ‘도리안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다’고 신속하게 반응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한 라이트 연구원을 놓아두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가 죽었다면 어떨까. 그것도 2014년 도리안 메시지와 2016년 라이트 연구원 출현 사이에 사망했다면 말이다. 이 프로파일에 맞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바로 2014년 8월 루게릭병으로 사망한 할 피니(Hal Finney)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게임 개발자이며 암호 기술 전문가이기도 한 할 피니는 비트코이너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 사실상 할 피니는 사토시 나카모토이거나 사토시 나카모토와 함께 비트코인을 개발한 공동 개발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그를 추억하는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할 피니를 알고 있는 암호학 전문가들은 할 피니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의 가족을 보호하려는 그의 뜻을 존중하다 보니 이를 떠벌릴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면서도 비트코인 발명에 대한 할 피니의 알려진 공헌을 최대한 기념해 경의를 표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스위스의 스타트업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보급하기 시작한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폰의 이름도 할 피니를 기념해 ‘피니(Finney)’로 지었다. 지난 9월 6일에는 사토시 나카모토팀이라는 단체가 할 피니의 루게릭병 발병 10년을 기리며 오래달리기 이벤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8월 파키스탄의 한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인데 할 피니와 함께 비트코인을 발명했다고 주장했다.

할 피니는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암호화폐를 꿈꿨던 유망한 발명가들 중 한 명이었다. 비트코인의 핵심 기능인 작업증명(Proof of Work)에 가장 근접한 방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할 피니가 고안한 재사용 작업증명(RPoW)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PoW는 유사점이 많다는 사실에 전문가들은 공감하고 있다.

이 분야의 천재들이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난제를 풀었다고 선언하며 등장한 사토시 나카모토는 등장 전까지 활동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에 따라 할 피니는 사토시 나카모토를 후견하면서 이 무대에 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의 주장을 단번에 이해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한 바도 있다. 할 피니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송금 받은 사람이며 사토시 나카모토에게 초기 프로그램의 버그를 알려 고치기도 했다. 또 사토시 나카모토를 제외하고 최초로 비트코인을 채굴한 사람이다. 물론 이렇게 공개된 사실만으로도 그를 지목할 수 있다. 그런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더 그럴 듯하다.


비트코인 개발에 성공한 해에 병 얻어

할 피니는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와 한 동네에서 10년 이상 살았다. 할 피니는 죽기 직전에 이상한 협박에 시달렸는데 당시 언론에서는 협박자가 거액의 비트코인을 요구했다는 정도만 보도했다.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이 아니면 거액의 비트코인을 요구할 만한 협박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당시에도 떠돌았다.

그는 2009년 9월 발병된 것을 알았고 2014년 8월 사망했다. 그가 만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면 비트코인 발명에 성공한 그해에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그는 완전한 죽음 대신 세포의 동결 보전을 선택했다. ‘냉동인간’ 기술은 주류 의학이 공인하고 있지는 않지만 후대에 적절한 처치를 통하면 세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기술이다. 냉동 과정에서 몸속의 수분에 의해 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데다 법의학적 죽음 이후 빠르게 조치해야 하므로 거액을 기부할 수 있는 부자들만이 주도면밀하게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이다.

앞으로 사토시 나카모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최초 코인에 대한 서명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직접증거가 없는 이상 할 피니를 능가하는 개연성을 갖춘 후보자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증거들의 추세만을 고려하면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반전이자 억지스럽게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 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지구를 뒤흔들고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에 걸맞은 스토리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선택한 대답이기도 하다.


[돋보기] 할 피니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지목하는 비트코인 고고학

비트코인 고고학자라고 불리는 일군의 개발자들은 비트코인의 특성을 활용해 사토시 나카모토에 관한 진실에 접근하려고 한다. 변하지 않는 장부이기도 한 비트코인은 모든 트랜잭션 정보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증거가 인멸될 위험이 없다는 데 착안한 작업이다.

최근 이들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채굴한 것이 분명한 블록들에서 특이성을 찾아냈다. 초창기에는 채굴 경쟁자가 없었다. 만약 당시 채굴 값들에서 어떤 연속된 패턴이 보인다면 그것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컴퓨터만이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관측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다행이 초창기 블록의 엑스트라 논스(Extra Nonce) 값들은 연속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대의 컴퓨터가 채굴 경쟁을 벌였다면 연속된 값이 아니라 무작위 값이 나와야 한다.

할 피니는 채굴이 되는지 보려고 초창기에 채굴을 시도했고 자신이 채굴한 블록이 70번대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할 피니가 채굴한 70번대 블록들에서도 엑스트라 논스 값들은 헝클어지지 않았다. 만약 할 피니가 사토시 나카모토와 무관하다면 할 피니가 채굴을 시도했을 때 사토시 나카모토의 컴퓨터도 채굴하고 있어야 했으므로 70번대 블록들은 연속된 패턴을 잃어버리고 뒤엉켜 있어야 하는데 70번대의 블록에서도 사토시 나카모토 이외의 채굴자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