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생애주기 따라 맞춤형 자산 배분…삼성 제친 미래에셋, 엎치락뒤치락 ‘수탁액 경쟁’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일명 ‘생애 주기 펀드’로 불리는 TDF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올 들어서만 1조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되는 등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운용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은 국내 TDF 시장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뜨거운 진검 승부를 펼치고 있다.

◆ 높은 ‘수익률’에 TDF 인기 고공 행진


TDF는 타깃 데이트 펀드(Target Date Fund)의 영문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이름 그대로 목표로 하는 날짜에 맞춰 자산을 분산투자해 주는 상품이다. 각 생애 주기에 따라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비율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며 ‘수익률’과 ‘안정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퇴 시점에 맞춰 안정적으로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노후 대비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TDF 상품 이름에는 뒤에 숫자가 붙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숫자가 목표 시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미래에셋자산배분TDF2045’, ‘삼성한국형TDF2025’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면 각각 2045년과 2025년을 ‘목표 시점’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자산 운용사들은 ‘2020’부터 ‘2050’까지 5년 단위로 나눠 상품을 출시한 것이 대부분이다.

숫자로 나타나는 목표 시점에 따라 상품의 포트폴리오 또한 달라진다.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비율을 생애 주기 곡선, 즉 ‘글라이드 패스’에 맞춰 유연하게 배분하는 것이 특징이다. ‘글라이드 패스’는 은퇴 시점까지 자산별 비율이 변화하는 모양이 비행기 활강 경로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핵심은 은퇴 시기, 평균수명, 연소득, 임금 상승률 등 한국인의 생애 주기에 맞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안전 자산과 위험 자산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다. 글라이드 패스가 공개된 운용사들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은퇴가 아직 많이 남은 시기에는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의 비율을 높여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채권과 같은 안전 자산의 투자 비율을 높여 안정성을 추구한다.


투자자들은 이에 맞춰 자신의 은퇴 시기에 따라 TDF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10년 뒤쯤 은퇴를 예상하는 중·장년층이라면 ‘2030’이, 20년 뒤쯤 은퇴를 목표로 하고 있는 2030세대라면 ‘2045’ 등이 적절하다.

하지만 굳이 노후 대비 목적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필요나 투자성향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TDF의 장점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주식의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공격적인 투자를 원한다면 ‘2045’처럼 목표 시점이 긴 유형을, 안정적인 투자를 원한다면 ‘2025’처럼 목표 시점이 짧은 유형이 적당하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가입이 간편한데다 한 번 가입하면 목표 시점까지 ‘알아서 굴려준다는’ 점도 많은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요인이다. 우선 투자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 주식 중에서도 선진국·신흥국 주식을 모두 담고 인프라·부동산·리츠 등 대체 투자도 가능하다. 이처럼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를 통해 시장 상황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다.

여기에 ‘절세 효과’도 큰 매력이다. 연금저축펀드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상품에 가입한 후 TDF로 운용하면 700만원까지 소득공제 16.5%를 받을 수 있다.
치솟는 TDF 인기, 미래에셋 vs 삼성자산 “내가 원조”
하지만 TDF 인기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수익률’이다. 최근 미·중 무역 분쟁과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글로벌 증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TDF는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며 선방 중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TDF(분류명 라이프사이클펀드)의 올 들어 평균 수익률이 9.31%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국내 혼합형 펀드의 수익률은 1.05%로 나타났다. 증시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던 10월 3일을 기준으로 지난 1년 수익률을 비교했을 때 수익률이 가장 높은 TDF 상품은 ‘미래에셋자산배분TDF2030년’으로 7.71%로 나타났다.

◆ 삼성 vs 미래 ‘사활 건 경쟁’


높아지는 관심만큼 TDF 시장에 들어오는 자금의 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0월 2일 기준 국내 총 10개 자산 운용사의 TDF 설정액은 2조4166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초 TDF의 총 설정액이 1조3328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 들어서만 1조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된 셈이다. 대부분의 액티브 펀드에서 자금이 유출되고 있는 상황인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로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올해 들어서만 8177억원이 빠져나갔다.


현재 국내에서는 총 10개의 운용사가 64개의 TDF를 운용하고 있다. TDF 시장이 급성장하며 올해에만 교보악사자산운용·NH아문디자산운용 등 2곳의 자산 운용사가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올해 말에는 우리자산운용도 TDF 출시를 계획 중이다. 하지만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의 ‘양강 체제’가 공고하다. 국내 전체 TDF 시장 가운데 양 사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만 약 80%에 다다른다. 이 밖에 한국투자신탁이 11%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국내 TDF 시장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의 ‘치열한 선두 경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삼성자산운용은 2016년 4월 ‘삼성 한국형 TDF 펀드’를 처음 선보였다. 출시 1년 만에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이 펀드에 몰린 데 이어 지난해 10월 5000억원을 돌파하며 국내 TDF 시장의 성장세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다. 삼성자산운용이 ‘국내 TDF의 원조’라고 말하는 이유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한국 TDF의 원조’를 주장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11년 ‘미래에셋평생연금만들기2040’이라는 이름으로 TDF 상품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TDF는 대중에게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관심을 얻기 힘들었다. 이후 2016~2017년 무렵 TDF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면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17년 3월 2011년에 출시했던 연금 상품을 리뉴얼한 TDF 상품을 선보이며 본격적인 TDF 경쟁에 뛰어들었다.

두 회사 모두 ‘한국 TDF의 원조’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확실한 선두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 모두 TDF 수탁액을 늘리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며 빠르게 시장 규모를 키워 가는 중이다.

실제로 지난 8월까지만 하더라도 운용사별 TDF의 수탁 자산은 삼성자산운용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8월 말 이후 판도가 뒤집혔다. 지난 8월 21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DF 수탁액은 8040억원으로, 처음으로 삼성자산운용의 수탁액(같은 날 기준 7630억원)을 앞질렀다. 에프앤가이드가 10월 2일 발표한 운용사별 TDF 수탁 자산은 미래에셋자산이 9835억원, 삼성자산운용이 9554억원이다. 아직은 그 차이가 크지 않은 만큼 언제든 결과가 뒤집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연초 이후에만 TDF 상품에 5403억원의 자금을 그러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자산운용의 연초 이후 증가액 2984억원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정도 많은 자금이다. 미래에셋대우 등 계열사의 전폭적인 마케팅에 힘입은 결과다.
치솟는 TDF 인기, 미래에셋 vs 삼성자산 “내가 원조”
국내 대표적인 두 자산 운용사가 이렇듯 TDF 시장의 선두 경쟁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할 때 TDF는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장이다. 2018년 8월 금융위원회는 확정 기여형(DC)과 IRP 자산의 100%까지 TDF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퇴직연금 감독 규정 개정안을 의결한데 이어 최근에는 퇴직연금 제도 개선 논의 과정에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디폴트 옵션은 노동자가 직접 운용 지시를 해야 하는 DC형 퇴직연금 자산을 금융사가 알아서 운용해 주는 자동 투자 제도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사례를 봤을 때도 2006년 연금보호법에서 기업의 자동 가입 제도(디폴트 옵션)가 활성화된 이후 TDF가 대표적인 연금 투자 상품으로 부상하며 시장이 급성장했다”며 “국내에도 디폴트 옵션이 도입되면 DC형 가입자들의 TDF 선호로 가파른 성장세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6호(2019.10.14 ~ 2019.10.2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