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환율전쟁 등 대외 여건 악화, 대내적으로도 가계부채 등 우려 심화
한국 경제, 앞으로 1년 안에 디플레와 대형 위기가 올 것인가?
[한경비즈니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앞으로 1년 안에 한국 경제에 대형 위기가 발생할까.” 또 다른 10년, 2020년대 진입을 앞두고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대형 위기는 10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급 위기를 말한다. 올해 어렵게 도달했던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는 때에 대형 위기가 발생한다면 ‘중진국 함정’ 논쟁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위기는 글로벌화가 급진전됐던 1990년대 이후 주로 발생했다. 그 이전까지 위기는 특정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 과도한 외채, 부채 만기 불일치, 자본 자유화에 따른 부작용, 고정환율제 등 내부 요인에 기인한다고 봤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각국의 빗장이 빠르게 열리면서 내부 요인보다 선진국 자본의 유출입, 자본 수출국의 통화정책 변경, 각국 자본시장 간 통합 정도 등 외부 요인에 의해 위기가 발생하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위기 성격도 채무 위기, 부동산 위기, 실물 경기 위기 등이 겹치면서 다중 복합적인 성격이 짙어졌다.

◆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에 ‘디플레 논쟁’ 대두


경제 역학 구도상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위기가 발생한 경우도 많아졌다. 내부적으로 경제 기초 여건이 양호하더라도 최고통수권자·집권당·경제정책 등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가 형성되면 자본 흐름이 역전되면서 대형 위기가 발생했다.


대형 위기 사례로 꼽고 있는 외환위기 전후 상황을 보면 1994년 이후 독일 분데스방크(유럽중앙은행 출범 전 유럽통화정책 주도)는 기준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기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3.75%에서 4.25%로 인상한 후 1년도 못 되는 기간 안에 6%까지 끌어올렸다. ‘대발산(great divergence)’ 시기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경제 위상도 높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 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됐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 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발생했다. 미국 경기도 슈퍼 달러 등의 부작용을 버티지 못하고 2000년 이후에는 IT 버블 붕괴를 계기로 침체 국면에 들어갔다.


또 하나 대형 위기 사례로 꼽고 있는 리먼 사태 진전 과정을 보면 2000년대 들어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은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2004년 초까지 기준금리를 1%까지 내렸다. 그 후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시장금리는 떨어지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자산 거품이 심하게 발생했다.


당시 자산 거품 붕괴를 촉진했던 것은 유가였다. 2008년 초 배럴당 70달러대였던 유가가 6개월 사이에 140달러대로 치솟자 각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 결과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차단돼 자산 가격이 급락하자 마진 콜(증거금 부족 현상)에 봉착한 투자은행이 디레버리지(자산 회수)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미·중 간 마찰, 각국의 보호주의, 환율전쟁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이 심상치 않다. 세계 경기 장기 호황도 마무리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경제 외적으로 극우주의 세력도 갈수록 힘을 얻어가는 추세다.


대내적으로는 모든 국정 현안을 놓고 이분법적인 대립으로 혼탁하다. 위험수위를 넘은 가계 부채, 날로 증가하는 국채 채무, 저출산·고령화, 언제든지 급변할 수 있는 남북 관계, 중국 편향적인 경제구조 등 위기 잠복 요인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실물 경기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악화일로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0.4%로 8월에 이어 두 달 연속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비자물가상승률과 같은 월별 지표는 3개월간 지속 여부로 경기를 판단하는 것을 감안하면 디플레 논쟁이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디플레 논쟁 그 자체는 의미가 크다.


한국의 경기 논쟁은 작년 4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본격 제기하자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 부총리는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으로 대응했다.


경기 논쟁의 정점은 작년 10월이다. 성장률이 둔화되고 코스피지수 2000선이 무너지자 경기 침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소득 주도 성장에 수정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장하성 전 정책실장(현 주중 대사)은 조만간 경기가 본격 회복될 것이라고 신경질적으로 반박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도 문제였다. 작년 11월 말 열렸던 금융통화회의에서 제1선 목표인 물가가 너무 낮고 경기와 고용이 악화되는 여건에서도 ‘대내외 불균형 시정’이란 모호한 이유를 들어 금리를 전격적으로 올렸다. 결과는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자 지난 7월 금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나온 후에도 2분기 이후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2분기 성장률이 ‘플러스’로 나왔지만 재정이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성장률이었다. 일본의 수출 통제가 시작된 3분기 이후 성장률이 재차 둔화되면서 장기 침체를 예고하는 ‘W’자형 경기순환 국면을 예상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 경제, 앞으로 1년 안에 디플레와 대형 위기가 올 것인가?


◆ ‘지나친 낙관론’이 위기 부른다


디플레 논쟁이 무서운 점은 일본 경제의 사례에서 보듯이 장기화되면 ‘좀비’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좀비란 정책 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전혀 반응하지 않는 ‘죽은 시체’와 같은 상황을 말한다.


주무 부서인 한국은행은 여전히 우리 경제가 디플레 국면에 빠졌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주장한다. 올 들어 0%대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7개월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디플레 우려가 제기되자 디플레 취약지수를 들어 강하게 반박했다. 디플레 취약지수의 허구성 논쟁 속에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했다.


통화정책의 시차는 9~12개월 내외로 추정된다. 재정정책과 달리 ‘선제성(preemptive)’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Fed는 경제지표가 괜찮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하거나 시장이 불안하면 금리를 내리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를 중시한다.


우리 경기가 디플레 논쟁이 일만큼 악화됐다. ‘지나친 낙관론의 오류’다.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경제지표가 좋은 점만 들어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이른바 프레임에 갇혀 있는 일부 정책 당국자와 진보학자가 어려울 때마다 거론하는 ‘국민’의 편에서 경기를 판단하고 경제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밤낮없이 경기 살리기에 부심하는 경제 각료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실기(失機)하면 이후에 엄청난 정책비용을 치른다. ‘정치꾼(다음 선거와 자신의 자리만 생각)’보다 ‘정치가(다음 세대와 국민을 우선)’, ‘정책 당국’보다 ‘국민’ 편에서 좀 더 솔직하게 경기를 보고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대형 위기 우려도 지난 7월부터 Fed가 금리를 내리면서 대발산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 판단 지표 등으로 볼 때 아직까지 대형 위기가 발생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외국인과 우리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면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대형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앞으로 1년 동안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sch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6호(2019.10.14 ~ 2019.10.2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