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거래 용량 극복하는 라이트닝 네트워크 확산
- 가치 저장과 증명 수단으로 진화할 것
인류가 발명한 ‘가장 안전한 등기소’가 된 비트코인
(사진)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한국경제신문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연구소장] 한때 ‘비트코인 예수’로 불리기도 했던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는 비트코인을 반대하는 정렬적인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는 비트코인의 높은 가격이 오해 혹은 지적인 사기 때문이므로 조만간 폭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는 재난을 미리 알리는 심정으로 비트코인 옹호론자들이 등장하는 무대라면 가리지 않고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한다. 그의 지나친 열정은 때로 암호화폐 세계 전체의 웃음거리를 만드는 뉴스가 되기도 했다. 2018년 ‘크루즈 추태’와 ‘라이트닝 네트워크 내기’가 그것이다.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뱅크가 암호화폐 투자로 큰돈을 쉽게 번 이들을 대상으로 호화 유람선을 타고 지중해를 돌며 암호화폐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총 55개국에서 2500명의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참여한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한 버 대표는 토론 진행을 방해해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다.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 지미 송 블록체인 캐피털 파트너와의 토론이었다. 이 토론은 시작되자마자 난장판이 연출됐다. 송 파트너가 말할 차례가 돼도 버 대표가 마이크를 놓지 않았고 수영장에서 이를 관람하던 청중이 버 대표에게 분노의 야유를 퍼부었다고 전해진다.
비트코인을 마치 절대악으로 묘사하는 버 대표에 대응해 송 파트너는 비트코인캐시가 사실 몇몇 거대 자본가들의 놀이터에 불과하다고 폄훼했다. 이에 버 대표는 10년 안에 비트코인캐시가 비트코인보다 비싸질 것이라며 내기를 제안했다.
◆‘거래비용과 분산성’ 해결 어려운 온체인 방식
이 내기는 몇 달 뒤 상대와 내용을 조금 바꿔 성사됐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이자 라이트코인(LTC) 설립자인 찰리 리가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내기를 받아들였다. 2020년 3월 9일까지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이용해 결제를 받는 사업자가 1000명을 넘어서면 리 설립자의 승리, 그렇지 않으면 버 대표의 승리다. 내기에서 진 사람은 상대방 코인의 유니폼을 입고 자신이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이 소식이 보도된 지 1년이 지난 2019년 10월, 일단 리 설립자가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지탱하는 노드들이 1만 개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이에 고무된 블록스트림의 최고기술책임자(CSO)인 샘슨 모는 트윗에서 자신은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미래를 강력하게 낙관한다고 말했다.
모 CSO 역시 2018년 한국에서 열린 ‘디코노미’에서 버 대표와 뜨거운 토론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을 잇는 암호화폐가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모 CSO는 ‘비트코인’을, 버 대표는 ‘비트코인캐시’를 선택했다. 당시 버 대표는 비트코인캐시의 실제 가치가 100분의 1로 과소평가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초당 7건의 거래밖에 취급할 수 없는 비트코인의 거래 용량 한계 문제에 대해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오프체인(off-chain) 방식의 해결책을 대표한다. 빈번한 소액 거래는 블록체인 바깥에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거래비용을 낮추고 거래량을 증가시킨다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버 대표가 관여한 비트코인캐시는 온체인(on-chain) 방식의 해결책을 대표한다. 블록체인 자체의 용량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가자는 개념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용량을 무한정으로 늘리면 서버 유지비용 때문에 노드의 수가 줄어든다. 결국 막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이나 정부만이 노드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분산성을 지향하는 비트코인의 기본 개념이 무색해진다. 이 방식을 옹호하는 이들은 하드웨어의 성능이 빠르게 좋아지므로 서버 가격도 빠르게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하드웨어 성능의 증가를 앞질러 거래량 또한 늘어난다면 온체인 해결책으로는 저렴한 거래비용과 분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어렵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이론적으로 거래비용도 없애면서 핵심 노드의 분산성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현실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값비싼 비트코인을 저당 잡아 놓기로 마음먹은 노드들이 많아야 한다. 비트코인을 증거금으로 묶어야 하는 노드의 참여가 많지 않으면 여러 거래 상대를 대상으로 막대한 증거금을 묻어 놓을 수 있는 거대 자본이 라이트닝 네트워크에서도 허브가 된다.
물론 이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비트코인 자체의 분산성은 유지할 수 있지만 거래 플랫폼으로서의 라이트닝 네트워크 또한 중심과 주변부가 뚜렷한 방사형 구조(바큇살 구조)로 이행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라이트닝 네트워크의 노드가 1만 개를 돌파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배경이다. 그것도 1년 동안 8배나 증가했는데 자발적으로 값비싼 비트코인을 묶어 놓기로 하는 이들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의미인데 암호화폐의 미래를 낙관하게 할 수 있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등기소’ 역할에 주목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실 온체인과 오프체인 진영의 논쟁이 뜨거운 이유는 이 논쟁이 ‘비트코인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건들기 때문이다. 주류 미디어와 대중 그리고 온체인 주창자들이 비트코인의 원래 목적이기도 했던 ‘저렴한 결제 수단의 구현’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오프체인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은 비트코인을 인류가 발명한 ‘가장 안전한 등기소(기록물 보관소)’라고 생각한다.
이 등기소는 값비싼 자산의 소유권을 기록, 보관하기 때문에 금괴를 보관하는 은행의 지하 벙커와 비슷하다. 금괴의 소유권은 빠르게 이동하지만 금괴는 지하 벙커에서 좀처럼 유출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금괴를 이동시키는 것이 위험하고 비싸기 때문에 소유권만 전자적 형태로 이동되는 시스템이 오래전에 구축돼 있다.
등기소 혹은 금고로서 비트코인이 안전한 이유는 여러 군데에 나눠 보관하고 있다는 분산성과 함께 비트코인이 비싸기 때문이다. 코인이 비싸기 때문에 비트코인 시스템이 값진 것이 되고 그 때문에 비트코인이 비싸다. 이는 외형상 전형적인 순환 논법이지만 이보다 적절한 설명 방식을 찾기도 어렵다. 비싼 코인을 얻기 위해 수많은 노드들이 채굴 경쟁을 벌인다. 참여 노드들이 많을수록 시스템의 분산성이 강화된다. 누군가 마음대로 금고를 들락거릴 수 없다는 의미이고 정부는 규제 대상조차 찾기 어렵다. 정부의 입김으로 시스템이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저장된 내용이 최종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만약 비트코인이 금괴를 보관하는 지하 벙커라면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금에 대한 전자적 소유권을 이동시키는 거래 플랫폼과 같다. 즉 오프체인 방식은 무거워야만 하는 금고 자체를 날렵하게 하는 대신 금고에 기반한 시스템을 층층이 쌓아 올려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등기소로서 비트코인의 활용 사례를 추가한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에서 공인인증서를 밀어낼 자사의 분산 아이디 프로토콜로서 분산 아이디의 핵심 내용을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입력해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에 개인의 신원 정보를 전적으로 맡긴다는 개념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비트코인을 대안으로 선택한다는 의미다. 비트코인에 새겨진 소유권이 글로벌 기업이나 미국 정부의 보장보다 더 확실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질 것 같지는 않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7호(2019.10.21 ~ 2019.10.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