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제 1253호 (2019년 12월 04일)

비트코인을 ‘디지털 돈’으로 만들려는 ‘금융 공룡’ 피델리티

[비트코인 A TO Z]

- 2014년부터 블록체인 연구 시작

- 3세대 경영인 아비게일 존슨이 직접 주도


(캡션) 아비게일 존슨 피델리티 최고경영자(CEO)


[한중섭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피델리티는 2조7000억 달러(약 3185조7000억원) 규모의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 운용사 중 하나다. ‘혁신의 DNA’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피델리티는 보수적인 월가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하는 선구자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블랙록과 뱅가드 등 경쟁사들이 저렴한 수수료를 내세워 인덱스펀드와 상장지수펀드 등을 출시하자 자산 운용업계에서 피델리티의 입지가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피델리티를 비롯한 대형 자산 운용사들은 ‘제로 수수료’ 펀드까지 출시하며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2018년 '피델리티 디지털 애셋' 설림


현재 피델리티는 창업자의 손녀인 아비게일 존슨 최고경영자(CEO)가 이끌며 3대째 경영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중 한 명으로 평가 받으며 월가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존슨 CEO가 비트코인 예찬론자라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피델리티는 월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비트코인 관련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금융회사다. 피델리티는 2014년부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비트코인이 대중과 대기업들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이 2017년인 것을 고려하면 피델리티의 이와 같은 행보는 상당히 선제적이다.


피델리티는 2018년 10월 사내 조직에 불과했던 팀을 격상시켜 ‘피델리티 디지털 애셋’을 설립했다. 웬만한 블록체인 관련 기업보다 규모가 훨씬 큰 피델리티 디지털 애셋에는 금융·블록체인·정보기술(IT)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의 미션은 기관투자가들이 비트코인에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피델리티는 2019년 10월 기관을 대상으로 비트코인 거래와 수탁 서비스를 출시했다.  


피델리티는 단순히 비트코인 거래와 수탁 서비스만 제공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피델리티는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2018년 10월 피델리티 디지털 애셋 블로그에는 ‘디지털 돈의 진화’라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비트코인이 페이팔·위챗페이·벤모 등과 같은 기존 결제 시스템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있다. 또 디지캐시·해시캐시·비머니·비트골드·작업 증명 등 비트코인의 탄생에 영향을 준 디지털 돈의 역사를 훑으며 비트코인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피델리티는 비트코인을 단지 투기성 자산으로 보고 있지 않다. 돈의 패러다임을 바꿀 디지털 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피델리티는 글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며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돈의 패러다임이 바뀔 변곡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돈은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한 이후 디지털화됐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돈의 인터넷으로 본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토콜에 대해 배울수록 어쩌면 가치의 저장, 가치의 교환과 관련된 새로운 방식이 우리의 삶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말이다.”


‘디지털 돈의 진화’라는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올린 후 피델리티는 빠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2019년 3월 피델리티그룹의 피델리티 내셔널 인포메이션 서비스(FIS)는 월드페이라는 결제 기업을 40조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월드페이는 전 세계 온·오프라인 상점에 결제 프로세싱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핀테크 기업이다.


2019년 7월 FIS는 월드페이 인수를 완료했는데 참고로 이 딜은 결제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딜이다. 피델리티는 월드페이에서 대체 어떤 사업 기회를 봤기에 40조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인수한 것일까. 아마도 답은 비트코인 결제로 보인다.



◆40조원에 인수한 월드페이


월드페이는 전 세계 온·오프라인 상점에 결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비트코인 결제 대중화를 위해서는 월드페이처럼 이미 글로벌 결제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도움이 필요하다.


월드페이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자사의 결제망에 비트코인을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월드페이는 비자·코인베이스와 협업해 카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월드페이의 임원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비트코인 결제 기업 비트페이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최근 영입됐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월드페이는 이미 예전부터 비트코인이 어떻게 결제 시장을 혁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트코인 대중화를 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피델리티그룹에 월드페이가 인수되는 것은 양 사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는 딜이었을 것이다.


월드페이를 인수한 피델리티가 비트코인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제 시장을 혁신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피델리티가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 보면 피델리티는 ‘오프체인 솔루션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오프체인 솔루션 결제는 온체인에 매번 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원장을 활용해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사후 정산 내역만 온체인에 기록하는 것이다. 참고로 ‘백트·스타벅스·마이크로소프트’와 ‘트위터·스퀘어’ 연합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비트코인 결제 시장의 혁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피델리티의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피델리티는 2019년 9월 블록체인 분석 기업인 엘레멘투스에 투자했다. 엘레멘투스는 블록체인 거래 내역을 추적해 테러 자금과 자금 세탁 방지를 돕는 기업이다. 자금세탁방지기구 가이드라인에 따라 앞으로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기업들에는 강력한 규제가 가해질 것이다. 피델리티와 같은 대형 금융회사에는 당연히 규제 준수를 위해 엘레멘투스와 같은 서비스가 요긴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비트코인을 ‘디지털 돈’으로 만들고자 하는 피델리티의 비전이 과연 실현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비트코인의 대중화를 위해 피델리티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베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존슨 CEO가 쉽게 포기할 리 없다. 아버지에게서 경영권을 물려받은 존슨 CEO는 그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자산 운용 시장이 포화됨에 따라 수수료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업계에서 피델리티의 지위도 예전만 못하다. 과연 비트코인이 존슨 CEO의 구원투수가 돼 피델리티의 르네상스 시대를 다시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3호(2019.12.02 ~ 2019.12.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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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12-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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