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백트·ICE 등 기관투자가 대상 서비스 개시…한국도 KB·신한·우리 등 서비스 개발 중
암호자산 시장에 등장한 ‘프라임 브로커리지’
[김성호 해시드 파트너] 폭풍 같던 암호화폐 공개(ICO)와 알트코인의 시대가 지나가고 2019년 들어 투기의 광풍은 파생 상품 거래소로 돌아왔다. 비트코인 선물 옵션 등의 파생 상품에 더 많은 유동성이 몰렸고 이 거래량은 현물 시장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는 금 또는 은과 같은 전통 시장에서 현물과 선물 시장을 비춰볼 때 자연스러웠다. 금도 선물 시장이 개장된 이후 2000년대 초반 현물 시장을 몇 배 이상 능가해 왔기 때문이다. 비트코인도 금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암호자산은 규제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더 자극적인 상품을 출시할 수 있다. 파생 상품 거래소 중 가장 유명한 비트멕스는 100배 이상의 마진 롱을 할 수 있다. 100배라는 수치는 전통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암호자산 시장에서는 이런 상품이 아무런 제재 없이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의 수많은 트레이더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거래소가 됐다.
미국의 규제권 내에 있는 거래소에서도 하나둘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시카고에 있는 세계 최대 선물 거래소인 CME그룹은 2017년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출시했다. 뉴욕 증권 거래소를 소유한 인터콘티넨탈 익스체인지(ICE)는 2019년 백트(BAKKT)를 출시했다. 이 두 거래소는 꾸준히 기관들을 받아들이며 거래량을 불려 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제도권 내에 있는 거래소에서도 하나둘씩 받아들여지며 비트코인은 정체 모를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 사기)가 아니라 거래소에서 주목해야 될 자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디파이와 시파이를 잇는 스테이블 코인
국내에서는 2017년 코인원의 마진 거래가 중지된 이후 어떤 시도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많은 한국의 트레이더는 한국 암호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입한 뒤 글로벌 파생 상품 거래소에서 거래한다. 이에 따라 한국 거래소들은 상대적으로 글로벌 암호자산 금융 플랫폼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소형 거래소를 기반으로 자산을 합성해 비트코인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토큰을 상장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가 있지만 유저들이 이미 떠난 자리를 채우기는 쉽지 않다.
지금 이더리움 디파이(DeFi : 탈중앙화 금융) 진영에서는 이더(ETH)를 담보물로 설정한 다이(DAI)가 떠오르며 모든 디파이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디파이에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화에 가치가 연동되도록 한 USDT다. 은행과 연결되지 않은 암호자산 간 거래만 있다면 대부분은 법정화폐 대신 테더가 발행한 USDT를 사용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보통 법정화폐 대신 투자자의 자산을 법정화폐로 옮겨 놓는 효과를 내기 위해 이 코인을 많이 이용한다. 1USDT의 가치는 1USD와 같도록 유지된다. 이 때문에 이체할 때 매우 용이하다. 현재 아시아의 장외 거래(OTC) 업체들 또한 가치 이동의 주된 수단으로 대부분 USDT를 이용하고 있다.
USDT와 함께 눈여겨봐야 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USDC다. USDC는 OTC를 전문으로 하는 암호화폐 플랫폼 서클(Circle)에서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이다. USDT와 마찬가지로 코인을 쉽게 발행할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서클은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에 서비스 사업자로 등록된 사업자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도권 안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USDC가 다른 법정화폐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보다 앞서 있는 이유는 디파이 프로토콜에서 빠르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파이 프로토콜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검열에 민감한 이용자들도 USDC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중앙화된 주체가 발행하고 관리하는 스테이블 코인과 탈중앙화 금융 프로토콜의 조화는 앞으로 시파이(CeFi : 중앙화 금융)와 디파이가 더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다.
한국의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Terra)와 차이 페이(Chai pay)의 조합도 눈여겨볼 만하다. 테라는 탈중앙화된 스테이블 코인을 지향한다. 차이 페이는 중앙화된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사다. 이 또한 전통 금융과 암호자산 금융을 결합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차이 페이는 전통 결제 채널을 구축해 인터넷 회사들의 결제를 도와준다. 그 뒤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와 블록체인을 유지하게 만들어 주는 루나(Luna) 토큰이 이 결제 지급을 보증해 주는 형태가 된다. 이렇게 중앙화된 회사의 이점과 탈중앙화 프로토콜의 이점이 결합된 형태의 서비스는 이미 구축돼 있던 시장을 조금씩 침투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백트나 CME와 같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거래소가 하나둘씩 오픈되면서 기관투자가를 위한 플랫폼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에 도전한다. 프라임 브로커리지는 전통 금융 시장에서도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영역이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골드만삭스나 피델리티와 같은 기업들이 바로 프라임 브로커리지를 하면서 성장했던 기업들이다.
암호자산 시장에 등장한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진)정우현(왼쪽) 아톰릭스랩 대표와 이우열 KB국민은행 IT그룹 대표는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전산센터에서 지난해 6월 10일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 관리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 협약식'을 체결했다.
◆골드만삭스, 프라임 브로커리지의 대표 격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너무 많은 거래소들이 생겨나다 보니 더 효율적인 거래를 위해 가장 좋은 가격을 제시하는 브로커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런 업체들 중 일부는 이미 큰 규모의 거래를 하고 있거나 앞으로 이 시장에 들어올 전통 기관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이런 플랫폼들은 단순히 거래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기관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투자 자금을 맡아 감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금 수탁 서비스나 고객들에게 다양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서비스, 고객들의 돈을 전자적 신호를 통해 거래할 수 있는 알고리즘 트레이딩 서비스 등이다.
이러한 서비스들을 통해 기관들은 수많은 거래소에 직접 계좌를 만들어 거래해야 하는 수고를 덜 뿐만 아니라 기관 자금을 운용하기 위해 마땅히 준비돼야 하는 다양한 법적 문서들을 모두 한 번에 작성해 처리할 수 있다. 제도만 마련된다면 프라임 브로커리지 영역의 회사들은 기관들에 신뢰를 얻어 가며 첫째로 대면하는 서비스로서 시장에 착륙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한국에서는 제도의 한계로 아직까지는 이러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앞으로 다가올 기관 시장에 앞서 고객들이나 기관들의 암호화폐 자산을 수탁하는 서비스부터 사업 개발이 시작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아톰릭스랩과 함께 수탁 서비스 ‘라임’을 개발 중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인 그라운드X와 기술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고객들의 암호화폐 자산이 이미 많이 모여 있는 국내 거래소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빗썸·업비트와 같은 국내 최대 거래소들도 마찬가지로 크립토 금융 시장의 선점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커스터디(수탁) 서비스를 이용해 고객들의 돈을 수탁해 둔다면 향후에 이렇게 모인 고객들의 자산을 바탕으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과 프라임 브로커리지의 예시를 통해 시파이의 영역에서 많은 참여자들을 끌어오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을 짚어봤다. 두 영역의 시장에서 당장은 탈중앙화된 구조보다 중앙화된 구조가 더 유리해 시파이가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디파이의 기술과 시장이 성숙해 감에 따라 시파이와 디파이는 같이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1호(2020.01.27 ~ 2020.0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