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금융위기 후 ‘평균값’에 의한 예측 의미 없어져-‘작은 위험’ 관리에 더 관심 기울여야
[한경비즈니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또 다른 10년인 2020년대에 진입하면서 각종 예측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희망 반, 기대 반’으로 맞았던 종전의 10년과 달리 2020년대 세계 경제는 순탄치 않아 낙관적으로 보는 예측 기관이 많지 않다는 점도 색다르다. 2008년 이후 발생했던 금융 위기 극복이 완전하지 않은 데다 그 어느 10년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테일 리스크(꼬리 위험)’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서 자연·사회·정치·경제 현상은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 분포로 설명한다. 하지만 발생 확률이 낮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빈도가 정규 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커져 꼬리가 두터워지면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금융 위기 이후에는 정규 분포 꼬리가 너무 두터워져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 예측력이 떨어지는 테일 리스크가 자주 목격돼 왔다. 꼬리 부분이 두텁지 않아야 평균값의 의미가 강해지고 통계학적 예측력이 높아지는데 꼬리가 두터워지면 평균값의 의미가 떨어져 예측이 어려워진다. 코로나19 사태로 테일 리스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지브리의 저주·제3의 톈안먼 사태…‘테일 리스크’가 세계 경제 흔든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

2020년대 들어 세계 경제는 테일 리스크가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장기 복합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R(경기 침체)’ 공포를 넘어 ‘D(디플레)’ 공포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그리고 금리가 동시에 마이너스 국면에 빠지는 ‘3M(triple minus) 공포’도 배제할 수 없다. 트리플 M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3차 세계대전에 대한 우려도 전형적인 테일 리스크에 해당한다. 미·중 간 경제 패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보호주의와 이기주의, 각국의 경쟁적인 자국 통화 평가절하, 극우주의 세력 득세, 빈번하게 발생하는 각종 디스토피아 등으로 지금의 상황은 2차 세계대전 직전과 흡사하다고 2년 전부터 영국의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이 경고해 왔다.

46대 대선 정국으로 점철될 2020년대 첫해 미국 경제의 최대 테일 리스크는 ‘제2의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 발생이다.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 달인 10월 발생한 뜻하지 않은 사태로 그때까지 여론 조사 등에서 불리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말한다. 미·중 간 마찰, 북·미 협상, 이민법, 헬스케어법, 단일 금융법(일명 도드-프랭크 법) 등 그 어느 하나 표심을 얻을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어디에서 또 한 차례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만들어 낼지 벌써부터 관심사다.

일본 경제는 1990년 이후 ‘잃어버린 20년’ 과정에서 정책 함정, 유동성 함정, 구조조정 함정, 불확실성 함정, 좀비 함정 등 5대 함정에 빠져 고통을 겪었다. 2019년 9월을 기해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최장의 총리로 등극하는 데 성공했지만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지브리의 저주’에 빠질지 모른다는 새로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브리의 저주는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면 증시 등 금융 시장이 난기류를 보이는 현상이다. 지브리 저주는 금융 변수 중 엔·달러 환율 움직임과 상관관계가 높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기반이 마련됐으면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로 엔화가 약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일본 금융 시장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엔화 약세를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아베노믹스를 더 이상 밀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엔고의 저주’가 걸려 있는 일본 경제 특성상 엔저를 인위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엔화 강세가 재현돼 경기가 침체된다.
지브리의 저주·제3의 톈안먼 사태…‘테일 리스크’가 세계 경제 흔든다

◆빈손, 빈집, 빈 상가, 빈 공장…4V 공포 확산


유럽 경제 테일 리스크는 ‘선행의 역설(kind act’s paradox)’이다. 선행의 역설은 좋은 의미로 행동한 것이 도리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2010년 이후 발생했던 유럽 재정 위기 극복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독일 경제가 그 후유증으로 2019년 2분기부터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했다. 독일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유로 랜드 중 비우량 회원국에 속하는 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경제뿐만 아니라 유럽 통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테일 리스크인 코로나19발 ‘제3의 톈안먼 사태’ 가능성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과 협상, 홍콩 시위대 사태, 코로나19 등에 대한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구조병인 3대 회색 코뿔소(그림자 금융, 과다 부채, 부동산 거품) 현안도 제때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바오류(성장률 6%)’ 붕괴가 일보 직전이다. 돼지 콜레라 열병 등으로 생활 물가가 급등하면서 인민이 느끼는 경제 고통이 치솟고 있다.

제3의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시 주석의 축출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1976년 1차 톈안먼 사태 이후 덩샤오핑 실각, 1989년 2차 톈안먼 사태 이후 자오쯔양에서 장쩌민으로 권력 이양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시 주석의 부패 척결 과정에서 밀려난 권력층을 중심으로 시 주석 퇴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2020년대 들어 한국 경제는 10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같은 대형 위기가 발생할 것인지 여부가 최대 관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상환계수 등으로 볼 때 아직까지 대형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외국인과 우리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되면 자기실현적 기대 가설에 따라 대형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2020년대 한국 경제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테일 리스크다.

‘4V(quadruple vacant) 공포’가 확산되는 점도 주목된다. 4V 공포는 지표 경기보다 일생생활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와 관련된 용어로 빈손, 빈집, 빈 상가, 빈 산업단지를 말한다. 빈집은 전국적으로 200만 채에 육박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도 ‘시카고 공포’가 우려된다. 시카고 공포는 도시 발전의 원동력이자 상징이었던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면서 시카고가 유령 도시로 변한 현상을 말한다.

이 밖에 2020년대 예상되는 테일 리스크는 비이성적 과열에 따른 미국 주가 20% 폭락, 신흥국에서 외국 자금의 대규모 이탈, 항로와 자원 확보를 위한 북극 전쟁, 외화 조달 실패로 북한의 붕괴 가능성 등이 꼽힌다. 그 어느 10년보다 코로나19와 테일 리스크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5호(2020.02.24 ~ 2020.03.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