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먼저 치고 나가는 피델리티·백트…삼성전자·트위터 등도 ‘다크호스’

[한경비즈니스 칼럼 =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글로벌 전략팀 디지털 파트 과장, ‘비트코인 제국주의’·‘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전통 금융 시장에서 커스터디(금융 자산을 대신 보관·관리해 주는 서비스)의 역할은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현재 JP모간·스테이트스트리트·씨티은행·뉴욕멜론은행과 같은 대형 금융회사들은 전 세계 유가 증권 자산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고객에게 위임 받아 글로벌 커스터디 사업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트코인이 점점 제도권에 편입되고 대체 자산으로 인정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비트코인 커스터디 사업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왜 비트코인 커스터디에 관심을 보일까.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현재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 시장이 직면한 문제는 사실 과거 전통 유가증권시장이 겪은 문제와 유사하다.

대표적인 문제는 바로 ‘신뢰의 붕괴와 인프라 미성숙’이다. 1929년 대공황 전 전통 유가증권시장은 불투명했고 비효율적이었으며 사기 행위가 많았다. 그 당시 개인은 불편하게 종이 증권을 직접 보관하고 매수자와 매도자가 만나 P2P(개인 대 개인)로 직거래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다 대공황 이후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기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증권법이 개정됐고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커스터디 기업들이 고객의 종이 증권을 대신 보관하고 관리해 주기 시작했다. 전통 유가증권시장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커스터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보다 상위의 중앙 기관이 만들어졌고 전 세계 금융 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글로벌 커스터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 시장도 전통 유가증권시장의 발전과 궤를 같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0년 전 비트코인 관련 인프라가 미성숙했을 때는 개인이 P2P로 비트코인을 거래하고 직접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마치 대공황 전 전통 유가증권시장처럼 말이다.
그러다 2014년 대형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해킹 당하면서 신뢰할 만한 거래소와 커스터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마운트곡스 해킹 사태 이후 상황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규제의 공백과 연이은 거래소 해킹으로 비트코인 시장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한편 비트코인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가 해킹인데 그동안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거래소가 해킹 당한 것이지 비트코인 네트워크 자체는 해킹 당하지 않았다.
금융 vs IT ‘공룡 기업’의 힘겨루기 시작된 비트코인 커스터디
(사진) 비트코인 커스터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트위터의 잭 도시 CEO/AP연합
◆2014년 ‘마운트곡스’ 해킹으로 변화 시작


그러다 2019년부터 피델리티나 백트 같은 대형 금융회사들이 비트코인 커스터디 사업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사기 행위도 과거 대비 줄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디지털 자산 시장도 전통 유가증권시장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의 붕괴와 인프라 미성숙’ 문제가 서서히 해결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 유가증권시장은 현재 네 개의 글로벌 커스터디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비트코인 커스터디 시장도 소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독과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무척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전통적으로 커스터디 업무를 담당해 왔던 금융 기업뿐만 아니라 테크 기업들까지 비트코인 커스터디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금융 기업과 테크 기업들 간의 전쟁이다. 이 신대륙을 개척하기 위해 비트코인 커스터디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보자.

비트코인 커스터디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글로벌 금융 기업은 피델리티·백트·노무라·ING·스테이트스트리트 등이 있다. 글로벌 자산 운용사 피델리티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피델리티디지털자산홀딩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세계 최대 증권 거래소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보유한 ICE그룹 역시 백트라는 비트코인 자회사를 설립했다. 또 노무라는 디지털 자산 보안 업체 레저와 파트너십을 맺고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 기업 코나이무를 설립했다. 해당 기업들은 모두 관련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현재 고객들에게 비트코인 커스터디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은 비트코인 커스터디 관련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았지만 암중모색하고 있는 금융 기업들도 많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럽의 대형 은행 ING는 현재 비트코인 커스터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전통 커스터디 강자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윙클보스 형제가 설립한 디지털 자산 전문 금융 기업 제미니와 협력해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윙클보스 형제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와의 소송에서 이긴 금액을 비트코인에 초기 투자한 억만장자들이다. 글로벌 자산 운용사 프랭클린 템플턴은 커브라는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관련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위 기업들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피델리티와 백트다. 이들은 비트코인 커스터디를 단순 보관·관리뿐만 아니라 비트코인 결제 사업에 활용하고 싶어 한다. 2019년 피델리티는 월드페이라는 글로벌 결제 프로세싱 기업을 40조원이 넘는 금액에 인수했는데, 이는 비트코인을 결제 사업에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백트는 스타벅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현재 다양한 법정 화폐로 구성된 스타벅스 포인트 결제를 비트코인을 활용해 혁신하려고 한다. 또 백트는 브리지2라는 포인트 보상 기업을 인수해 올해 안에 비트코인, 로열티 포인트, 게임 아이템, 선물 카드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때 비트코인 결제 사업의 핵심 인프라는 커스터디다. 피델리티와 백트는 비트코인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커스터디에 기반한 오프체인 솔루션을 결제 사업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3억 개의 ‘비트코인 지갑’ 파는 삼성


디지털 자산의 시대가 개화됨에 따라 커스터디는 더 이상 전통 금융 기업의 영역이 아니게 됐다. 테크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금융 산업을 주목하고 있다. 비트코인 커스터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기업은 삼성전자와 스퀘어 등이 있다.

우선 디지털 자산 보안 업체 레저(노무라와 코나이무를 설립한 기업)에 투자한 삼성전자는 자사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 지갑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삼성이 아직 별도로 커스터디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관련 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3억 개에 육박하는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삼성이 자사의 제품에 비트코인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지갑을 탑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비트코인 예찬론자로 알려진 스퀘어의 최고경영자(CEO)인 잭 도시 트위터 CEO는 스퀘어의 캐시 앱을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슈퍼 앱’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2018년 뉴욕 주에서 비트코인 취급 업체에 발급하는 비트 라이선스를 획득한 스퀘어는 캐시 앱에 비트코인 매매 및 예금 서비스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비트코인은 스퀘어의 글로벌 결제 사업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잭 도시는 비트코인을 일상생활에서 활발히 쓰이는 인터넷 화폐로 만들고 싶어 하는데 그가 세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는 바로 캐시 앱에 자리 잡은 비트코인 커스터디다. (본 기고는 회사의 공식 의견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0호(2020.03.30 ~ 2020.04.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