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 = 이정흔 기자] NH농협은행의 이른바 ‘시리즈 펀드’와 관련한 제재 여부가 4월 중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일명 ‘시리즈펀드’는 사실상 유사한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사모 형태로 쪼개 파는 것을 말한다. 농협은행은 ‘시리즈 펀드’를 통해 공모로 인한 규제를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농협은행이 과징금을 부과 받게 된다면 이는 금융당국이 펀드판매회사를 주선인으로 보고 제재하는 첫 사례로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는 지난해 12월11일 농협은행의 '시리즈 펀드’와 관련 증권신고서 미제출(공시의무 위반) 혐의를 놓고 제재 논의를 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제재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바 있다. 시리즈 펀드와 관련해 은행 등 판매사를 제재한 선례가 없다는 점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당시 증선위가 제재안에 대한 논의 시점을 올해 1분기로 미룬 데에는 올해 4월초 ‘주선인에 대한 행정소송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증선위는 이 행정소송의 결과를 농협은행 최종 의결 때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이 사안을 두고 2019년부터 1년이 넘게 심의를 진행 중이다. 농협은행에 대한 과징금 부과결정을 위해 총 5회(자본조사심의위원회 2회, 법령해석위원회 1회, 증권선물위원회 2회)에 걸쳐 심의를 진행한 바 있다. 법령해석을 거친 자조심에서는 과징금 부과가 어렵다는 결정이었지만, 증선위에서는 농협은행이 자본시장법을 우회적으로 위반했다는 의견과 판매회사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대립하며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보류한 상황이다. .
투자 위험에 대해 공시를 해야 하고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는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때문에 금융사들이 덩치가 큰 펀드를 여러 개로 나눠 사모 펀드로 시리즈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농협은행은 2016~2018년 파인아시아운용과 아람운용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펀드’ 방식으로 주문한 펀드를 사모펀드로 쪼개 팔아 공모 규제를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문제가 된 펀드가 OEM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농협은행을 펀드 주선인으로 보고, 주선인이 행해야 하는 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시의무를 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증권신고서 제출의무 위반 규정을 언제부터 적용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지난 2018년 5월 법 개정으로 같은 증권을 두 개 이상으로 쪼개 발행할 경우 펀드 당 투자자를 49인 이하로 설정했더라도 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모펀드 공시 규제가 적용된다. 농협은행이 해당 펀드를 판매한 것은 법 시행 전으로, 과거 행위를 현재 규정으로 소급적용하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증선위의 최종 의결에 참고할 것으로 보이는 행정소송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오는 4월 초에 결과가 나올 예정인 ‘주선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처분소송(1심)'은 주선인에 대한 첫 행정소송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선인을 증권신고서 미제출로 제재하는 것이 무리한 법해석이라는 의견이 쟁점화 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해당 소송의 경우 개인이 회사를 대리해 주식(보통주)을 모집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집합투자증권(펀드)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주선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이번 농협은행의 사례와는 차이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판매사를 비롯한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선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상황에서 이슈발생의 예측이 어려웠던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이 증권신고서 부실기재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키기 위해 도입했던 주선인 제도를 판매회사 제재를 위해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희주 한국증권법학회 회장(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은 “판매회사(은행)를 시리즈 펀드로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과거 명확한 법규와 선례가 없는 주선인에 대한 개념을 무리하게 도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설사 판매회사가 주선인으로 인정된다 해도, 과거 별문제가 없이 판매한 상품에 대해 금융당국이 현재 법을 소급 적용해 제재하는 것은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되는 과도한 조치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농협은행의 대상 펀드는 채권형 펀드로 안전성 등에서 최근 문제가 된 DLF 사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DLF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했지만 시리즈 사모펀드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짚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0호(2020.03.30 ~ 2020.04.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