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틱 산업이 뜬다

여드름과 흉터자국 등 피부 미용과 관련된 한 포털의 카페는 회원 수만 25만 명이 넘는다.

카페를 방문하면 공동구매에서부터 제품·치료·병원 가이드, 레이저 기기 소개 및 후기 등 피부 미용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병원(피부과)을 찾기 전 카페에 들러 이미 자신의 증상과 알맞은 치료법을 파악한 환자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기기’가 있는지 문의한다.

환자 자신이 치료받을 의료 기기를 직접 선택하는 셈이다. 대당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을 호가하는 첨단 의학 장비를 개개의 병원들이 경쟁하듯 구입하는 이유다.

국내 의료용 기기 시장의 규모는 1조5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아직까지는 외국에서 들여 온 수입 장비가 64%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나머지 국산 장비 업체들도 80% 이상이 매출액 10억 원 미만의 영세한 사업장으로 기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 의료용 기기 산업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자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피부 미용 등과 관련된 ‘에스테틱’, 그중에서도 ‘레이저 기기’ 산업이다.
첨단 기술 무장…수입 비중 ‘뚝뚝’
레이저 기기가 시장 주도

에스테틱 의료용 기기는 크게 몇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레이저 계열 기기, IPL(intense pulsed light:광 치료의 일종) 기기, 고주파 기기 등이다. 치료에 쓰이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하다.

인체 조직에 열이나 운동에너지 등을 인위적으로 조직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 일반적으로 레이저는 피부 치료와 수술 등에 주로 활용되고 IPL은 피부 치료, 고주파는 피부와 지방 제거 등에 많이 활용된다.

세 개의 주요 기기 중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기술이 바로 레이저 계열의 의료용 기기다.

레이저 기기는 단일 파장을 사용해 꾸준하면서도 예후에 변화가 없어 효과적이다. 또 개개인의 피부 색소나 혈관 등에 가장 적합한 파장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선택적 진료’가 가능하다는 뜻.

현재 국내의 의료용 레이저 기기 시장은 전체 의료용 기기 시장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금액 기준으로 수입 장비가 약 60%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를 국산이 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국산 장비가 가격 면에서 저렴한 것을 고려하면 수량 기준으로는 국산 제품이 60~6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의료용 레이저 기기의 전체 시장 규모는 1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병원과 환자를 막론하고 고가의 수입 장비를 선호하는 경향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산 제품의 품질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2007년 이후로 몇몇 국내 업체가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장비를 선보이면서 국산 제품의 인지도가 환자와 병원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다.

품질 외에 국산 기기가 판로를 확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론 가격이다. 대표적인 국내 의료용 레이저 기기 생산 업체인 ‘루트로닉(http://global.lutronic.com/kr)’의 대표 제품인 ‘아큐스컬프(AccuSculpt)’는 비슷한 수준의 외국 제품에 비해 가격대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환율도 외국 제품의 수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요인이다. 현 정부 초기의 고환율 정책 이전만 하더라도 달러당 900원대의 낮은 환율 덕분에 제품의 수입이 그만큼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 1600원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던 상황 덕분에 수입 자체가 힘들게 됐고 최근까지 이런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현재 의료용 레이저 기기의 시장점유율은 2007년 이후 해마다 5% 정도씩 줄어들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런 추세는 국산 장비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확대될수록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혁신 기술이 새로운 수요 창출

현재 국내 의료용 레이저 기기 시장의 최강자는 루트로닉이다. 지난 1997년 회사 창립 이후 의료용 레이저 기술의 한 우물만 파 온 루트로닉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 품질 환경 인증 기준인 CE(Conformite European) 마크 및 의약품 제조 품질관리 기준(KGMP) 인증을 획득하는 등 품질 면에서는 국내와 국외에서 모두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06년 매출 89억 원을 기록한 이후 2007년부터는 수출과 내수 모두 성장세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루트로닉의 작년 매출액은 370억 원으로 그중 내수 198억 원을 차지해 수출과 내수의 비중이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2006년 내수 매출액이 55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년 새 세 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루트로닉  직원들이  제품에대한 성능을 검사하고  있다.
2009.11.27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루트로닉 직원들이 제품에대한 성능을 검사하고 있다. 2009.11.27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루트로닉은 국산 의료용 레이저 기기의 인식 변화를 주도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6년 이전까지 국내 업체들은 좋은 기술과 장비를 선보여도 시장의 냉대와 폄훼 때문에 판로를 개척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 기술력이 시장에서 아예 인정받지 못했던 것. 하지만 루트로닉이 개발한 ‘모자이크(피부 재생 관련)’나 ‘VRM(기미 치료용)’ 등이 등장하면서 점차 시장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모자이크의 등장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경쟁 업체는 미국산 기기로, 시장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프락셀’이었다. 특히 최근 선보인 ‘아큐스컬프’는 국산 레이저 기기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얼굴과 체형을 레이저로 ‘정교하게(아큐) 조각한다(스컬프)’는 제품명처럼 레이저를 통해 체내 지방을 정교하게 녹여내는 기기다.

지방 이식으로 인한 부작용을 녹여내고 피부 타이트닝 효과도 탁월하다는 평가다. 지방 이식 부작용의 경우 기존의 시술법에 따르자면 얼굴 피부 전체를 들어내는 안면거상술을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아큐스컬프는 레이저가 주삿바늘처럼 피부 조직 속으로 통과해 원하는 부위의 지방만 연소시키는 첨단 기술이다.

지난 2008년 말에 출시된 이 제품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 선풍적인 반응을 끌고 있다. 에스테틱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미국에서 공중파 방송인 CBS에 소개되기도 했고, 미국 성형외과학회 홈페이지의 ‘테크놀로지 브리프’ 코너에 소개되기도 했다.

상업성을 배제한 채 성형외과 의사들의 정보 교환과 최신 기술 소개를 목적으로 한 코너라 더욱 의미가 있다는 평이다. 올 초에는 유명 패션 매거진이 꼽은 ‘향후 10년을 이끌 미용 혁신 기술 톱10’에도 올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 밖에 미국의 관련 산업 유력 매체인 ‘에스테틱 바이어 가이드’에도 아큐스컬프에 관한 내용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철저하게 미국 기업이 생산한 제품만 중점적으로 소개돼 일본이나 유럽 제품도 거의 없는 매체의 특성상 우리 기업이 만든 장비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다.

현재 루트로닉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5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미용이나 흉터 치료 등 치료보다 심미적 수요가 많은 제품의 특성상 앞으로의 시장 전망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우 밝은 편이다.

특히 ‘친디아’로 대표되는 이머징 마켓의 폭발적 성장세는 국내 의료용 레이저기기 산업의 부흥을 이끌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미용·성형 등은 소득수준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일시적인 유행에 기댈 산업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시장의 확대가 시장 창출의 외부적 요인이라면 혁신적인 신기술의 등장은 시장 성장의 내부적 요인이 된다. 프락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루트로닉 국내 마케팅팀 안종구 차장은 “아큐스컬프의 경우가 새로운 시장의 수요를 창출해낸 국내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원 기자 jjw@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