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 비판 나선 자유주의자들

“세계경제는 만신창이가 됐다. 이 재앙은 결국 따지고 보면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 온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에 그 원인이 있다. 결국 자유 시장주의자들,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온 이야기는 잘해야 부분적으로만 맞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히 틀렸다는 말이 된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론 중)

지난해 11월 발간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한국 사회에 경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 교수는 주류 경제학에 ‘메스’를 들이댔고 ‘국가의 역할’과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다.

장 교수는 자본주의의 여러 가지 신화를 깨뜨렸다. 장 교수는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등 우파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또한 분배에 있어서도 부(富)가 위에서 아래로 물방울처럼 떨어질 것을 기다리기보다 복지국가라는 펌프를 통해 콸콸 흐르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탈산업사회는 신화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 억제가 능사는 아니다’ 등 보통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경제 상식을 허무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중들이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발매 2주 만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한 달 조금 넘어 20만 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책이 대대적인 관심을 끌자 그의 주장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장 교수의 주장에 가장 먼저 딴죽을 건 이들은 정치인들이었다.
[비즈니스 포커스] ‘책 내용 틀린 것 많다’ 조목조목 따져
“전제와 논리가 잘못됐다”

지난해 12월 27일 한나라당은 장 교수를 국회로 초청해 ‘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 경제의 미래’ 강연회를 가졌다. 이날 장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인용하며 “한미 FTA 등 선진국과의 FTA를 반대한다”, “무조건 세금 깎아준다고 투자가 되고 성장 촉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주요 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에서 “전제와 논리가 잘못됐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장 교수와 보수 성향 정치인들의 사상적 마찰은 이후 책에서 비판의 대상이 됐던 자유주의자 및 경제학자들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시장경제 전문 연구 기관 자유기업원의 김정호 원장은 지난 1월 7일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의 온라인 뉴스레터 기고를 통해 장 교수의 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 원장은 책이 ‘수준 이하’라며 그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틀렸다고 반박했다.

그는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를 공격해 대중들의 애국심과 두려움을 자극하고 있다”며 “이야기 솜씨가 뛰어난 스토리텔러일뿐 경제학자로서는 별로”라고 혹평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높은 관세 등 강력한 보호주의가 있었다는 장 교수의 주장을 집중적으로 반박했다.

김 원장은 경제학자 달라와 케이의 여러 나라 경제 성장 분석 결과를 인용해 ‘개방정책을 도입하고 무역 장벽을 낮춘 나라가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김 원장은 이후 장 교수의 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두 차례 내보내고 일간지 칼럼과 자유기업원 자체 제작 방송 ‘대한민국 콘서트’를 통해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지난 2008년 장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던 국내 대표적 자유주의자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도 김 원장의 글을 트위터에 인용하는 등 간접적으로 반박에 가세했다.

비슷한 시기인 1월 18일에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장하준 교수가 잘못 말한 것들’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한국경제연구원에 게재했다. 그는 “시장경제 관련 책을 25권 넘게 써 온 자유주의자로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장 교수가 잘못 말한 것들을 듣고만 있을 수 없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장 교수의 저서는 그 내용 전체가 나에게는 반론의 대상”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그는 장 교수의 주장 중 ‘신자유주의 비판’,‘자유무역으로 잘사는 나라는 거의 없다’, ‘더 크고 더 적극적인 정부 제안’의 3가지 이슈에 대해 비판했다. 장 교수는 2007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전적으로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지만, 금융 위기는 사실 미국이 잘못된 금융제도를 관리마저 잘못해 발생한 것이라고 박 교수는 반박했다. 그리고 수출 주도형 자유무역을 통해 한국이 부국이 됐다는 점 등으로 장 교수의 주장에 맞섰다.
[비즈니스 포커스] ‘책 내용 틀린 것 많다’ 조목조목 따져
경제학자들의 비판에서 더 나아가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월 7일 장 교수의 책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재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경연이 시중에 나온 책 내용에 대해 보고서까지 내는 일은 이례적이다.

‘계획을 넘어 시장으로’라는 제목의 57페이지 분량 보고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한 자유주의자의 견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한경연은 보고서에서 “장 교수는 시장이 아닌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를 지지하고 있다”며 “장 교수의 방법론은 국가의 성장을 저해하고 분배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책에서 언급됐던 내용을 파헤쳐 △노동시장 △소득 재분배 △시장과 정부 △규제 △무역과 투자 △아프리카 △교육과 경제 등 11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구체적인 반박의 논거를 제시했다. 보고서의 주 저자인 송원근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몇 달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 교수의 책을 읽은 독자들 상당수가 책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보고서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대표 “장 교수가 동네북인가” 맞서

한편 장 교수 책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그들이…’의 출판사 부키 박윤우 대표가 ‘장하준이 동네북인가’라며 발끈했다. 발단은 방송통신대 김기원 경제학과 교수가 ‘창비 주간 논평’에 ‘장하준 논리의 비판적 해부’라는 글을 실으면서부터다.

김 교수는 “장 교수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소득 성장률에 대한 통계를 왜곡해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오히려 김 교수야말로 통계적 사실을 잘못 읽고 허술한 결론을 내린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며 장 교수의 통계 인용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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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체였던 창비 측을 통해 오고간 공방은 직접 두 사람의 e메일 설전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e메일 내용은 부키의 박 사장이 인터넷에 올려 모두 공개된 상태다.

그리고 박 사장은 언론사 기고를 통해 “장하준 교수가 동네북인가”라며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되든 안 되든 비난과 비판을 늘어놓으면 장 교수는 그런 말에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토로했다. 책 출간 후 간간이 미디어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장 교수는 국내에서의 비판에 대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트위터를 통해 남긴 메시지가 화제가 됐다. 이 메모에서 장교수는 “200년 전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며 “당장 안 되는 일처럼 보여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장 교수의 책은 영어와 일본어로도 발간됐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장 교수의 책에 대한 반박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 도시샤(同志社)대의 가노 요시아키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이 책에 대해 “자유시장주의자가 설명한 경제 상식과 통설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한편 자본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시장 원리주의를 비판하는 비슷한 책들과는 차별성이 있다”고 평했다.

그리고 “사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경제학이나 자본주의 경제가 아니라 자유 시장주의자들의 해이해진 가정과 시야가 좁은 사고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