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열 헬로네이처 대표


제주도 출장을 갔다가 현지에서 감귤을 산 적이 있다. 정말 맛있었다. 얼마 뒤 동네 마트에 갔더니 마침 같은 상표의 감귤이 있기에 냉큼 사다 먹었다. 그런데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같은 지방에서 난 농산물을 먹었을 때 현지에서 먹었을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유통 과정에서 상품의 신선도가 떨어졌거나 같은 산지에서도 품질이 좀 떨어지는 것을 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럴 때 산지 직송 상품을 찾는다.

헬로네이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들이 그저 농수축산물의 산지 직거래 사이트 정도를 오픈할 것이었다면 아마 거창하게 사업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차별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좀 다른 방향성을 갖고 출발했다.

서울대 농경제학과 05학번 좌종호 씨는 전공 수업 과제 때문에 시장조사에 나섰다가 깜짝 놀랐다. 산지에서 10kg당 3500원에 불과하던 경기도 여주산 가지가 소매시장에선 3만6000원이나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복잡한 유통 과정 때문이었다. 신선도는 되레 떨어지고 맛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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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 달려간 네 명의 엘리트들

“제가 시골 출신이어서 산지에서 과일을 자주 먹어요. 그런데 서울에 와보니 똑같은 과일인데도 오히려 맛이 떨어지고 값은 두 배가 되는 거예요.”

좌종호 씨가 계산해 보니 유통 마진이 평균적으로 80%에 달했다. 많은 고정 소비자를 확보한 유통 매장일수록 이 마진이 커졌다. 유통 마진이 원가를 넘어가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와 고민을 같이한 사람이 포항공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AT커니를 거쳐 쿠팡에서 일하고 있던 박병열 대표였다.

박병열 대표는 국내에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AT커니에 있으면서 그는 일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그런데 저에게는 컨설팅 일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컨설팅을 받는 회사들을 보면 대부분 답을 이미 다 알고 있어요. 그걸 다만 외부에서 확인하려고 하는 거죠.”

AT커니를 6개월여 만에 나온 그는 소셜 커머스 업체 쿠팡에 취직했다. 하지만 소셜 커머스라는 영역은 이미 많은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경쟁이 치열한데 마진이 박한 곳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그는 때마침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좌종호 씨를 만났다. 그의 사업 아이디어를 듣고 무릎을 쳤다. 둘은 창업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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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은 세웠지만 사람이 더 필요했다. 좌종호 씨가 사람을 데리고 왔다. 서울대 농경제학과 10학번인 조태환 씨다. 조태환 씨는 서울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간략하게 올렸다. 그런데 뜻밖에 이 글을 보고 서울대 경제학과 05학번 유준재 씨가 같이 일하고 싶다며 이들을 찾아왔다. 창업 멤버 4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구성원을 완료한 이들은 일단 사업 기획을 하고 헬로네이처라는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어 친구 사무실과 커피숍을 전전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무실이 아니었다. 처음 농산물 직거래를 하기 위해선 공급자를 확보하는 게 필수였다. 사업 의지는 충만했지만 노하우는 없었다.

“딱히 방법이 없더라고요. 무작정 시골로 내려갔죠.”
4개월이 넘는 동안 강원도와 제주도를 중심으로 농산물 산지를 누비고 다녔다.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 속을 파고들기로 했어요. 강원도 산골에 가서 농촌 사람들이 하는 일을 도왔죠. 김장 김치를 함께 담그고 막걸리도 나눠 마셨어요. 그러면서 하나둘씩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죠.”

“농촌과의 상생 모델 만들겠다”
이렇게 계약한 농가가 20여 곳에 이르렀다. 농가를 확보하면서 이들은 서비스를 오픈했다. 계속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지내다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창업 보육 프로그램에 선정되는 행운이 주어졌다. 그 덕분에 지난해 말 무료로 상암동DMC(디지털미디어시티) 누리꿈스퀘어에 사무실도 얻었다. 2012년 1월에는 정식으로 법인도 설립하고 공식 출범했다.
믿을 만한 농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 그래서 헬로네이처는 자체 품질위원회를 만들었다. 구성은 물론 외부인으로 했다.

헬로네이처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헬로네이처에서 상품을 판매할 때 판매자의 실명을 걸고 판매한다. 그리고 판매가 일어날 때마다 달린 질문이나 후기 등을 취합해 생산자에게 직접 전달한다. 또 생산자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각종 정보를 원칙적으로 게시해야 한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 여부와 함께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여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단순 ‘판매’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소비자와 생산자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열어준 것이다. 헬로네이처는 수확 철이 되면 농촌 관광 서비스를 기획해 수확 체험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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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자신의 브랜드를 걸고 헬로네이처에서 농산품을 판매하는 것이 다른 CJ오쇼핑 등 대기업들이 하는 직거래 서비스와 다른 점이다. 헬로네이처는 직거래 쇼핑몰을 넘어선 또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직거래만으로는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2단계로 정기 배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매주 또는 매달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 등을 일정 분량 정기적으로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3단계도 있다. 일명 패키징 서비스다. 직거래 상품은 보통 한꺼번에 물건을 많이 구매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배송비라도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로네이처는 소량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 중이다. 정기 배송과 패키징이 결합되면 안정적인 매출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