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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사회 공헌에 힘을 쏟고 있다.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 아니다. ‘제3의 경영’으로 불릴 정도로 기업의 핵심 역할로 자리 잡았다. 주요 대기업들의 올 초 신년사를 보면 어김없이 사회 공헌과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한국 500대 기업의 평균 사회 공헌 비용은 전년 대비 8.4% 증가한 131억 원으로 양적 규모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사회 공헌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되면서 사회 공헌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내고 연말에 직원들이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아가는 것은 옛 얘기다. 최근에는 SK·CJ·삼성·LG 등 주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단순 기부나 봉사 활동에서 벗어나 자사가 보유한 자원과 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사회적 혁신(Social Innovation)’으로 사회 공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사회 공헌 패러다임의 질적 변화를 3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자선적 기부가 주를 이룬다. 2단계는 사회적 책임 기업(CSR)으로 변화하는 시기다. 2단계에서 양적 팽창이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는 자본주의 위기 시대를 맞아 ‘사회적 혁신’으로 질적 변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신혜정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 실업난 등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기업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혁신’이 사회 공헌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혁신’은 여러 사회문제에 창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다문화 가정이나 탈북자 문제 등 사회 취약 계층 지원을 비롯해 사회 전반의 현안까지 사회 공헌 사업 대상에 포함해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SK사회공헌 사무국 박현섭 부장은 “과거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이 기부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사회적 기업, 재능 기부(프로보노), 교육 프로그램, 메세나 등 그 영역이 다양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진화하는 사회 공헌, 봉사·기부 옛말… 사회문제 도우미 나서
대표적인 기업이 사회적 기업 지원에 적극적인 SK그룹이다. SK가 직접 설립하고 지원한 사회적 기업이 무려 73개다. 직접 설립한 사회적 기업도 행복한 학교, 행복한 도서관, 행복한 뉴라이프 등 10개에 이른다. 올 초 매출 연 1000억 원 규모의 국내 최대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화제가 됐다. SK그룹의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MRO) 사업을 맡고 있는 MRO코리아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기업의 MRO 사업이 상생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자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SK는 단순 기부 형태의 사회 공헌 활동으로는 사회적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최 회장은 “단순 기부 등 전통적 사회 공헌 활동이 투입 비용 대비 3배의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비해 사회적 기업은 수십 배의 가치를 창출한다”며 “기업적 메커니즘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 모델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SK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행복도시락’은 결식 아동과 저소득층 노인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한편 실업 해소를 위해 취약 계층을 조리원과 배달원으로 고용하고 있다. ‘행복도시락’은 하루 평균 1만4000여 개의 도시락을 만들어 결식 이웃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행복도시락’ 제조와 배달 등을 위해 만든 일자리만도 470여 개에 달한다. ‘행복한 학교’ 또한 방과 후 학교 수업을 위탁,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SK의 경영 노하우와 교육청의 지원이 결합된 민·관 협력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공교육 기능을 보완해 준다. 이뿐만 아니라 방과 후 강사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CJ그룹도 단순 기부가 아니라 ‘저소득층 소득 지원’이라는 콘셉트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5년 설립된 CJ나눔재단은 일반 기부자와 전국 공부방을 연결하는 기부 플랫폼인 ‘CJ 도너스 캠프’를 통해 3600개 공부방을 지원하고 있다. 도너스 클럽 회원이 1000원을 기부하면 같은 액수를 CJ나눔재단이 추가로 적립해 공부방 지원 사업을 펼치는 것이다. ‘CJ 도너스 캠프’는 CJ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관람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적성 발견 교육, 다문화 이해 교육 등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도너스 클럽 회원은 20만 명 정도다. CJ 관계자는 “‘CJ 도너스 캠프’는 일반 기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나눔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형 기부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기존 공헌 활동과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기업·지자체 협력 모델 증가

신세계 이마트가 4월부터 시작한 ‘희망마차’ 사업은 기업(이마트)·지방자치단체(서울시)·시민(서울시민) 등 3자가 함께 참여해 지역 복지 공동체를 구축하는 새로운 형태의 복지 모델이다. 이마트 임직원이 개인 기부를 하면 같은 금액의 회사 후원 금액을 모아 기금을 조성한다.

서울시가 저소득 계층을 발굴하면 이마트가 조성한 기금으로 물품을 지원하며 해당 지역 인근 이마트 주부 고객 봉사단과 이마트 임직원이 함께 봉사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와 함께 신세계그룹은 기업(이마트), 사회 복지 기관(굿윌스토어), 시민 등 3자가 참여하는 지역 복지 공동체도 구축하고 있다.

기부에 참여하고 싶은 시민은 수거함이 설치된 이마트 매장을 방문해 물품을 기부하고 기부 물품 판매 업체인 굿윌스토어는 이를 판매하는 것이다. 기부 물품 수거·손질·판매 등 현장 작업을 하는 직원의 약 90%가 장애인이나 새터민 등 사회 소외 계층이다. 신세계는 전국 6개뿐인 굿윌스토어 매장 수를 늘리는 데도 지원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저소득층 중학생 학습 지원을 포함한 교육 복지 사업을 그룹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삼성은 이를 위해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약을 맺고 중학생 방과 후 교육 사업인 ‘드림클래스’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드림클래스’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학 진학에 성공한 ‘저소득층 출신 대학생 강사를 뽑아 저소득층 중학생들에게 방과 후 수업을 제공하는 사회 공헌 활동이다.

3월부터 서울 등 21개 주요 도시의 120개 중학교에서 학년마다 20명씩 총 7200명의 저소득층 가정 자녀들에게 방과 후 영어·수학 수업을 진행한다. 내년부터는 중소도시와 섬 지역 중학생 7800명을 대상으로 각각 주말 수업과 방학 캠프도 연다. 강사로 뽑힌 저소득층 대학생들에게는 시급 3만7500원을 적용해 장학금을 지급한다.

삼성 관계자는 “해마다 300억 원 규모의 장학금을 대학에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LG그룹은 다양한 다문화 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계열사별로 가동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관련 프로그램만 해도 15개에 달할 정도다. LG가 2009년에 시작한 ‘LG 사랑의 다문화 학교’가 대표적이다. 2개 국어 이상을 쓸 수 있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LG는 다문화 가정 청소년 60명을 선발해 한국외국어대 및 KAIST 교수진이 지도하는 교육을 2년 동안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현재 태국·베트남·필리핀·몽골 등 10여 개 나라의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