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주부 임지현(33·가명) 씨는 얼마 전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있는 명품 가방 전당포에 들러 3년 전에 산 루이비통 가방을 맡기고 80만 원 (중고가 120만 원)을 빌렸다. 그녀는 은행보다 절차도 간단하고 대출 기록도 남지 않아 안심이라며 앞으로도 종종 전당포를 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최근 명품 가방·시계·다이아몬드·금·골프채·구스다운패딩·자동차 등 고가의 명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전당포가 성행하고 있다. 주 고객층은 20~30대 젊은이들이며 이러한 전당포는 강남 지역이나 여의도 등에 밀집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용산 전자상가 부근과 일부 대학가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전문으로 받는 정보기술(IT) 전당포도 속속 생겨나 ‘젊은이들의 급전 창구’가 되어주고 있다. 1960~1970년대 서민들의 갖가지 애환을 품었던 전당포가 이제는 ‘소비 지향형’ 삶을 추구하는 젊은층의 구미에 맞는 멀티 명품 숍으로까지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카드 결제일엔 특히 고객 몰려
영화 ‘아저씨’의 영향이 너무 컸다. ‘전당포’하면 원빈의 서늘한 눈빛과 그가 일하던 전당포의 음습한 분위기가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기자가 찾아간 서울 여의도의 명품 가방 전당포인 ‘펀 코리아(Pawn Korea)’에 들어서자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한번에 깨졌다.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와 폭신한 소파를 구비한 응접실, 편안한 분위기에 긴장이 풀렸다.
명품 가방을 특화해 3년째 전당포를 운영하다 보니 여성 단골손님이 늘었다는 김 종진 점장은 “요즘은 젊은 여성분들이 주로 명품 가방을 2, 3개 정도는 기본적으로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급전이 필요할 때 가방을 담보로 맡긴다. 생활비가 부족한 분들이 자주 찾지만 신상 가방을 사고 싶은데 자금이 부족할 때에도 수시로 전당포를 이용한다”고 전했다.
전당포에 고객들이 주로 몰리는 날은 따로 있다. 카드 결제일인 15, 25일이 제일 북적인다. 또한 크리스마스나 명절·연말·연초 등 돈 쓸 일이 많은 기념일에도 고객들은 전당포로 발길을 돌린다.
명품 가방 전당포의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의 물건을 보여주면 간단한 감정을 거친 후 중고가의 60~80% 정도 현금으로 받고 전당포에는 추후에 원금과 이자를 갚은 후 물건을 되돌려 받는다. 전당포에서는 대개 5분 안에 입금해 주고 월 이자 3%, 연 이자 36~39% 정도를 받는다. 예를 들어 샤넬 ‘캐비어 2.5백’의 중고 가격은 400만 원 정도인데, 이런 제품은 대략 300만 원을 지급하고 한 달 이자 9만 원을 받는다.
전당포에는 신분증만 가져 오면 거래가 가능한데, 이는 물건 자체가 ‘담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은행권에서 대출이 어려운 신용 불량자나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 쉽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김 점장은 “살다 보면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50만 원을 빌려 달라고 말하기 쑥스럽지 않나. 급하게 돈이 필요한 분들이 전당포를 찾기 때문에 딱딱하게 원칙에 입각해 운영하기보다 사정에 따라 대출 기간을 연장해 주거나 시세보다 더 많이 쳐주는 식으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편이다. 사람 냄새가 많이 나는 제3금융권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고 나름의 운영 방침을 말했다.
일례로 얼마 전에 한 중소기업 사장이 직원들의 월급을 줘야 하는데 자금 융통이 어려워 고가의 시계를 맡기러 왔기에 후하게 돈을 지급한 적도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전당포의 영업 방식 또한 매우 다양해졌다. 주 고객층이 20~30대이다 보니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물건을 감정 받고 거래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출장 방문은 이제 명품 전당포들 사이에선 당연한 ‘고객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부자들 북적 … 고급 시계는 7000만 원
이번에는 ‘명품 전당포’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의 로데오 거리를 찾았다. 명품 전당포 창업의 1세대로, 온라인을 통해 처음으로 명품 가방 전당포 사업을 확장하기도 했던 강태욱 대표가 운영 중인 ‘폰더샵’은 독특하게 전당포와 의류 편집매장을 병행해 운영하는 곳이다. 그는 전당포의 원래 모습에서 한 단계 진화해 맡긴 물건을 아예 ‘위탁 판매’로 연결해 유통을 활성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미국·영국·일본 등에서는 이미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업 모델이기도 하다.
“가방이나 시계의 유행이 워낙 빨리 돌잖아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면 단순히 전당포에 맡기기만 할 게 아니라 다른 손님에게 팔아 차익을 얻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죠.”
트렌드가 반영된 디자인이거나 롤렉스 시계처럼 환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제품군은 단순히 창고에 묵혀 두는 것보다 매장에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불황일수록 가치 지향적인 소비를 하려는 이들이 늘다 보니 이 같은 종합 유통망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갈수록 증가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대표는 일부 업체들이 이러한 위탁 판매를 하고 나서 지나치게 많은 수수료를 떼어가는 바람에 오히려 제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손님들도 있다며 ‘환급 서비스(전당포에서 일단 돈을 받고, 맡긴 물건이 팔리고 나면 일부 수익을 더 받는 것)의 맹점’도 파악해 전당포를 선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강남 로데오거리나 선릉역·삼성역 부근에 밀집한 이 같은 ‘명품 전문 전당포’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주로 찾기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교수·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나 연예인, 재벌가 자녀들, 사업가 등이 주 고객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당포가 가진 자들의 유용한 ‘현금 지급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 남성이 중고 시세만 1억2000만 원인 스위스 명품 시계 브레게(Breguet)를 가져와 7000만 원을 빌리기도 했다. 중고 가격이 약 1200만 원에 달하는 에르메스 버킨백 5개를 한꺼번에 가져와 6000만 원을 빌려간 손님도 있다. 고가의 예물 시계를 가져오는 이도 많다. 과거 전당포 고객들의 ‘애절함과 비장함’의 자리엔 현대인의 ‘쿨한 합리성’이 대체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전당포에는 고가의 물건이나 ‘한정판’을 많이 구입하는 연예인들의 발길 또한 끊이지 않는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얼굴이 알려진 터라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기가 민망하거나 활동이 없는 시간에 수입이 없어 곤란한 때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인기 아이돌 출신의 모 연예인은 해체 이후 수입원이 끊기자 수시로 외제차를 맡겼고 스크린과 브라운을 오가는 모 남자 스타는 빈티지 오디오를 가져오기도 했다. 가풍이 엄격해 생각보다 용돈이 적은 유명 대기업의 자녀 또한 부모님이 사준 명품 가방과 시계를 종종 가져와 돈을 마련한다고 한다.
명품 전당포와 함께 최근 스마트폰, 태블릿 PC, DSLR 카메라 등이 많이 보급되면서 이를 전문으로 하는 IT 전당포 또한 성행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11년 대비 2012년에 고객이 30% 정도 늘었다. 우리 같은 업종은 불황일 때 활황이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은 것같아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명품·IT 전당포에는 훔친 물건이나 렌털 숍에서 대여한 물품을 가져와 현금화하려는 이들도 많아 전당포 관계자들이 특별히 감정에 주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서울 시내에 합법적으로 운영 중인 ‘명품 가방 전당포’는 20군데 정도이며 음성적으로 운영 중인 곳도 많다.
이재선 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이용하려는 전당포가 영업 등록이 제대로 됐는지 등록증을 확인하거나 대부업협회 홈페이지에서 미리 조회해야 한다. 반드시 대출 계약서를 작성한 후 거래해야 하고 법정 최고 이자율인 연 39%를 초과하거나 기타 수수료를 더 달라고 하는 곳은 피해야 한다”며 채무 미상환 시 맡긴 물건을 전당포에서 임의로 처분하는 조건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전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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