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선 KAIST 경영대 교수의 ‘소비자 행동론’

오랜 기간의 개발과 막대한 투자를 투입해 새로운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지만 예상과 달리 시장의 반응이 차가울 때가 많다. 신상품 중 80~90%가 실패한다는 통계도 있다. 분명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새롭고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았는데도 소비자가 외면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윤여선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수많은 요인으로 구성된 소비자의 심리 파악을 간과했고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사고방식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기업은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할 때 새로운 기능이 주는 효용성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그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기업이 세밀하게 파악하지 않고 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신상품은 시장 진입에 실패한다고 윤 교수는 분석했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미국의 XM위성라디오(XM Satellite Radio)는 2001년 9월 미국에서 최초로 위성라디오 서비스를 시작했다. XM위성라디오는 위성을 통했기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 같은 채널로 서비스가 가능했고 콤팩트 디스크(CD) 음질 수준을 확보했다. 일부 채널은 뉴스·스포츠·교통·날씨 등 특정한 주제를 다루는 전용 채널이었다. 광고와 DJ가 없었고 토크쇼는 무료 지상 라디오 방송보다 검열 수위가 낮아 성인용 콘텐츠도 가능했다.

초기에는 가입자 수가 더디게 증가했다. XM위성라디오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첫째, 기존 무료인 FM 라디오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유료 라디오 서비스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있다는 것. XM위성라디오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수신기를 사야 했고 매달 10달러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둘째, 위성 라디오 경쟁사인 시리우스(SIRIUS)와 차별적인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느냐는 것이었다. ‘소비자 행동론’ 수업에서는 XM위성라디오의 사례를 두고 토의가 이뤄졌다.
[MBA 명강의 지상 중계] 야심찬 신제품이 시장서 실패하는 이유
소비자가 구매 망설이는 이유 파악해야
토의를 지켜보며 윤 교수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XM위성라디오의 사례 발표자들은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며 좋은 서비스를 강조하는 반면 질문자는 전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 분명한 사고 영역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들이 신제품의 새로운 효용에 매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은 가격이 적절한지, 기존 소비 습관을 바꿀만한 것인지, 사회적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만한 것인지 등 심리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다각도로 소비자 심리에 접근해야 한다.”

우선 가격 요인을 살펴보자. 소비자는 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신제품의 효용이 느는 것보다 비용의 상승과 하락에 더 큰 무게감을 둔다. 여기 세 가지 상황에 대한 소비자 심리 이론이 있다. 첫째, 효용은 그대로이지만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자는 ‘산다’. 둘째, 가격은 그대로지만 효용이 늘어나면 ‘산다’. 하지만 효용이 커지고 가격도 비싸졌다면 ‘망설인다’.

어떤 경우든 가격이 상승한다면 아무리 제품이 좋아져도 이에 대한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효용과 비용 사이에는 시간차도 존재한다. 효용과 비용이 함께 상승한 경우 비싸진 금액은 소비자에게 즉각적으로 금전적 손실감을 준다. 하지만 좋아진 효용은 꽤 시간이 흐른 후에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교체는 기존 전구에 비해 비싼 가격을 곧바로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LED의 오랜 수명에 따른 효용은 한참 경험해 본 후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소비자들은 신제품을 바라볼 때 효용보다 비용이 구매 의사의 결정적 요인이고 대부분의 비용 상승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기업은 신제품의 비용을 산정할 때 그동안의 투자를 만회하기 위한 이윤 목표치, 판매와 시장 점유를 위한 가격 설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윤 교수는 말한다. 바로 ‘소비자가 지불 의사가 있는 가격은 얼마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XM위성라디오의 소비자 설득 전략
다음으로 신제품이 기존 소비 습관, 사회적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만한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 요인에 소비자는 크게 좌우된다. 소비자들은 아직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기본적으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제까지의 자신의 행동을 바꿔야 한다는 데 적지 않은 저항감이 있다.

일례로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꿀 때 기존에 해오던 행동 패턴을 모두 버려야 하는 데 큰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 미국의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의 전망 이론(prospective theory)은 사람들이 이득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XM위성라디오는 이러한 소비자 심리를 정책에 어떻게 반영했을까. 우선 수신기 구매와 월 10달러의 이용료에 대한 비용 부담에 대해 준거 가치를 바꿨다. 기존 무료였던 FM 라디오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CD를 구매하던 것과 가치 비교를 했다. CD 한 장 사는 데 10~20달러를 쓰지만 XM위성라디오를 이용하면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듣는 데 한 달 10달러만 내면 되므로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쟁사인 시리우스는 50개 채널을 듣는 데 10달러로 정했지만 XM위성라디오는 원하는 채널만 골라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요금제를 소비자에게 제안했다.

또한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이 갖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자동차 제조사와 렌터카 회사 등과 협업해 수신기를 장착하고 운전자가 XM위성라디오를 일정 기간 무료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XM위성라디오의 서비스를 이용해 본 소비자는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도 이제까지 누리던 효용을 지속하고 싶은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 덕분에 유료 가입자로 전환됐다.

XM위성라디오는 기본적으로 CD 수준의 개선된 음질, 기존 라디오를 들을 때 광고 때문에 느꼈던 불만족, 지역이 바뀔 때 단절되는 불편을 해소한 서비스였기 때문에 이후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경쟁사인 시리우스보다 소비자 행동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선 결과 XM위성라디오의 서비스는 손익분기점으로 설정된 200만 명 가입자를 2004년 확보하고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XM위성라디오는 2007년 경쟁 업체인 시리우스와 인수·합병했고 현재 2500만 명 이상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해 매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윤여선 교수는…
고려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광고홍보학 석사, 미시간대 로스비즈니스스쿨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텍사스 라이스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부터 KAIST 경영대학에서 마케팅 분야를 강의하고 있다.


‘소비자 행동론’ 수업은…
표적 시장 내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에 대한 이해와 소비의 대상에 대한 정보 처리, 평가 및 선택에 관련된 여러 소비자 행동 영역의 기본적인 이론과 분석 방법론들을 살펴보고 이를 기업의 마케팅 전략 수립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배양하는데 목적이 있다. 제품과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고 아이디어·기업 및 정부의 정책 등등 소비자가 존재하는 각종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소비 대상을 다루는 과목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